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정보기관이 납북귀환어부들 상대로 귀환 후 수년 또는 수십년 동안 다양한 공작수사 하였음을 존안자료 통해 확인 … 군 보안대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납북귀환어부에 대해 상시적 사찰을 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한 위법한 수사를 하였다(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보안대나 경찰은 납북귀환어부를 수동적으로 감시·사찰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대북 공작사업 성과를 내기 위해 납북귀환어부들을 대상으로 간첩색출공작을 집요하게 진행했다. HID 북파공작원 활동을 종용하기도 했고, ‘역용공작’ 차원에서 북에서 받은 지령을 수행하도록 간첩행위를 종용하는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군 보안대·경찰, 간첩색출 공작까지
1972년 9월 7일 귀환어부 진실규명 보고서에는 해당 어부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4건의 납북귀환어부 간첩색출 공작이 공개되었다. 2건은 군 보안대에서, 2건은 경찰에서 진행하였다.
보안대는 1983년 2월부터 승운호 선원 6명을 대상으로 ‘청자공작’을 진행했다. 1978년 12월경 승운호 김○○씨 주도로 귀환어부 4명, 일반회원 10명이 ‘청심회’라는 친목단체를 만들었다. 보안대는 이 친목회를 불온 용의단체로 주목하고 간첩을 색출하기 위해 1983년 2월 수사공작 B급으로 승인받아 공작을 진행했다.
계획서에 의하면 청자공작은 총 3단계로 진행되었다. 1단계로 공작원을 채용하는데, 성과를 낼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고 직장도 알선하고 격려금을 주는 조건을 내걸기로 한다. 2단계는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한다. 외지에 나가 있는 회원을 대상으로 서신 공작을 추진하고, 용의자의 출타 및 접촉 동향을 확인한다.
특히 용의자 가옥에 잠복 활동하고, 용의자가 외지로 출타할 경우 미행을 진행하고, 재북 생활상에 대해 언동하도록 유인해 간첩혐의 자료를 확보한다. 3단계는 수집 첩보를 토대로 분석해 목표 미진한 부문을 보완한다.
청자공작은 107보안부대, 222보안부대, 511보안부대 담당으로 진행되었다. 511보안부대는 공작 대상자에 대해 내사를 진행해 1985년 7월 동향내사결과보고서를 작성했다.
222보안부대는 1986년 10~11월경 승운호 선원 6명을 청자공작 관련으로 내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대공 특이점은 발견하지 못했고, 대신 향후 협조망으로 활용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으로 조사결과를 보고했다.
대상자들 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해
청자공작이 진행된 1983년부터 1986년 사이에 승운호 선원들은 어느 날 갑자기 기관원들에게 끌려가 심한 고문과 조사를 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승운호 전○○는 “1984년 공사현장에서 일할 때 사복 입은 남자들에 의해 얼굴을 가린 채 어디론가 끌려가 3일 동안 조사받으며 통닭구이 고문을 받았다. 납북되었을 때 일을 추궁당했다. 조사받고 나오니, 남산 밑 남영동이었고, 명함을 받았는데 안기부였다.”라고 말했다. 김○○는 “1986년경 퇴근 중인 나를 사복 입은 남자들이 승용차에 태워 얼굴을 덮고 보안부대인 곳으로 끌고 갔다. 옷을 다 벗기고 손발을 묶어 천장에 걸고는 물고문을 가했다. 2박 3일 후 용산역에 내려줬다”라고 진술했다. 또 다른 선원 김○○는 “1985년경 경찰이 구둣발로 집에 들어와 수갑을 채워서 끌고 가 2~3주간 두들겨 패며, 옛날 이야기를 하라고 추궁했다”고 말했다. 선원 맹○○는 “1983년 가을, 퇴근길에 정보과 요원이 찾아와 안대를 채워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대공분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맞으며 밤샘 조사 끝에 새벽에 나와 걷다 모멸감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사찰당국은 청심회 조직을 주도했다는 승운호 김○○씨에 대해 1981년 3월부터 유급망원을 투입해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시했다. 1982년 9월 1일자 사찰기록에는 “침투망원 304-7을 이용 계속 추적 중이나 대공상 용의점 발견치 못하였음”이라고 적혀 있다. 1985년 3월 19일자 사찰기록에는 “당부대 공작 대상자로서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을 당부대 협조자로 선정 동향을 관찰한 바, 속초시 거주 최○○(32세)와 단짝이 되어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동인을 핵심으로 친목계를 조직 활약하고 있고, 이외 직장동료들과도 친목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친목계를 조직하고 있으며, 85.2.7. 17:30~20:00간 퇴근하면서 속초시 중앙동 소재 세림당구장에서 당부대 협조자와 당구를 친 후 석식을 하고 헤어진 바 있으며,…”라고 적혀 있다. 사찰기록을 보면, 사찰당국은 대상자 김씨가 누구랑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만난 사람은 수상한 점이 없는지 세밀하게 확인했다. 청자공작이 끝날 시점인 1986년 11월 26일자 사찰기록에는 “당부대에서 86.11.17~11.20까지 조사를 받고 혐의점 없이 훈방처리된 바 훈방 후 특이동향 발견치 못하였음”라고 적혀 있다.
