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김○달씨를 이용해 역용공작을 벌인 육군보안사령부는 처음에는 이 불온서신을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처음 보안사령부가 작성한 ‘불온서신 수사계획 보고’에는 이 사건에 대해 △납북귀환어부 중 김 씨와 원한관계가 있는 자의 모함 △경찰 및 수사기관의 함정수사 △기타 어업상 개인감정 △간첩행위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사건 발생 후 사령부에서는 수사관을 고성으로 보내 조사한 진행했다. 그리고 불온서신 발송을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감청장비까지 동원해 김 씨를 밀착 감시했다. 김 씨 부부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집안에 도청기까지 몰래 설치했다.
보안부대, ‘불온서신은 경찰의 함정수사’
그런데 불온서신이 날아온 지 한 달도 안되어 1973년 12월 24일 김 씨의 부인 김○자씨가 다시 집 방안에서 불온서신을 발견해 보안부대에 신고했다. 보안부대는 최초 김 씨를 간첩용의자로 제보하고 경찰정보원으로 공작수사에 동원된 김 씨 절친 김○학 씨를 불온서신 작성자로 의심했다. 그래서 보안부대는 12월 29일 두 건의 불온서신과 김○학 씨의 필적을 확보해 육군과학수사연구소에 필적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첫번째 불온 서신은 동일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두번째 불온 서신은 다른 사람의 필적이라고 감정 결과가 나왔다.
보안부대는 김 씨를 적극 감시했으나 수상한 동향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 씨 집에 설치한 도청기 밧데리가 다 떨어져도 추가 설치를 하지 않고 동향 감시에만 주력했다. 그러다가 다음해인 1974년 2월 4일 김 씨가 경찰정보원 김○학에 의해 강원도경찰국 대공분실로 연행된 사실을 알고는 김 씨 공작수사를 다시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보안부대는 경찰이 1973년 5월 16일경 절친이며 경찰정보원인 김○학의 제보를 받아 9개월 전부터 김 씨에 대해 불법 공작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래서 보안부대는 1974년 2월 26일 수사 종결을 건의했고, 보안사령부는 이미 경찰이 공작수사 중인 사건이라고 수사 종결을 지시했다.
보안부대는 이 수사종결 건의문서에 결정적으로 김 씨가 경찰의 불법공작과 함정수사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내용을 남겼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해당 문서에서 “그간 김○달의 집에 전달된 2통의 서신은 경찰의 함정수사 과정으로 사료됨”이라는 내용과 “본건은 도경 대공분실에서 수사공작을 진행하였으나 용의점을 발견치 못하고 반공법 제4조 위반이라는 사유로 입건할 동향”이라는 내용을 확인했다. 당시 반공법 제4조는 고무찬양죄이다.
보안부대 문서뿐만 아니라 2개월 후 경찰의 보고문서에도 김 씨의 간첩 용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성경찰서는 1974년 4월 20일 속초지청 검찰에 보낸 ‘반공법 위반 피의자 검거보고’에서 “1973.5.8. 피의자에 대한 반공법 위반 사실을 입수, 간첩 용의자로 추정 계속 공작 중 간첩 혐의 없어 해당 법조에 의거 입건 처리코저 검거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작성해 보고한 경찰의 ‘범죄인지보고’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경찰은 김 씨의 간첩 혐의가 없어 고무찬양 혐의로 체포해 구속해 놓고 김 씨에게 잠입과 간첩혐의를 더해서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것이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김 씨를 북에서 지령을 받고 잠입해 군사 및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한 간첩으로 만들어 1심과 2심에서 무려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게 만들었다.
진실화해위는 경찰이 김 씨를 체포해 구속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불법사실을 밝혀 냈다. 경찰의 검거보고 문서에는 1974년 4월 19일 오전 10시 김 씨가 자택에서 검거된 걸로 나온다. 한편 수사공판기록에는 김 씨가 검거일 3일 후인 1974년 4월 22일 영장이 집행되어 오후 4시 35분에 구속된 걸로 나온다. 그리고 김 씨에 대한 피의자 1차 심문조서는 검거 전날인 4월 18일, 2차 심문조서는 검거일인 4월 19일에 작성된 걸로 나온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진실화해위는 김 씨가 4월 22일 구속영장이 집행되기까지 최소한 5일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의 불법체포와 불법감금은 해당 사건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아울러 진실화해위는 수사기관이 김○달을 대상으로 불온서신을 보내는 등 증거를 위조하여 함정수사 등 공작수사를 한 것은 국가보안법의 무고, 날조죄 및 형법의 타인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른 간첩조작사건처럼 김○달씨의 진술 내용이 불법 구금을 포함한 경찰의 강압 수사로 달라진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김 씨의 아들 김○하 씨는 경찰의 함정수사로 의심이 되는 일을 직접 겪기도 했다. 김○하 씨는 “어릴 때 쌀독을 열고 바가지로 푸는데 이상한 게 걸리기에 꺼내보니, 랜턴에 끼는 사각 배터리같이 생긴 것에 ‘폭발물이니 만지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길래, 겁이 덜컥나서 집 뒤안에 던져 놓았다. 저녁 때 집에 들어온 어머니한테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신고하라고 해서 내가 방첩대에 찾아가서 그 사실을 알렸다. 그때 경찰도 찾아와서 사실을 확인하고 갔다.”고 말했다.
