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귀환어부들 중 상당수는 귀환 후에 다시 국가폭력 피해를 겪었다. 그 중 가장 황당한 사례가 협동호 염○선씨의 반공법 고무찬양죄 위반사건이다. 1972년 5월 10일 속초항으로 귀환한 납북귀환어부 협동호 선원 염○선씨는 귀환 5년 후인 1977년 12월 주문진 자기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강릉경찰서 정보과 대공형사들 앞에서 북한을 찬양했다는 사유로 반공법 고무찬양죄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고 염○선씨의 아들 염○진씨는 2022년 8월 진실화해위원회에 부친이 납북귀환 후 억울하게 처벌받았다고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때도 염씨는 부친이 귀환 후 반공법 고무찬양죄로 추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알지 못했다. 고 염○선씨의 추가 형사 처벌 사실은 올해 2월 6일 공개된 진실화해위원회 창동호와 협동호 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결정보고서에서 확인되었다. 다음은 보고서에 나온 고 염○선씨의 1977년 반공법 위반사건 내용이다.
협동호 선원 염○선은 1977년경 예비군 교육훈련을 받던 중 폭행사건이 벌어져 경찰관들로부터 주의를 받자 경찰관 등이 있는 자리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월 및 자격정지 3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염○선은 귀환 후 경찰과 정보기관에 역용공작으로 간첩 색출에 조력하였음에도 공작업무를 수행하던 정보담당 경찰관 등이 잠수업에 대한 허가를 얻어주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갖고 고충을 덜어달라는 뜻으로 불온 언동을 한 것이라며 항소하였다. 이에 대해 춘천지방법원은 염○선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법리를 오해한 점도 없어 원심판결의 형량이 무겁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항소를 기각하였다.
보고서 내용을 확인한 아들 염씨는 국가기록원과 검찰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사건기록을 확보했다. 필자는 염○진씨의 도움으로 협동호 선원 고 염○선의 1977년 반공법 위반사건 내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대공형사와 술자리에서 이적성 발언
고 염○선(사건 당시 33세)은 1944년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에서 태어나 사건 당시에도 주문진에 살고 있었다. 염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을 따라 어로에 종사하면서 태권도 3단을 따서 1964년 8월까지 경북 영덕군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다가 귀향하여 어로에 종사했다. 1966년 4월 29일 육군에 입대해 복무 중에 1년 2개월 간 백마부대로 월남에 파병되는 등 3년간의 군복무를 마쳤다. 1971년 6월 3일 고성군 거진항 협동호 선원으로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피납되어 11개월 동안 억류되었다가 1972년 5월 10일 귀환했다. 이 납북귀환사건으로 염씨는 구속되었다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염씨를 비롯한 협동호 선원들이 귀환 후 구속영장 없이 불법구금된 채 가혹행위 등을 당한 점이 인정되어 국가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재심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염씨는 1973년 이후 자기 소유의 2톤급 무허가 잠수선의 허가 취득을 소망해 왔다. 그래서 염씨는 자신과 대공 역용공작을 함께 진행 중인 강릉경찰서 정보과 형사에게 잠수기 허가 취득을 계속 요청했다. 문제의 사건이 발생하기 보름 전인 1977년 12월 1일, 명주군청 수산과에서는 연안잠수어업 허가신청 희망자 23명을 추첨하여 이중 7명만을 허가했다. 염씨는 이 추첨에서 떨어졌다.
1977년 12월 17일 오후 2시경 염씨는 예비군훈련에 참가해 훈련을 마치고 인근 구멍가게에서 서로 다른 지인들과 세 차례에 걸쳐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예비군훈련에 참여한 지인과 함께 자신의 집에 돌아와 부인이 받아준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가 술판에서 다툼이 일어 염씨는 술상을 발로 차고 “선후배도 모르냐”고 폭언을 퍼붓고 지인을 폭행했다. 마침 부인의 만류로 지인은 염씨를 피해 도망갔고, 염씨는 다시 술을 마시러 나가다가 대문 앞에서 강릉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을 만나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부인을 시켜 소주를 사와서 자기 집 방안에서 같이 술자리를 했다.
