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5월 11일 동아일보에 실린 창동호와 협동호.
속초시청 앞 여인숙에서 고문을 받던 납북귀환어부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벽에 튀어나온 못에 머리를 박아 자살을 기도했다. 언제, 누가, 어떻게 고문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돌아온 귀환어부들이 조사과정에서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를 알려주는 사례로 속초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왔다. 소문으로 떠돌던 이 납북귀환어부 자살기도 사건의 진상이 지난 2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을 통해 밝혀졌다.
지난 2월 6일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72년 5월 10일 귀환한 창동호와 협동호 2척의 선원 17명에 대해 보고서를 채택하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지난 2월말 진실규명 신청자에게 전달된 진실규명 결정문과 보고서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국가폭력 피해의 진실이 담겨 있다.
협동호 함○욱, 심한 고문에 자살 기도
보고서에 따르면, 고문을 못 이겨 자살을 기도한 납북귀환어부는 고성 협동호 선원 함○욱(당시 40세)이다. 함○욱은 1972년 5월 13일 오전 9시 20분경 합동심문을 받던 중에 자해를 해서 즉각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1972년 5월 13일자 제308보안부대에서 작성한 ‘전언통신문’에 따르면, “차〇운은 강원도경 정보3계의 수사관들이 본명이 지령을 실토치 않는다고 수건을 입에 물리고 팔을 등 뒤로 젖히며 양 무릎에 몽둥이를 끼우고 다리를 밟는 등의 심한 고문 끝에 충격을 받고 정신착란증세를 일으켜 여인숙 8호실에 방치 중 (하략), 함〇욱은 강원도경 영동지구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 백모 경사 등 수사관들로부터 지령을 실토치 않는다고 몽둥이로 전신을 구타(당)하는 등 심한 고문 끝에 충격을 받고 1972.5.13. 08:55 한일여관 변소에서 길이 9.5cm, 직경 0.4mm의 못을 두부 중앙에 대고 변소의 시멘트에 박치기하는 것을 동일 09:00경 발견하고 동명동 소재 인성의원에 긴급 입원(하략)”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위 보안부대는 “경찰 간부들이 신병관리 및 감시소홀과 심한 고문 행위 등은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안사령관 및 대공처장에게 함께 보고하였다.
같은 날 제1001보안부대에서 작성한 ‘전언통신문’에 따르면, “귀환 후 3일간 계속 심문을 받았으며, 죽기보다 더 어려운 구타에 죽기로 결심, 벽에 박힌 못을 빼 벽에 대고 머리를 박았다고 하며 맞기 싫으니 죽여달라고 하였음”이라며 자해를 한 함〇욱의 언동에 대한 보고가 기재되어 있다. 협동호 선원 함〇욱은 1972.5.13. 14:10경 51병원에 이송되어 중앙정보부 강원분실의 승인과 원주경찰서장의 서약서를 받아 16:00경 뇌수술을 받았다. 뇌수술을 한 원주의 51병원은 제51후송병원으로 나중에 국군원주병원으로 바뀌었다.
자살을 기도했던 함씨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그해 9월 6일 구속되어 9월 26일 반공법, 수산업법,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두 차례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함씨는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것으로 함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출소 후인 1973년부터 함씨는 요시찰 갑(甲), 보호관찰처분 대상자로, 1981년에는 위해도가 높다고 납북귀환어부 A급으로 분류되어 끊임없이 사찰과 감시에 시달렸다. 함씨와 같이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이○선씨(74세)는 2023년 3월 17일자에 보도된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협동호로 돌아온 선원 11명 중 함씨를 비롯해 모두 4명이 자살했다”고 말했다.
협동호 납북 당시 해안경비정 경비 태만
1972년 5월 10일 속초항 소속 창동호와 어부 6명, 거진항 소속 협동호와 어부 11명이 1년간의 억류에서 풀려나 속초항으로 귀환했다. 협동호를 타고 귀환한 11명은 협동호 선원 3명과 전마선 선원 8명이다.
속초항 소속 창동호는 1971년 5월 14일 멸치잡이를 나섰다가 우리 해상에서 북한경비정에 의해 강제 납북되었다. 1971년 6월 3일 거진항에서 전마선 8척이 협동호의 견인으로 거진항에서 출발해 꽁치잡이에 나섰다고 납북되었다. 당시 협동호와 전마선 어부 11명은 모두 실종되고, 표류하던 전마선 3척만 발견되었으며, 당시 언론에서는 협동호를 거진어협 지도선으로 보도하였다.