보안부대 김○달 역용공작 문서에 나오는 드보크 현장 약도. 212 보안부대는 김 씨를 시켜 거진읍 뒷장해변 김 씨 집 주변에 간첩 접선에 쓰는 드보크를 설치했다.
왼쪽은 1973년 11월 28일 김 씨 집에 날라온 불온서신, 오른쪽은 1개월 후인 12월 24일 다시 김 씨 집에 날아온 불온서신.
부친 간첩으로 몰려 집안은 풍비박산
지령 내용을 담은 편지나 경고글을 적은 폭발물은 당시 김 씨 집안 사정을 보면 정말 황당한 일이다. 김 씨와 부인은 둘 다 한글을 몰랐다. 김 씨의 아들 김○하 씨는 “부친이 글을 몰라 고모나 삼촌에게 편지를 쓸 때 어린 내가 부친이 불러주는 내용을 편지에 받아 적어서 보낸 걸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가 공개한 첫 번째 불온서신에는 “김동지가 인민공화국 정부를 위해서 잘 싸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소. 김동지에게 혁명사업을 지령하니 잘 싸워주면 다음 만나서 수령님의 공과 표창을 받을 것이오”라고 적혀 있다. 김 씨의 부인은 방안에서 이 불온서신을 발견하고 글을 몰라 반장집에 가서 읽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보안부대에 사건이 신고되었다. 두번째 불온서신에는 “동무의 혁명과업 수행을 높이 치하합니다. … 이번 임무를 잘 수…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께서 높이 상을 내일(릴) 것이요”라고 적혀 있다. 이 불온서신은 김 씨의 부인이 발견해 보안부대에 신고했다. 당시 보안부대는 수사를 종결하면서 결론적으로 두 개의 불온서신은 경찰의 함정수사로 만들어진 걸로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김 씨가 간첩으로 몰려 구속되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때꺼리가 없어 김 씨의 부인은 석산 돌 채취현장에서 일하다가 장마철 산사태로 바위에 깔려 허리와 다리를 크게 다쳤다. 중학교 1학년이었던 장남 김○하 씨는 교납금을 내지 못해 14살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오징어배를 탔다. 공부를 하고 싶어 거진 세비촌에 있는 학원을 다녔지만, 결국 학원도 그만둬야만 했다. 철공소, 기계수리점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어린 동생들까지 챙겼다. 나이 스물이 다 되어 김○하 씨는 출소한 부친을 형사랑 같이 가서 모셔왔다. 교도소에서 나오신 아버지가 초췌한 모습으로 손을 꼭 잡으며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건넬 때는 가슴이 울컥했다.
연좌제와 사찰로 인해 가족과 친척의 피해도 컸다. 김○하 씨는 “성인이 된 후에도 부친이 돌아가시 전까지 수사기관에서 계속해서 집에 찾아와 감시했다”며, “아버지 때문에 고모 아들이 경찰이 되려고 했는데 신원조회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하 씨는 거진 골짜기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너희 아버지는 너무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갔지만, 너는 잘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 걸 기억하고 있다. 김○하 씨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청와대 민원 제기를 시작으로 25년 동안 여러번 부친의 누명을 벗기 위해 시도했다.
김○하 씨는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에도 남들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 복이 우리한테 전해져 좋은 일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 어머니는 팥죽을 한 솥 끓여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찾아와 먹게 했다. 동네 어른들이 일을 나가면 어린 애들도 잘 봐주었다. 아이들이 체해 경기를 일으키면, 한밤중에라도 마다하지 않고 침을 놔줬다. 지금 김○하 씨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 고성군에서 지역사회 복지사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김○하 씨는 “50년 동안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아 너무 기쁘다”며, “부친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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