이때 강릉경찰서 정보3계장(대공계장)이 염씨에게 “처자식을 위해 술을 먹지 말고 착실하게 살라”고 말했다. 이에 염씨는 형사들 앞에서 “나의 사상은 다른 데 있다. 처자식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당과 수령님을 위해서 살고 있다. 오직 나는 혁명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일하고 있다. … 잡아 갈테면 잡아가라. 내가 바라는 잠수선은 허가를 얻어서 운영하여 공작금으로 쓰려고 한다. 자본주의는 이래서 탈이다”라고 발언했다. 위 발언은 경찰의 염씨 검거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며, 진술서에는 염씨도 이같은 발언 내용을 인정한 걸로 나온다. 사건 후 강릉경찰서는 염씨의 교우 및 접촉 인물을 중심으로 수사를 하였으나 여죄를 발견하지 못하고, 다음해 2월 7일 염씨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대공계 형사들과 함께 역용공작 진행
1978년 2월 7일 작성된 경찰 진술서에서 염씨는 해당 이적성 발언은 인정하지만, 불순한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염씨는 “내 자신이 이러한 공산주의 사상은 조금도 없다. 정말 목숨을 걸어놓고 맹세한다. 내가 공작임무를 맡고 있는데, 이 일을 성공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 무허가 잠수기를 하니 작업이 잘되지 않고 하여 3년 전부터 허가를 좀 얻어달라고 수차례 담당관들에게 부탁을 했다. 내 생각에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이제 공작임무를 하지 않을 것이라 하여 공작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허가를 얻어줄까 하여 술에 취한 뜻으로 이야기했다. 그때 당시 계장과 김 경사, 함 순경 모두 나와 함께 지금 진행하고 있는 공작을 하고 있기에, ‘설마 이렇게 말을 하여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말했다”고 진술했다. 염씨는 “내가 만일 지금 말한 것이 진짜 내가 먹은 마음이라고 한다면, 왜 대공수사관들 앞에서 이러한 말을 하겠느냐. 좁은 소견에 요망하던 허가 하나를 얻어보려고 욕심을 부렸다”며, “다음에는 이러한 말은 죽어도 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저가 지금 하고 있는 공작임무를 끝까지 충실히 이행하여 가난하게 자란 이 인간이 한번 팔자를 고치고 싶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염씨는 경찰 진술에서 경찰 정보과 대공형사들과 역용공작을 진행해 왔음을 반복해 진술했다. 염씨는 “납북되었다가 귀환했을 때 심문과정에서 북에서 받은 특수지령을 모두 자백했다”며, “4년 전부터 대공계 형사들과 북에서 받고 내려온 지령사항을 역용공작해 왔다”고 말했다. 항소이유서에서도 염씨는 “함께 공작업무를 수행하는 경찰관들에게 불만의 표시로 평소 역공작하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항변했다.
역용공작? 첩보활동에서 역용공작이란 ‘적성국에 고용된 공작원을 전향시켜 자국의 공작원으로 다시 활용하는 공격적인 공작활동’이라고 한다. 공안당국은 귀환어부를 심문한 후 가장 우선적으로 역용공작을 진행했다. 납북귀환어부에게 북에서 받은 간첩 지령을 실제로 수행하게 하고, 이에 접근하는 간첩을 검거한다는 작전이었다. 경찰 정보과나 군 보안대, 첩보부대까지 나서서 대공실적을 올리기 위해 납북귀환어부 역용공작을 경쟁적으로 벌였다.
경찰 정보과에서 지시한 염씨의 역용공작 활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진술에 구체적인 역용공작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염씨는 “공작업무를 성공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염씨가 경찰 정보과에서 지시한 간첩활동을 염씨가 적극적으로 수행했음을 뜻한다. 역용공작이 성공하려면 실제 간첩과 접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에 염씨는 경찰 정보과의 지시로 북한을 고무찬양하는 발언을 하거나 접선을 시도하고 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염씨가 항소이유서에 “평소 역공작하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라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당시 공안당국은 납북귀환어부를 범죄 피해를 입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북에 세뇌되어 지령을 받고 침투한 간첩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북에서 받은 지령을 자백한 납북귀환어부를 다시 이중간첩으로 활용하는 대공역용공작에 적극 동원했다. 국가기관이 국민을 주권자로 보지 않고, 대북 첩보활동의 사냥 도구로 삼은 것이다. 일반 국민을 대북역용공작에 동원해 위험한 간첩행위를 강요하는 행위는 반인간적인 인권침해이며 불법적인 국가폭력이다.
경찰, 가짜 간첩을 진짜 간첩으로 엮어
강릉경찰서 정보과 대공계는 납북귀환어부 염씨를 수 년 동안 대북역용공작에 동원해 이용해 먹었다. 실제 북을 찬양하는 역공작 발언도 적극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염씨를 이용한 역용공작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대공형사들은 술에 취해 자신들 앞에서 이적성 발언을 한 염씨를 진짜 간첩으로 엮어서 간첩 검거 실적을 올렸다. 이로써 경찰의 대공 역용공작에 협력한 가짜 간첩 염씨는 대공형사들에 의해 진짜 간첩이 되고 말았다. 대공형사들은 역용공작에 염씨를 이용했음에도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고 대들자 염씨에게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염씨는 1년 6개월 옥살이를 하면서 자신이 좌익사상범이라고 시인하고 전향서까지 써야만 했다.
염씨가 진짜 간첩이라면 아무리 취중이라도 대공형사 앞에서 나를 잡아가라고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대놓고 했을까? 염씨는 경찰의 불법 대공역용공작 피해자이다. 경찰이 염씨를 역용공작에 동원해 간첩행위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염씨의 황당한 취중 이적성 발언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 4월 국가보안법 7조 1항 찬양고무죄는 국가의 존립 ·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선고했다. 함께 역용공작을 진행 중인 대공형사들 앞에서 술에 취해 평소 역용공작 때 하던 이적성 발언을 한 것이 과연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인가. 지금이라도 납북귀환어부 염○선씨의 1977년 반공법위반사건은 공정한 법의 잣대로 다시 판단해야 한다.
“ 염씨가 진짜 간첩이라면 아무리 취중이라도 대공형사 앞에서 나를 잡아가라고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대놓고 했을까? 염씨는 경찰의 불법 대공역용공작 피해자이다. 경찰이 염씨를 역용공작에 동원해 간첩행위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염씨의 황당한 취중 이적성 발언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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