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거짓 불온서신을 집에 몰래 보내는 함정수사를 벌이고, 절친한 사람을 경찰 정보원으로 포섭해 만취토록 술을 먹여놓고 북한 관련 발언을 했다고 누명을 씌워 아무 죄 없는 거진의 한 어부를 간첩으로 만들었다. 50여년 전인 1974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사는 한 납북귀환어부는 경찰의 불법 공작수사와 사건조작으로 간첩으로 내몰려 8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 만에 이같이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졌다.
지난 1월 21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납북귀환어부 김○달 반공법 위반 등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여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다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납북귀환어부인 김○달 씨가 1974년 수사기관의 함정수사 등 위법한 공작수사 끝에 불법구금 등의 불법적인 수사를 받아 반공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고 장기간 사찰을 받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경찰은 정보원의 제보를 통해 피해자를 공작대상자로 삼아 수사하면서 불온서신을 조작하는 등 함정수사를 했고, 보안부대 역시 피해자를 활용한 역용공작을 계획해 실행했으며, 경찰이 김 씨를 최소 5일 이상 불법구금한 사실도 확인했다.
진실화해위는 “김 씨와 가족들은 수사정보기관의 지속적인 감시와 사찰 등 인권침해를 당해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웠으며, 사회의 부정적 차별적 인식 등으로 자녀들이 장래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 등 오랫동안 피해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이들이 명예와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한 재심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지난 2월 19일 필자는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린 부친에 대해 지난 2021년 8월 진실규명을 신청해 3년 6개월 만에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결정서를 받은 아들 김○하 씨(63세)를 만나서 진실결정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 지역의 납북귀환어부가 경찰과 보안대의 불법 공작과 사건조작으로 어떻게 간첩으로 만들어졌는지, 대공실적에 눈이 먼 경찰이 약점이 있는 납북귀환어부를 어떻게 사냥감으로 삼았는지, 이 사건을 통해 충격적인 진실을 확인했다.
1974년 간첩으로 몰려 대법원에서 징역 8년 선고
고 김○달 씨(1926년 생)는 1968년 5월 9일 신진호를 타고 거진항을 출항해 동해상에서 조업 중에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북되었다. 그해 10월 31일 납북어선 12척과 어부 107명이 귀환할 때 김 씨도 함께 귀환했다. 당시 신문 기사와 판결문을 종합하면 신진호는 납북 당시 배가 파손되었는지, 귀환 당시 선원 8명 중 6명(신문보도는 5명)이 다른 배인 거진항 선적 신영호를 타고 귀환했다고 나온다. 정부가 파악한 미귀환 납북어부 명단에는 신진호 미귀환 선원 2명이 나온다.
김 씨는 이 납북귀환사건으로 다른 신진호 선원들과 함께 구속되어 춘천지법 강릉지원과 춘천지방법원의 항소심 재판에서 반공법 탈출죄와 수산업법 위반으로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6월, 벌금 5,000원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2월 22일 신진호를 포함해 이때 귀환한 12척 107명의 납북귀환어부에 대해 진실규명 직권조사를 결정해 지금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 씨는 귀환한 지 5년 6개월 후인 1974년 4월 중순 반국가단체로부터 지령을 받고 잠입하여 북한의 활동을 찬양하였다는 혐의로 강원도경찰국 정보과 소속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그해 4월 22일 구속되었다. 경찰은 사건을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청으로 송치했는데, 속초지청은 이 사건을 중죄를 다루는 합의부 사건이라고 강릉지청으로 이송했다. 그해 5월 28일 기소된 김 씨에 대해 1974년 9월 10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는 간첩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서울고등법원은 김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김 씨는 다시 상고해 대법원에서는 1975년 4월 22일 경합법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반공법 잠입죄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반공법 고무찬양죄와 간첩죄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의 형을 선고했다.
경찰이 절친을 정보원으로 포섭해 불법 공작수사
1심 강릉지원의 판결문에서는, 김 씨는 납북 당시 동해 어로저지선을 월선하여 어로작업 중에 북한경비정에 피랍되었다가 반국가단체로부터 지령을 받고 거진항으로 잠입하여 북괴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하고 동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군사 및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고 동시에 간첩활동을 했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는 김 씨가 납북되어 반국가단체에 억류 중에 북한의 평화통일위원회 소속 지도원으로부터 세뇌교양을 받고 세뇌되어 간첩활동의 지령을 받고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부터 거진항으로 잠입했다고 했다. 이미 귀환 후 반공법 탈출죄로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김 씨를 재판부는 반공법 잠입죄까지 적용해 잠입 간첩이라고 적시했다. 귀환납북어부를 수사기관이 불법수사를 통해 잠입 간첩으로 조작한 사례는 이미 다수의 납북귀환어부사건 진실규명에서 밝혀졌다.
판결문에는 김 씨가 1973년 5월 8일부터 7월 5일까지 2개월 가량 8회에 거쳐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거진읍 거진1리 속칭 분자어머니 술집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2회 발언하고, 같은 동네 절친인 김○학의 집에서 6회 발언을 했다고 나온다. 적시된 내용은 주로 김 씨가 납북되어 북에서 보거나 겪었다는 북한 실상 관련 내용이다. 그런데 김 씨가 8회나 고무찬양을 했다는 자리에는 항상 김 씨의 동네 절친인 김○학 씨가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김 씨를 처음 제보한 사람이 바로 김○학 씨로 경찰이 정보원으로 포섭해 불법 공작수사에 이용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당시 보안부대 문서를 통해 확인했다.