창동호 선원 김재수씨(당시 27세)는 1971년 납북 당시 사망했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는 이와 관련해 창동호 선원 장광남씨의 피의자 진술 내용을 게재했다. 장씨는 “김재수는 북한에 가면 탄광에 끌려가 죽는다면서 선원실에서 목에 나일론 끈을 묶는 것을 내가 끊어냈으며, 이북 가서 정말 고향에 오지 못하면 그때 같이 죽자라고 했다”며, “당시 모든 선원이 고개를 틀어박고 있었는데, 북한 군인들이 사람이 빠졌다 해서 찾아보니 김재수가 없어 약 2시간 가량 수색하다 찾지 못하고, 그 후로 북한군 3명이 창동호에 승선해 감시하며 북한으로 납치하였다”라고 진술했다.
지난 2008년 3월 19일 속초문화회관에서 열린 납북피해자지원 설명회 자리에 참석한 영랑동의 한 주민은 “처남이 1971년 창동호가 이북에 끌려가는 와중에 투신자살을 했다고 한다. 보상신청을 하려고 서류를 다 준비해 놓았는데, 통일부에서는 기다려 보라고만 한다”며, “납북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보상이 안 된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창동호와 협동호의 납북귀환어부들이 수사과정에서는 어로저지선을 월선해 납북된 것으로 확인되나, 각 문서에서 납북지점이 일관되게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는 진술과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진술 강요 등을 종합할 때, 납북귀환어부들이 자의로 군사분계선을 월선하여 납북되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협동호 종선을 탔던 이○수씨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당시 북한경비정이 나타났을 때 협동호로 도망을 쳤다. 선장이 위험을 알리는 종을 치고, 기관총 소리도 들리고 불이 파바박 튀었다. 협동호는 유일하게 철로 만든 배였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종선을 탔던 장○창씨는 “선원 전부가 배를 버리고 협동호로 옮겨타 도망을 치는데, 배가 서지 않으니 경비정이 와서 총을 쏘고 들이받아 결국 협동호가 정지했고, 북한군이 배에 올라타서 총으로 위협했다”고 진술했다.
진실화해위는 협동호 납북 당시 거진항 어민들과 가족들이 경비당국의 업무태만을 비난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협동호가 거진 동남방 10마일 해상에서 꽁치조업 중에 실종되자, 어민들은 “해경경비정 869함, 652함, PT307함 3척이 사고 당일 협동호가 귀항하기도 전인 6월 3일 16:00경 전부 거진항에 귀항, 정박하였다”라며, “경비정이 단 한 척도 해상에 없어 협동호가 실종되었다”라고 비난하였다. 협동호 실종 다음날 종선 3척이 예인되자, 고성경찰서는 “선원 가족과 어민들 약 50여명이 거진 부두에 나와 비난하였으며, 이 건은 한국일보, 대한일보에 보도될 우려가 있다”라고 강원도지사에게 보고했다.
진실화해위는 협동호 납북 다음날, 북으로 조류가 흘러감에도 버려진 종선들이 어로저지선 남방 해상에서 발견되었다는 고성경찰서 보고내용도 확인했다. 고성경찰서는 1971년 6월 8일 미귀항선박 발생보고(3보)에서 “1971. 6. 4. 어로저지선 5마일 남방 해상에서 협동호 종선 2척이 북으로 흘러가는 조류에 따라가는 것을 목격하고 예인하고자 했으나 파도가 심하여 못함”이라고 했다.
1972년 5월 10일 창동호와 협동호를 타고 납북어부 17명이 속초항으로 귀환하였다. 속초경찰서는 가족들도 만나지 못한 귀환어부들을 속초시청 앞 해동여관에 수용하였다.
중앙정보부가 직접 나서서 귀환어부 심문과 신병처리를 조정하고 지시했다. 중앙정보부 춘천대공분실은 5월 13일 귀환어부 중 5명을 중앙정보부로 넘기고, 다른 선원들은 심문 종료 후 관할서에서 입건해 의법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5월 15일까지 단 5일간 진행된 합동심문은 납북귀환어부들에게는 처음 겪는 생지옥이었다. <계속>
엄경선 전문기자
[ⓒ 설악신문(www.sorak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