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1972년 9월 7일 귀환 1백60명 납북귀환어부 인권침해사건 진실결정과 함께 공개한 3장의 약도로 합동심문단의 불법 감금과 불법 조사를 입증하는 문서자료에 포함되어 있다. 납북귀환어부 수용 합동심문 장소 부근 약도(위 왼쪽). 납북귀환어부가 수용된 속초시청 내부 약도(위 오른쪽). 납북귀환 어부들이 조사를 받은 해동여관 내부 약도(아래).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160명의 어부들이 북의 억류에서 풀려나 귀환했다. 돌아온 어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난 5월 10일 진실화해위원회는1972년 9월 7일 귀환한 납북귀환어부 160명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인권탄압을 받았다는 취지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해당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실결정문과 인권탄압 조사보고서를 송부했다. 이 보고서 내용을 통해 1972년 9월 7일 속초항에 귀환한 160명의 납북귀환어부 인권탄압의 진실을 살펴본다.
정부당국 5척 어선 납북사실 몰랐다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들어온 어선과 선원들은 1971년 8월 4일 납북된 속초 승운호 23명, 같은 해 8월 21일 납북된 속초 제6해부호 21명, 같은 해 8월 30일 납북된 속초 제2승해호 21명과 여수 탁성호 31명, 같은 해 9월 22일 납북된 속초 고흥호 23명, 같은 해 9월 26일 납북된 주문진 대복호 20명, 같은 해 10월 25일 납북된 속초 명성3호 21명으로 모두 어선 7척에 선원이 160명이다. 7척 어선 중 5척이 속초항 선적이다.
길게는 1년 이상 북에 억류되었다가 귀환한 어부들은 자진해서 월선조업을 하다가 납북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수산업법과 반공법상 탈출죄 위반 등 죄목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을 위해 납북 어선들이 어로저지선 및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선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당시 정부 당국은 피랍된 7척 어선 중 탁성호와 명성3호를 제외한 5척에 대해 피납 시점에 납북사실을 아예 몰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승운호와 제6해부호, 제2승해호의 납북 사실은 다음 해인 1972년 5월 10일 속초항으로 귀환한 협동호 선원 심문과정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미 어선들이 납북된 지 길게는 9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고흥호는 피랍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 해상에서 행방불명되었다고 전국에 수배를 했으며, 대복호의 경우에는 납북 확인 자료는 아예 찾을 수도 없었다. 7척 중 탁성호와 제3명성호 2척만 피랍 과정에서 남긴 무전 교신 내용을 통해 납북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같이 7척 중 5척에 대해 납북사실도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어부들의 귀환 후 심문과정에서 합동심문반은 납북어부들이 어로저지선과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피랍되었다고 구체적으로 피랍지점을 특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러한 피랍지점 특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귀환어부들이 월선을 하지 않았음에도 납북되었다면 납북을 이유로 처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부들을 처벌하기 위해 합동심문반은 어부들이 공모해서 자진해 어로저지선과 군사분계선을 넘어가 납북되었다고 허위진술을 강요하고 사건을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의 납치로부터 우리 어선을 보호하는 일은 국방상 중대 임무였다. 귀환어부들을 과도하게 처벌한 이유도 대북 경계심을 높여 납치사태를 방지하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정작 정부 당국이 우리 어선의 납북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다. 이는 당시 대화퇴어장에 출어하는 수많은 어선과 선원들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귀환어부들 불법감금돼 가혹행위 받아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귀환한 160명 납북귀환어부들은 1년 동안 떨어진 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바로 속초시청에 다시 끌려가 수용되었다. 그리고 일주일간 시청 앞 해동여관에 끌려가 합동심문반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합동심문이 끝난 9월 14일 고성경찰서로 23명, 속초경찰서로 86명, 강릉경찰서로 20명, 여수경찰서로 31명 신병이 인계되었다. 이중 특수지령을 수령한 어부들로 지목된 24명은 9월 15일 속초비행장에서 헬기에 실려 서울 미 502수용소로 이송되어, 다시 중앙합동심문반에서 한 달 간 추가조사를 받고 관할 경찰서로 돌아왔다. 1972년 9월 20일부터 총 160명 중 불구속 귀가조치된 72명을 제외한 88명에게 영장이 발부되어 구속되었다. 그리고 160명 중 장애인 해부호 선원 김○○, 대복호 선원 6명을 제외하고 153명이 기소되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조사를 통해 납북귀환어부들이 귀환 후 합동심문을 받는 과정뿐만 아니라 경찰서로 넘어가 조사를 받을 때도 구속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된 상태였음을 확인했다. 이는 형법 제124조 불법체포, 불법감금죄에 해당해 재심의 사유에 해당한다. 그리고 진실화해위는 납북귀환어부들이 합동심문 초기부터 철야심문을 받은 점, 합동심문과정에서 허위진술을 강요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납북귀환어부들은 합동심문 등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인권탄압보고서에는 납북귀환어부 합동심문에 10개 기관이 참여해 불법적인 어부 인권탄압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참여기관은 중앙정보부 합신조, 정보사령부, 보안사령부, 치안국 정보과, 해경대, 미502정보단, 903정보부대, 속초경찰, 합참, 기타 속초시 역합신조 등의 기관이다. 합동심문반은 강원도경 및 지방경찰서에서 차출한 합동심문요원, 해군보안대, 해경, AIU 및 중앙정보부 수사관으로 구성되어 진행됐다.
납북귀환어부 160명은 속초시청 2층 회의실(50평규모)에 수용되어 시청 앞에 있는 해동여관(방 10개)에서 심문을 받고, 다시 속초경찰서 뒤편 합기도장에서 분리수용되었다. 심문은 귀환 당일인 9월 7일 24:00부터 9월 14일 24:00까지 진행됐다.
당시 중앙정보부와 경찰 등 수사정보기관은 납북귀환어부 합동심문이 불법감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72년 9월 14일 강원도 경찰국이 내무부 치안국에 보고한 ‘납북귀환어부 신병 및 적성물품 조정 상황보고’에 관련 내용이 나온다.
문서에는 “합동심문이 끝난 납북귀환어부들의 신병처리를 위해서는 다시 관할 경찰서로 신병을 인계해 보호조치를 통해 구속 서류 등을 작성해야 하는데, 사법서류 작성 기간이 1주일간 소요되므로 보호조치기간이 약 15일간으로 장기화됨에 따라 불법감금 운운의 비난이 우려된다”라고 언급했다. 경찰은 이미 1주일간 영장 없이 불법 감금했는데, 다시 1주일을 더 불법감금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우려한 것이다.
억울하게 북한에 납치되었다가 어렵게 돌아왔는데, 설마 우리 정부가 귀환어부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때리고 고문까지 했겠나? 예전에는 필자도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과 진실화해위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보면, 1972년 9월 7일 귀환한 어부 중에 15세(1957년생)가 5명, 16세(1956년생)가 5명, 17세(1955년생)가 8명, 18세(1954년생)가 12명으로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모두 30명이다.
보고서에는 귀환 당시 만 15세였던 대복호 선원 김용태씨의 피해 진술로 “(합동심문반이) 장작으로 두들겨 패고, 다리 밑에 껴서 올라타 밟고, 고춧가루물을 얼굴에 부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중학교 3학년 나이의 15세 어린 소년은 합동심문반에게서 무슨 일을 당한 것일까?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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