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납북어부 귀환 소식, 거진항에 도착해 정박한 배위에서 귀환어부들이 가족들 이름을 부르며 환호성을 울렸다고 보도했다.
지난 7월 4일 진실화해위원회는 56년 전인 1967년 11월 3일 북에 납치되었다가 그해 12월 26일 귀환한 납북귀환어부 25명에 대해 인권침해사건 보고서를 채택해 진실결정을 내리고, 국가기관에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재심 등 명예회복 조치를 밟으라고 권고했다.
1967년 11월 3일 총 13척의 어선과 79명의 어부들이 북에 납치되어, 그해 12월 26일 11척 어선 65명의 어부가 돌아오고, 2척의 어선과 어부 14명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귀환어선은 경인호(6명), 순광호(8명), 용명호(6명), 제2거성호(5명), 금창호(5명), 남풍호(6명), 어성호(5명), 영명호(6명), 영흥호(6명), 정성호(6명), 흥미호(6명)이다. 금윤호(6명), 제5해양호(6명)와 거성호 선원 이진용, 어성호 기관장 오원섭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피해자 본인 1명과 유가족 9명의 진실규명신청에 근거해 신청 피해자와 같은 배를 탄 선원까지 포함해 모두 4척의 어부 25명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번 진실규명 결정은 피해자의 신청에 근거한 조사로 이뤄졌기에, 같은 날 귀환한 7척 40명은 진실규명 신청이 없어 조사와 진실결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해당 피해자는 앞으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직권조사 결정이 있어야만 조사가 진행되어 진실규명 결정이 가능하다.
진실화해위의 ‘경인호 등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1967.12.26. 귀환)’ 조사보고서 내용을 중심으로 해당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의 피해상황을 살펴본다.
하루에 13척 79명 납북, 항구는 울음바다
1967년 11월 3일 이날은 역대 동해안에서 가장 많은 어선과 어부들이 강제로 북에 납치된 날이다. 1967년 11월 4일자 <동아일보>는 당시 끔찍한 납북사건 발발 상황과 이로 인해 울음바다가 된 거진, 대진, 속초항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사로 보도했다.
어선 10척 어부60명 피랍 / 북괴무장선총격사건 / 40분간 기관포 난사 / 해군함정 등 한 척도 없는 새, 1명 총상
3일 오전 9시경 동해어로저지선 근해상에서 명태잡이하던 우리측 어선 2백여척에 대해 북괴는 대형함정 2척과 쾌속정 7척을 풀어 약 40분간에 걸쳐 기관포와 다발총을 난사하며 기습, 그중 해양호(14톤, 선장 김성재) 등 어선 10척과 어부 60명을 납북해 갔는데 북괴의 무차별총격에 어제호(7톤) 선장 장상갑(36)씨가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이 사고는 동해상에서 일어난 어부피납사건 중 가장 큰 것이었는데 어선들은 3일 새벽부터 속초, 거진, 대진에서 출항, 어로저지선 근해에 도착하여 막 조업을 시작하려던 참에 장전에 출항한 북괴 함정 9척이 어선 60여척을 포위, 압축하면서 총격을 가해 왔었다.
북괴는 붉은 기를 휘두르며 선수를 북으로 돌려라고 확성기로 외쳐댔으며, 피격 당시 해군함정은 부근 해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어부들은 드리웠던 낚시도 거두지 못한 채 탈출했으며, 뒤늦은 12척은 끌려가고 말았다. 이날 북괴 총격으로 오른팔에 관통상을 입은 거진 어제호(7톤)의 선장 장상봉(36)씨는 빗발치는 탄막을 뚫고 키를 남으로 잡고 필사적으로 탈출해오다 다발총에 관통상을 입었는데, 그는 선원들의 사기를 염려, 총에 맞은 것을 숨기고 브리지에서 바른쪽 다리로 키를 잡고 있는 힘을 다해 탈출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밖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온 어부들에게 의하면 이날 우리 해군함정과 어로지도선은 1척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만일 해군함정이 가까이 있었더라면 이처럼 대량으로 납북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3일 밤 거진, 대진, 속초항 등에 있는 피납어부가족들은 행여나... 하는 기대속에 안타깝게 기다리면서 부두에 몰려 발을 구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돌아온 어부들, 귀환의 기쁨에 환호성
1967년 12월 26일 성탄절 다음날, 11월 3일 납북된 어선과 선원들 중 11척 65명의 선원이 억류에서 풀려나 거진항으로 돌아왔다. 북의 억류에서 풀린 11척 어선은 북한 장전항을 출발해 남하하다가 오후 1시경 함정 708함에 예인되었고 오후 7시30분경 거진항 해상에 정박했다. 그리고 밤 10시 45분경 거진부두에 내려 고성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2월 27일자 <동아일보>에는 귀환의 감격에 휩싸인 거진항 모습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26일 저녁 8시 35분, 북괴 함정들에게 납북돼 갔던 우리어선 11척과 어부 64명(실제는 65명)이 해상휴전선을 넘어 가족친지들이 기다리는 고향 거진항에 돌아왔다. 지난 11월 3일 동해어로저지선 부근 해상에서 명태잡이를 하다가 북괴 함정 등 9척으로부터 기관포와 다발총 공격을 받고 납치돼갔던 이들 어선과 어부들은 억류 53일만에 붉은 사슬에서 풀려 이날 오후 5시에 해상휴전선을 넘어 남하, 경비하던 해군 82함에 발견되어 그 호위를 받으며 돌아온 것이다.
