“양양의 청년문화에 목마릅니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양양에서 ‘글라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나윤호 대표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전시회 개최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을 담은 사진 스튜디오와 굿즈를 판매하는 소품샵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작가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며, 공간 운영 방안도 새롭게 구상 중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사진작가가 아니다.
“양양과 속초, 그리고 고성에는 청년 문화가 많지 않고, 교류할 수 있는 수단도 부족합니다. 스튜디오를 차린 이유도 청년들이 함께 교류하고 정착을 돕는 거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어요.”
양양에서 글라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청년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힘쓰는 나윤호 대표.
‘도시를 떠나 양양으로… 그가 찾고자 했던 진짜 삶’
2020년,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촌을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일에 내 삶을 낭비하지 말자. 그리고 내가 원하는 창작활동을 마음껏 하면서 살자.”
그렇다면 왜 하필 양양이었을까?
바다수영을 유독 좋아했던 나윤호 대표는 아내 김슬기 대표와 함께 양양 천혜의 자연과 드넓은 바다에서 영감을 받으며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것을 즐겼다.
“집을 지을 때도 탁 트인 전망과 넓은 거실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디자이너들이 한 공간에서 협업하며 작업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양양군 내에서도 30분은 더 들어가야 하는 구룡령 자락에 집을 짓다 보니, 협업을 위한 디자이너들이 모이기보다는 친구나 지인이 방문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의 계획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지역 청년들과의 교류를 염두에 두며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그의 귀촌 생활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6월, 한창 집을 짓고 정착을 준비하던 시기,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큰 위기가 닥쳤다.
부부는 구룡령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집을 직접 디자인하고 싶었지만, 폭우로 인해 공사가 지연됐고, 일정이 길어지면서 예산 부족 문제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이후 날씨가 풀리고, 목수들의 일정이 조정되면서 집은 완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는 언제든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청년 모임이 형성됐고,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양양에서는 청년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양양에 정착한 대부분의 청년들은 각자 생업에 파묻혀 지내거나,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그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 대표는 기자에게 자신의 작업물을 보여주었다. 서울에서 처음 내려왔을 때 그렸던 어두운 색감의 그림과 사진, 현재 청년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며 찍은 밝은 색감의 사진들을 교차해 보였다. 그의 사진과 그림은 긴 터널을 지나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말해주는 듯했다.
글라시스튜디오에서 사진 아카데미 수업 모습.
‘우리가 함께 빛날 수 있도록, 나윤호 대표의 쉼 없는 발걸음’
“제가 청년들과 교류하고 싶은 이유요? 함께 해야 더 빛나고, 더 재미있으니까요.”
나 대표는 청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원하는 청년 네트워크는 단순한 모임이 아니다. 청년들이 함께 작업하고, 지역에 대한 생각을 나누며, 더 나아가 함께 지역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함께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2024년 5월, 그는 양양군 중심가에 ‘글라시 스튜디오’를 개업했다. 이곳은 단순한 사진 스튜디오가 아니다. 갤러리, 굿즈샵, 그리고 지역 청년들과 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SNS(인스타그램)를 활용해 지역 작가들과 소통하며,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청년 예술가들을 한데 모았다. 그 결과, 양양의 귀촌 청년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이며 활발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청년들이 직접 만든 굿즈를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원데이 클래스를 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지원, 사진 아카데미 교육사업 등을 진행하며, 청년 작가들이 직접 전시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역 청년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양양군 서핑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남애3리 해변에 설치된 안내 입간판을 제작하며,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과 브랜딩을 지역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나윤호 대표가 디자인과 브랜딩 경험을 살려 제작한 남애3리 안내 입간판.
‘청년 매거진, 나윤호 대표의 원대한 꿈’
“청년 매거진을 만드는 것이 오래된 꿈입니다.”
양양군에는 군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가 있지만, 청년들의 목소리는 통일된 형태로 모이지 않아 반영되기 어려웠다.
양양에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서핑 문화, 그리고 귀촌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청년들은 정착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이 직접 정착 경험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매거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가 구상하는 매거진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담겨, 지역에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청년들이 양양에 머물면서 느낀 점, 정착 노하우, 그리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에게 양양에서 활동하는 귀촌 청년들이 직접 쓴 책을 보여주며, 이곳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기록한 다양한 산물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기록들이 또 다른 청년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청년들이 스스로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양에서의 의미있는 삶이란 ‘공적인 가치’에 내 시간을 투자하는 거였어요.”
현재 글라시 스튜디오는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 기존의 공간을 더욱 개방적인 형태로 바꾸어, 지역 작가들의 전시와 굿즈 판매 공간을 확장할 예정이다. 또한, 굿즈샵을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라 ‘청년 창작자들을 위한 로컬 브랜드 제작 및 유통 지원 공간’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나 대표가 청년 창작자들에게 로컬 브랜딩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도우며, 제품 제작부터 판매까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기자가 “그럼 본인은 남는 게 있나요?”라고 묻자, 나 대표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저도 그들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각자의 작업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지역에 대해 함께 고민하면서 제 시야도 점점 넓어지는 걸 느끼죠. 그리고 이 공간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뜻밖의 기회들이 찾아오기도 해요. 그런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해요.”
겉으로는 글라시 스튜디오의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는 듯 보였지만, 기자의 눈에는 그것이 양양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단단한 디딤돌을 하나씩 놓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홍기성 기자 cogshi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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