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딛고 맺은 김 대표의 딸기 결실, 이제는 더 큰 꿈을 향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기자가 피지컬 베리를 찾은 날,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스마트팜 피지컬 베리’라는 팻말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고,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초록 잔디 위 방갈로,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채운 빨갛게 익은 딸기. 단순한 농장을 넘어 브랜드로 자리 잡은 ‘피지컬 딸기’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긴 공간이었다.
새로운 도전 위해 양양 정착
김수행 대표(30)는 2021년, 충주에서 양양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농부의 길을 걸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천안 연암대학을 다니며 그는 두 갈래의 길을 고민했다. 하나는 LG 특채를 통한 직장 생활, 다른 하나는 농업지도사의 길. 결국 농업지도사를 목표로 실습을 하던 중, 그는 우연히 딸기의 매력에 빠졌다. 그저 단순한 실습 과정일 뿐이었지만, 흙을 만지고 딸기를 키우는 과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농업을 배우며 그는 충주에서 찰옥수수 농사로 첫 발을 내디뎠다. 예상보다 농사는 잘되었고, 직접 재배한 찰옥수수를 도로변에서 판매하면서 자신감을 붙여나갔다. 그리고 마침 형이 양양에서 거주하고 있어, 겸사겸사 방문했던 것이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양양은 해양성 기후 덕분에 겨울철 난방비 부담이 적고, 관광객이 많아 체험형 농장 운영에 적합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양양 정착을 결심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세 가지 난관, 그가 마주한 현실의 벽
양양에서 딸기 농사를 시작하기까지 김 대표는 세 가지 큰 난관을 넘어야 했다. 첫 번째 난관은 바로 ‘지원 부족’이었다. 양양은 전통적으로 딸기 농사가 활발한 지역이 아니었다. 일부 귀농인들이 시도했지만, 특산품이 아니었기에 지원이 부족했다. 지금은 강원도와 양양군에서 약 56%를 보조해주지만, 김 대표가 시작할 때는 자부담이 무려 70%에 달했다. 초기 투자금액의 대부분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청년 농부들에게 대출이 필수적인 현실에서, 첫해 농사가 실패하면 그대로 빚더미에 오를 가능성이 컸다.
두 번째 난관은 ‘농지 확보’였다. 외지인으로서 양양에서 농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농지 정보를 얻기도 어려웠고, 소개받은 땅들은 대부분 조건이 좋지 않았다. 수개월 간 발품을 팔아가며 포기하지 않은 끝에, 그는 농어촌공사의 매입형 임대 토지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농장을 지을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난관은 ‘전기와 인터넷’이었다. 농장을 운영하려면 필수적인 요소였지만, 근처 전봇대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스마트팜 운영은커녕, 기본적인 시설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 결국 가족들에게 빌린 돈 3천만원을 들여 전봇대를 세웠다. 그사이 발전기로 하루 14만원어치의 기름을 태우며 농장을 가동해야 했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추가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해야 했다.
현실의 벽을 넘어선 김수행 대표는 이제 진정한 선배 농업인으로서,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딸기를 솎아내며 농사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철저한 준비와 끊임없는 시도로 결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농장을 지켜낸 끝에, 김 대표는 마침내 첫 결실을 맺었다. 수확량은 기대 이상이었고, 그의 딸기는 높은 품질을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했다. 그는 처음 2연동이었던 농장을 5연동까지 넓히며 조금씩 규모를 키워갔다. 가족들에게 빌린 빚도 차근차근 갚아나갔고, 힘든 시기를 지나며 더욱 단단한 청년 농업인으로 성장해갔다.
기자는 김 대표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운도 따랐지만, 그 운을 만들기 위해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했어요. 작물을 이해하려면 최소 2년은 기본이고, 제대로 된 농사를 위해서는 5년은 배워야 합니다.”
실제로 그는 농업대학교에서 이론을 익힌 후 전국의 유명 딸기 농장을 찾아다니며 실전을 경험했다. 발로 뛰며 배운 덕분에 작물의 상태를 한눈에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공부해도, 결국 농사는 하늘과 함께 짓는 것”이라며 농업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청년 귀농인들에게 철저한 준비와 함께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 하기보다, 선배 농업인들의 조언을 듣고 체계적인 교육과 실습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면 가능성이 훨씬 높아져요. 신중하게 준비하고 필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귀농은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입니다.”
김 대표는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바탕으로 예비 농업인들을 교육하며, 그들이 미리 역경을 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다른 꿈, 청년 농업인 지원
김 대표의 목표는 현재 5연동의 딸기 농장을 15연동으로 확장하고, 베이커리 카페와 연계해 브랜드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새롭게 귀농하는 청년 농업인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제가 처음 정착할 때만 해도, 양양에서는 딸기 농사에 대한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배울 곳이 없었어요. 하지만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 귀농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조언과 체험 실습을 제공하고 싶어요.”
현재 양양군은 국책사업으로 임대형 스마트팜을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이 사업이 청년들의 초기 정착에 필요한 재정적 리스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한 가지 제안을 덧붙였다. “정착 전에 청년들이 1년 정도 머물 수 있는 임대주택을 제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한 달 월세 30만 원 수준이면 충분히 부담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이야기를 마친 김 대표는 다시 딸기를 솎아내는 작업에 집중했다. 방금 전까지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였지만, 일터로 돌아간 순간 농부의 진지한 눈빛이 자리 잡았다. 손끝으로 딸기를 하나하나 살피며 집중하는 그의 모습에서, 기자는 청년 농업이 나아갈 방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현실의 벽을 넘어선 그의 도전이, 앞으로 더 많은 청년들에게 영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홍기성 기자 cogshi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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