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군 거리에 눈이 소복이 쌓인 날, 차가운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매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 앞에서 누군가가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추우셨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커피를 건네는 이는, 인테리어 소품샵 ‘양양 오백이’ 의 나현아 대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매장 안은 아늑했다. 우아하면서도 정적인 공간, 마치 백조처럼 부드럽고 고요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오백이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은 나현아 대표. 이제 그녀는 오백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자 한다.
미운 오리 새끼, 양양에 둥지 틀다
기자는 그녀에게 성격도 우아한 매장 분위기를 닮았을 것 같다고 말을 건넸다. “혹시 미운 오리 새끼 아세요?”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과거를 회상하며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간호장교로 복무하던 그녀는 같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충남 계룡에 한동안 머물렀지만 결국 양양으로 발령받아 오게 됐다.
그러나 양양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낯선 곳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거리는 텅 비어 있었어요. 그리고 양간지풍이라고 하나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때면 더 막막했어요.” 그렇게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양양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마인드 덕분에 낯설고 삭막했던 곳에서 조금씩 새로운 길을 찾아갔다.
돈이 안 되어도 “일단 해보자”
양양에서 세 아이를 키우게 된 그녀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연을 체험하게 하며 하루하루 무던히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자연과 가까운 학교를 다니며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삶의 안정감을 찾아가던 그녀는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 고민하던 차에 문득 자신이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꽃을 해보자.”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강원도에서 경력단절 지원금을 받아 화훼 공부를 시작했고, 하와이의 화관 문화를 접하면서 사업을 구상했다. 양양에서 워낙 생소한 문화라 사업은 유치되었지만, 꽃으로 만든 화관은 금방 시들었고, 만들기가 워낙 까다로워 수익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돈이 되지 않더라도 한번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념품 판매에도 도전했다. 다른 상점들이 기념품을 판매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해보았지만,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손님들은 매장을 가볍게 둘러본 뒤 별다른 관심 없이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어느덧 2년이 지나갔다.
오백이의 모습. 큰아들의 손에서 우연히 탄생했지만, 그녀에게 정체성을 찾아준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오리 닮은 백조 ‘오백이’의 탄생
‘오백이’라는 이름은 ‘오리를 닮은 백조’에서 따왔다. 처음 양양에 왔을 때 그녀는 마치 미운 오리 새끼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찾아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오백이’였다. 오백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백조다. 꽃밭이 있으면 향기를 맡고, 잔디가 있으면 뒹굴고, 나무를 보면 매달려 노는 개구쟁이다.
이 캐릭터를 만들게 된 계기는 ‘로컬브릿지 양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양양에서 만난 지인들이 ‘백조 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백조라… 근데 난 철새가 아니라 텃새가 됐네?” 철새는 계절에 따라 서식지를 옮기지만, 환경이 맞으면 한곳에 정착하기도 한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양양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 텃새처럼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그녀는 ‘백조’라는 단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싶어 아들에게 백조 그림을 그려보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는 확신했다. “이거야! 이게 바로 오백이야!”
백조의 우아함이 깃든 공간. 그러나 오백이의 개성이 더해져 그녀만의 특별한 장소로 완성되었다.
양양을 ‘오백이의 도시’로
이제 그녀는 오백이를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양양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로 키우려 한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이 ‘아, 여기가 오백이의 공간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오백이를 통해 저의 이야기를 전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요.” 과거에는 손님들이 매장을 휙 둘러보고 금세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백이를 만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많은 손님들이 그녀의 공간에 머물며 오백이의 스토리를 하나씩 읽어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오백이라는 캐릭터와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결합해, 함께 성장하는 브랜드로 발전시키려는 포부도 지니고 있다.
“양양에 처음 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면서 점차 제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죠. 이제는 양양에 잠시 머물다 가는 철새 같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처럼 정착을 고민하는 텃새 같은 사람들에게 오백이를 통해 다가가고 싶어요.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영감을 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미운 오리 새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백조가 되어 양양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정착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용기를 전하고 있다.
오백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양양이 잠시 머물기만 하는 쉼터가 아니라 새롭게 가능성을 찾는 둥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홍기성 기자 cogshi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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