이날 많은 가족 친지들이 부두에 몰려나와 돌아오는 남편과 아들의 얼굴을 보려고 아우성을 쳤는데, 어부들은 밤 11시까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상륙을 못하고 저마다 갑판에 나와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성을 올렸다. 이들은 북괴가 지급한 것으로 보이는 검정색 솜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모두들 핏기가 없는 우울한 얼굴들이었다. 귀환어부들은 밤 11시경에 상륙, 27일 오전 현재 고성경찰서로 옮겨 간단한 조사를 받고 있다.
귀환어부 65명은 귀환의 기쁨에 환성을 질렀지만, 어부들에게는 혹독한 조사와 처벌이 예견되어 있었다. 65명의 어부들이 돌아온 12월 26일, 내무부장관은 어부들의 월선조업 때문에 납북사건이 많이 발생한다며 귀환어부들은 일벌백계로 강하게 처벌하라고 강원도 등 일선 행정에 지시했다. 1967년 12월 26일자 <동아일보>에 내무부의 강경 처벌 지시가 보도되었다.
귀환한 어부 입건 / 내무부 지시 수산업법 반공법 적용
… 내무부는 26일 내무부장관 명의로 우선 어부들의 자각을 촉구하기 위해 앞으로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은 가능한한 수산업과 반공법을 적용하여 입건, 일벌백계주으로 나가도록 강원도지사에게 긴급지시하는 한편, 우리측 경비 실정도 검토, 보다 강화된 경비를 위한 대비책을 강구 중에 있다. … 금년(1967년) 들어 26일 현재 동해와 서해에서 일어난 납북사건은 39척에 359명인데 …
귀환어부들, 불법 감금에 가혹행위 받아
귀환의 감격은 그 순간뿐이었다.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고 바로 경찰서로 끌려간 납북귀환어부들은 평생 한으로 남는 가혹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진실화해위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은 귀환어부들이 불법 구금에 가혹행위, 고문까지 심하게 당했다고 증언했다.
경인호 선장 이승병의 아들 이○○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처음 조사를 받을 때는 고문을 당했다고 알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같이 잡혀있던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서 나가면 이내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하였다. 생존 피해자인 순광호 선원 김창옥씨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잘 모른다고 진술하면 경찰이 주먹 등으로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으며, … 선장, 기관장을 따로 조사실로 데리고 가서는 구타를 가하면서 심하게 조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순광호 선장 고 장득필은 2012년 생존 당시 작성한 탄원서에서 “속초 검찰청으로 끌려갔는데, 검찰청 수사관에게 모진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 곡괭이 자루로 어깨와 등을 때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입안이 모두 터지고 어금니가 부러졌으며 연필을 손가락에 끼워 비틀고 손등을 발로 짓밟으면서 일부러 북한으로 넘어간 거 아니냐며 다그쳤다. 속초 검찰청에 있는 동안 매일 맞다시피 했으며, 결국 재판을 받고 나서야 풀려났다”고 진술했다.
용명호 선장 이현중의 부인 임옥순은 “남편은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고성경찰서로 끌려 갔다고 어촌계에서 연락이 와서 둘째 아들을 업고 면회를 갔는데, 거부당해서 울면서 집으로 왔다”며, “남편은 경찰서에서는 고문당하지 않았으나 검찰청에 끌려가서는 몽둥이로 구타를 많이 당하였는데, 남편은 ‘내가 HID(북파공작원) 출신인데, 북한에서 무슨 지령을 받았겠느냐’고 말을 해도 수사관은 듣지도 않고 남편이 북한말을 하니깐 오른쪽 고막이 떨어질 정도로 구타를 가했으며, 맞은 이후로 귀가 잘 안 들렸다”고 진술했다.
귀환어부들은 12월 26일 귀환 후 바로 경찰서로 끌려가 1차 심문을 받았으며, 25명 중 선장과 기관장 등 9명은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1968년 1월 1일 0시에 구속영장이 집행되었다. 진실화해위는 보고서에서 “구속영장이 집행된 1968년 1월 1일 이전까지 귀환어부 모두가 영장도 없이 불법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며,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중 가혹행위를 당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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