북에서 부모 형제 접촉 판단해 공작
보안대에서는 명성3호 선장 남○○을 대상으로 1984년 1월부터 1987년 1월까지 3년간 공작명 ‘비료공작’을 진행했다. 107보안부대와 301보안부대 담당으로 진행된 ‘비료공작’은 1983년 12월 수사공작 B급으로 승인되어 진행되었다. 보안대는 명성3호 선장 남○○이 북에서 부모와 형제 등과 접촉해 특수지령을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하에 공작을 전개했다. 남씨가 1976년에 가입한 함남군민 친목회인 ‘정심회’와 1982년에 가입한 어업인 친목회인 ‘관광회’를 중심으로 남씨의 접촉인물과 거래자 동향을 수집했다. 그러나 3년간의 장기 공작에도 일상동향만 입수될 뿐 재북 연고자 남파 징후나 특이동향 등 대공용의점이 없어 1987년 1월 공작을 종결했다. 남씨의 납북귀환어부카드에는 무급망원을 2년 동안 활용해 감시했고, ‘북한에 근친이 있어 북괴 동조 *이자로 에이급 분류함이 가하다“고 적혀 있다.
군 보안부대만이 아니라 일선 경찰도 간첩색출공작을 진행했다. 속초경찰서는 1973년부터 1976년까지 3년간 제6해부호 김○○을 대상으로 ‘무지개공작’을 진행했다. 경찰은 김씨가 귀환할 때 특수지령, 포섭지령 등을 받은 것으로 보고 공작을 전개했다. 1954년생으로 귀환 당시 18세 나이인 김씨가 나이가 어리고 지령을 받은 자로 역용공작에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1973년 3월부터 속초경찰서 정보과에서 공작을 진행했다.
경찰은 김씨의 타지 출타를 감시하고 포섭대상자인 친구 김○○와 장○○와의 접촉 확인, 가족 재산 변동, 친인척 연고관계 내사를 진행했다. 1975년 3월 김씨가 입대하자 접촉인물을 대상으로 역용공작을 수립하기도 했다. 경찰은 그해 6월 김씨를 대상으로 거짓말탐지기 시험도 실시했는데, 그 결과 김씨가 북에서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김씨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군복무 때 보안대에 불려갔고 자대 배치 전 서울로 데려가 일주일에서 열흘간 보안대에 잡혀 북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1985년 경기도경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72일간 불법구금되어 전기고문을 받고 간첩으로 내몰렸다가 다행히 1심 재판에서 무죄로 선고받고 풀려난 제2승해호 김성학씨도 1988년 다시 공작 대상이 되었다. 1988년경 경찰은 김성학씨를 대상으로 ‘두더지공작’이라는 이름으로 공작을 진행해 중점 시찰했다. 1990년 경기도에서 고향 속초로 돌아온 김씨에 대해 사찰기록에는 “최근 본적지로 전출한 점을 감안할 때, 본적지에서 재차 어로작업시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중점관찰이 요구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수사정보기관이 납북귀환어부들을 상대로 귀환 후 수년 또는 수십년 동안 다양한 공작수사를 하였음이 존안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라며, “더욱이 군 보안대는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음에도 납북귀환어부에 대해 상시적 사찰을 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한 위법한 수사를 하였다”라고 밝혔다.
군 보안대나 경찰이 대공 실적을 올리기 위해 납북귀환어부에게 북에서 받은 지령을 실제로 수행해 간첩 활동을 하라고 종용했다는 건 수십 년이 지나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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