김씨는 당시 1심 판결 후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은 그런 찬양고무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모략에 빠졌다가 했다. 김 씨는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친지 김○학이 본인에게 술을 사주겠다고 하면서 자기는 작은 잔으로 먹고 본인에게는 만취하게 하여 놓고, 술에 만취된 본인으로 하여금 이북에 납북되어 가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었다. 본인은 그 누구에게도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한 사실도 없고, 더구나 선전할 일도 없는 것인데 본인에게 무고하게 누명을 씌우고자 하여 김○학의 모략에 빠졌던 것이다. 김○학은 친지로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대공분실에 정보원으로서 정보를 얻어 사건 보고함으로써 보상금을 타먹으려 하는 흉계에 말려 들었던 것이다. 아무런 죄 없는 피고 본인에게 김○학은 여러 번이나 자기 집에 혹은 술집 등에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면서 만일 제가 부름에 가지 않으면 자기 자제를 보내면서까지 전후 이십 여차에 걸쳐 술을 강제로 먹이면서 이토록 사건을 만들고 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판결문에는 김 씨가 간첩활동으로 귀환 후 풀려나온 1968년 11월 1일경부터 1974년 4월 17일경까지 동해안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군사 및 국가 기밀을 탐지 수집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수집내용한 군사 및 국가기밀은 △고성과 속초 사이에 해안초소가 수없이 있다 △속초종합버스 주차장이 중앙동에서 동명동으로 이전되었다 △춘천지법 속초지원, 춘천지검 속초지청, 속초시청이 신축되었다 △해안경비 써치라이트가 고성군 죽왕면 석포리 산봉우리에 1대, 거진읍 거진리 뒷산에 1대, 속초시 대포동 산봉우리에 1대씩 있다 △고성군 거진리 뒷산에 한국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거진리 뒷산에 군초소가 3개소 있다 △고성군 현내면 제진리 포진에 한국군이 주둔해 있고, 중간 지역을 흰불이라고 부른다 등이다.
판결문에 군사 및 국가기밀이라고 적시된 정보는 당시 김 씨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이면 모두 알 수 있는 일상정보로 기밀의 가치가 없는 게 대부분이다. 설령 이런 정보를 수집했다고 해도, 누구에게라도 정보를 전달하려 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는다. 197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공안사건 재판이라는 게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었는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법원에서 최종 8년의 형을 선고받은 김 씨는 강릉과 서울교도소를 거쳐 대전교도소에 복역했다. 형기 종료 2개월 가량을 앞둔 1982년 3월 3일 가석방되었으며, 1990년에 사망했다.
경찰 공작수사 중 보안대는 김 씨를 역용공작에 동원
진실화해위 조사에 따르면, 경찰은 1973년 5월 16일 김 씨의 절친 김○학으로부터 ‘김 씨가 고정간첩으로 사료된다’는 제보를 받아 공작을 개시해, 다음해인 1974년 4월 19일 김 씨를 구속할 때까지 11개월 동안 공작수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경찰의 간첩색출 공작수사 기간 중인 1973년 11월말부터 212 보안부대는 공작명 ‘천호’라는 이름으로 김 씨를 활용한 역용공작을 3개월 동안 진행했다. 역용공작은 북의 지령을 받았다고 실토한 납북귀환어부에게 실제로 지령을 수행하는 간첩행위를 강요해 접선을 시도해온 간첩을 검거하는 비밀공작이다.
경찰의 공작수사 중이던 1973년 11월 28일 10시경 김 씨의 처 김○자는 발송인 불명의 우편 서신을 받았다. 한글을 모르는 김○자 씨는 거진 반장 김○대를 찾아가 그의 처에게 우편물을 읽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반장 김○대의 처가 우편물을 읽어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주민이 수상하게 여겨 다른 주민에게 편지의 내용을 전했고, 그 주민이 수상한 편지 내용을 보안부대에 신고해 김○달 씨에 대해 보안부대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신고를 접수한 보안부대는 김 씨를 동원한 역용공작을 세우고 실행했다. 정보원을 배치해 김 씨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철저히 감시해 용의자가 방문 시 검거할 계획을 세웠다. 김 씨에게 서신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드보크를 설치토록 하고 접근자를 감시했다. 김 씨의 집으로 날아오는 우편물을 요원을 투입시켜 엄밀히 내사했다.
같은 시기에 경찰은 김 씨를 간첩으로 만드는 불법공작수사를 진행했고, 보안부대는 간첩을 잡기 위해 김 씨에게 가짜 간첩활동을 하도록 역용공작을 진행했다. 대공실적을 올리려는 두 기관이 납북귀환어부 한 명을 두고 상반된 대공공작을 동시에 진행한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보안부대가 작성한 역용공작 관련문서에서 당시 경찰이 김 씨를 대상으로 불법 함정수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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