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실향민 출신 고성군 주민이 어로작업 중 납북되었다가 귀환 후 간첩으로 내몰려 16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이같이 충격적인 진실은 지난해 12월 17일 진실화해위원회가 ‘납북귀환어부 김○규 반공법 위반 등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사건은 1968년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어부 김 씨가 1969년과 1981년 두 차례에 걸쳐 불법 구금 등의 불법적인 수사를 받아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6년간 수감되는 처벌을 받고, 장기간 사찰받은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 씨가 1969년 반공법 위반사건으로 약 4일 동안, 1981년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으로 최소 16일 동안 불법으로 구금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1969년과 1981년 사건 모두 경찰이 피의자 신문조서나 참고인 진술조서의 작성일자를 검거보고 이후의 날짜로 수정해서 기재하는 등 공문서 위조·변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에 해당하는 위법행위를 했음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특히 1981년 사건은 경찰이 ‘금발사’라는 별칭으로 공작수사를 진행했는데, 강원도 경찰국과 내무부 치안본부의 승인까지 받아 진행된 간첩검거공작이었다”며, “이 과정에서 김씨와 가족들이 수사정보 기관의 지속적인 감시와 사찰을 받았고, 김 씨 주변인을 정보망으로 활용한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진실규명 대상자를 불법구금하고 공작수사를 통해 범죄자로 처벌받게 한 점과 대상자와 가족들을 장기간 사찰하여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 대상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그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 등의 조치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고 김○규 씨의 아들 김○태 씨는 부친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난 2022년 1월 24일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해 근 3년 만에 진실규명결정이 이뤄졌다. 지난 1월 6일 필자는 대진에 거주하는 김○태 씨를 만나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보내온 진실결정문과 조사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7년 국정원 진실규명위 보고서에 언급
김○규 씨 간첩조작사건은 지난 2007년 10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과거 공권력이 위법적으로 개입해 벌인 인권침해나 불법행위에 대해 진상규명을 진행하고 발간한 조사결과 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국정원 진실보고서에서는 납북어부들이 북한지역에서 보고 들은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옮길 경우, 예컨대 “북에 가보니 기계로 농사를 짓더라”나 “농촌에도 전기가 들어와 있더라” 등의 이야기를 하면 반공법 상의 고무·찬양죄로 처벌하는 일은 빈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는 이 내용 주석에 “1981년 10월 16일 치안본부에 의해 체포된 김○규의 경우, 1968년 7월 1일 납북되었다가 같은 해 10월 31일 귀환한 뒤 재판에 계류 중 주민들에게 북한에 대해 선전한 혐의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5년 형을 받았고,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 또다시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은 바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보고서에는 조작이 의심되는 주요납북어부간첩사건으로 1981년 10월 15일 검거된 고성 김○규(60세) 사건을 함께 거론했다.
김○규 간첩조작사건은 국정원 과거사 진실보고서에서 언급되었지만 이후 진실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히 17년 만에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규명이 이뤄졌다. 2023년 1월 24일 김○규의 3남 김○태는 2003년에 돌아가신 부친이 납북귀환 후 수사기관에 불법으로 연행되어 복역하는 등 억울한 피해를 겪은 것에 대해 진실을 규명해 부친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 기록에서 불법구금 사실을 확인해 이 사건을 중대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2023년 9월 12일 조사개시를 의결해 그동안 조사를 진행해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규 간첩조작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의 불법행위 여부, 가족들이 당한 감시와 사찰, 취업과 진로 피해를 밝히기 위해 자료 검토와 관계자 진술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다.
영변 출신 실향민, 납북 귀환 후 간첩으로 몰려
김○규는 1922년 평안북도 영변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중 북한군으로 참전했다가 탈출해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친척집에 은신했다. 김 씨는 북에서 결혼해 처와 자녀를 두고 군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남으로 혼자 내려온 월남 실향민이며 이산가족이다. 김 씨는 전쟁 중에 다시 국군 노무자로 징발되었다가 1954년 2월 국군에 입대했으나 다음해 어깨골절로 의병제대를 했다. 1956년 11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 들어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생활했다. 김 씨는 남에서 다시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다.
김 씨는 1968년 7월 2일 고성 대진항 선적인 금융호를 타고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납북되었다가 같은 해 10월 31일 거진항으로 귀환했다. 금융호 선원 16명 중 9명은 귀환하지 못했고 7명만 귀환했다. 금융호 미귀환 선원 윤능산 씨는 2007년 9월에 북에서 탈출해 고향인 제주도 우도로 귀환했다. 김 씨를 비롯한 귀환 선원들은 귀환 후 납북과 귀환 경위에 대한 조사를 거친 후 1968년 11월 19일 금융호 선장과 기관장은 구속되었고, 김 씨를 비롯한 선원 5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고 있던 김 씨는 취로사업에 나가서 동네 주민에게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1969년 3월 12일 구속되었다. 김 씨는 납북되어 평양에서 북한 노동당에 입당하고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만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에 잠입해 왔으며, 남에서 자수하지 않고 동네 주민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고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김 씨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반국가단체 가입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 불법지역왕래, 탈출 잠입, 찬양 고무 등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항소, 대법원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김 씨는 형이 확정되어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본인 구속으로 중단된 납북귀환사건 재판이 대전지방법원으로 이송되어 재개되었다, 1971년 6월 김 씨는 대전지방법원에서 반공법 탈출죄와 수산업법 위반으로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 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김 씨를 제외한 금융호 귀환어부들은 이미 1969년 5월 1일 속초지원에서 징역 10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선장을 제외한 선원들은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 씨가 승선했던 금융호와 함께 귀환한 12척 107명의 납북귀환어부에 대해 현재 직권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이번 김 씨의 진실규명에서는 징역 1년 선고 부분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1969년 사건, 4일간 불법구금과 문서위조 확인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김○규는 1969년 3월 12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고성경찰서에 구금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3일 앞선 3월 9일 경찰은 김○규의 반공법 위반 혐의를 인지하고 두 차례나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는데, 연행을 증명하는 체포보고 또는 피의자검거보고는 작성되지 않았다. 더구나 경찰은 김 씨에 대해 범죄인지보고를 하기도 전인 3월 8일에 참고인 1명의 조서를 작성했다. 김 씨는 상고이유서에 본인이 3월 8일에 구속 감금되었다고 기재하였다. 3월 8일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4일 전이다. 김 씨의 범죄를 입증하는 참고인 3명의 진술조서 작성일자도 3월 8일에서 3월 10일로 고쳐 적은 흔적도 확인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규가 1969년 반공법 위반사건에 관련해 1969년 3월 8일 구금되어 구속영장이 집행된 3월 12일까지 4일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의 불법구금은 형법 상 불법체포, 불법감금죄에 해당되어 중대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술조서 등의 작성일자를 허위로 기재한 행위는 형법 상 공문서 위조·변조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규는 이 사건 항소이유서에서 “본 피고인의 교육정도나 생활환경이 소위 북괴의 조직원으로 활약할만한 처지가 되지도 않는데 수사기관에서는 지나친 허위자백 위주로 순박한 양민을 마치 중대한 국사범인양 취급하여 피검된 이래…”라며,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은 허위자백이라고 항변했다.
김 씨는 항소이유서에서 “만 4개월만인 동년 11월 1일에 귀항하였다. 귀향하여 고성경찰서에 유치되어 있다가 동년 11월 21일에 출감되어 귀가하였다. … 재해주택복구사업장에 23일부터 노동을 하러 나가게 되었다. 바로 그날인 점심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서 기재되어 있는 고소인들이, 즉 이 사람들은 사장, 이장, 언론계, 농업, 상업을 겸한 등등의 유지급이었다. 피고인에게 하는 말이 이북에도 사람이 있드냐 묻기에 없다고 대답했어야 할 것을 있드라, 자동차(가) 있드냐, 있드라 대답을 하였고 … 아주머니(미귀환자 김○희의 모친)가 왜 우리 아들은 안 데리고 왔느냐고 하기에 오자고 하여도 안 왔다고 대답을 하였으면 될 것을 사실대로 김일성대학에 간다고 하면서 데리고 가고서는 안 오드라 이렇게 사실대로 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조서에 기재된 바와 같이 대답을 하였고 묻지 않는데 말한 것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의 고소로 인하여 1969년 3월 8일에 구속 감금되었다.”라고 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1969년 3월 경찰은 북에 끌려가서 보고 들은 내용을 사실대로 이야기한 납북귀환어부 김○규를 지령을 받고 돌아와 북을 찬양고무한 것으로 누명을 씌웠으며, 영장도 없이 김 씨를 연행 구금해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문서까지 조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이 사건에 대한 김 씨의 항소이유서 내용이 맞다면, 김 씨를 비롯한 금융호 선원들은 귀환 후 20일 동안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되어 조사를 받은 것도 확인된다. 경찰과 조사기관의 무도한 불법 날조행위로, 월남 실향민인데다 납북귀환어부라는 약점을 가진 김○규 씨는 억울하게 간첩으로 내몰린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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