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배를 타고 납북되었다가 1972년에 돌아와 억울하게 고초를 당한 피해자들이 50년 만에 모여 과거의 아픈 상처를 서로 위로하는 만남을 가졌다. 지난 2월 19일 오후 4시 속초시 동명항 인근 식당에서 지난 1월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개시결정이 난 승운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들의 모임이 열렸다. 이날 만남에는 승운호 납북귀환어부 23명 피해자 중 생존하고 있는 12명 중 11명과 가족, 승운호 선장 딸 등이 참석했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전남 보성, 부산, 울산, 경기에서도 피해자와 가족이 찾아왔다. 50년 만에 함께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동료를 만난 승운호 선원들은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만남에는 지난해 12월 10일 창립된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 김춘삼 대표와 운영위원들도 초대받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경기도에 사는 피해자 김○○씨가 피해자를 대표해서 과거 자신이 겪었던 납북귀환어부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지난 2월 19일 승운호 사건 납북귀환어부 생존 피해자 11명과 가족들이 50년만에 만남을 가졌다.
승운호 선원 김○○(68)의 납북귀환어부 피해 이야기
납북귀환 후 심문과정에서 구타·고문 당해
1985년경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다시 고문
그동안 내가 입었던 피해 이야기는 가족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일체 말하지 않고 살아왔다. 다시 또 봉변을 당할까봐 마음속에 꽁꽁 숨겨놓고 살아왔다. 설움이 복받치고 너무 억울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겠다·
납북되었다가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돌아와서는 우리 선원들은 속초시청에 수용되어 시청 앞 해동여인숙 골방에 한 사람씩 끌려갔다. 조사관 2, 3명이 둘러싸고 나를 두들겨 팼다. 다음날에 또 불려가 맞은 자리를 다시 또 맞았다. 상처가 난 자리에 피와 속옷이 엉겨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안 맞으려면 북에서 받은 지령을 불라고 했다. 그때 내 나이는 17, 18살이었다. 북에서 받은 지령이라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하니 다시 한 말짜리 주전자에 물을 가득 부어 물고문을 했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위에 물을 부었다. 그것도 안 되니 고춧가루고문, 전기고문까지 가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관들은 “다른 사람은 다 불었는데, 너는 왜 안 부는거냐”라고 윽박질렀다. 결국 마지막 전기고문받을 때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시인하고 말았다. “거짓말이라도 불면 안 때릴 거냐”라고 물으니, 조사관이 “그러겠다”라고 했다. 조사가 끝난 후 경찰서에 끌려가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이렇게 모진 일을 겪고 나니 바다가 보기 싫어졌다. 이후 군대 입영 영장이 나와서 현역으로 입대해 병참부대에 있었다. 3년을 보안대 감시 속에 복무했다. 보안대에서 하도 찾아오니 동료들 보기에 창피했다. 제대하고 나서 1979년에 결혼을 했다. 이후에도 사찰요원들이 계속 따라다니며 나를 감시했다. 서울 성수동에 살 때인데, 어디 가려면 경찰서에 꼭 신고를 해야 했다.
1985년인가,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지 15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나는 잠실 롯데월드 공사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일을 끝내고 퇴근하려고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젊은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어디 좀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순순히 그 사람들을 따라 나섰다. 운전기사까지 모두 세 사람이었다. 나를 차에 태우더니 자기네 옷으로 내 머리를 덮어 가렸다. 차가 강변북로인지 88도로인지 신호도 안 받고 갔다. 내가 죽으러 가는 건가. 공포가 엄습해 왔다. 그런 와중에도 내일 예비군훈련에 빠지면 어떡할지 걱정이 됐다. 그 사람들한테 부탁했다. 내일 예비군 훈련 받고 어디를 가더라도 가면 안 되겠느냐고. 답이 없었다. 차가 도로를 벗어나 어디 민가에 도착해서 멈췄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폭 1미터도 안 되는 좁은 계단을 지나 지하실로 끌려갔다. 맨 콘크리트 바닥에 감옥처럼 가운데 통로 양 옆에 방들이 칸칸이 있었다. 지하실 바닥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보였다.
30분 정도 지체하더니 조사관이 조사를 시작했다. 기억을 못하면 기억을 못한다고 때리고, 기억을 한다고 하면 기억한다고 또 때리고. 옷을 완전히 다 벗긴 알몸 채로 천장에 매달아 놓은 체인으로 팔과 목을 감아서는 공중에 매달았다.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다. 지하실 다른 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에 공포가 몰려왔다. 여기서 죽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1박 2일인지, 2박 3일인지 그곳에 있다가 나왔다. 풀려나 보니 용산역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젊은 사람이 나를 내려주면서 앞으로 안 부를 거니까,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가족도 모르게 잡혀왔으니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갑자기 사라지니 집사람이 경찰서에 전화를 했는데, 정보과 형사도 모른다고 했다. 15, 16년 동안 감시를 받고 폭행을 당하고 살아왔다. 누구한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승운호 납북귀환피해 사건
선원 23명 북 억류 1년 36일 만에 귀환
속초시청 앞 여인숙에 불법구금돼 고문 받아
10대 소년들도 반공법 위반 등으로 구속·처벌
지난 1월 25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승운호 납북귀환어부 피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조사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승운호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납북귀환어부 국가폭력 피해사건 중에서 가장 많은 신청서가 접수되었다. 조사개시 결정 당시 8명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신청서가 접수되고 있다. 승운호 사건 피해자들이 서로 연락하고 수소문해 23명 피해자와 가족 대부분이 확인되었다.
고성군 아야진항 소속 승운호(16.5톤, 선장 이진영)는 선원 23명을 태우고 오징어잡이를 나가서 울릉도 동북쪽 대화퇴어장에서 조업을 마치고 귀항하다가 1971년 8월 2일 북한 쾌속정 3척에 의해 강제로 납북되었다. 승운호 선원들은 북에서 1년 36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1972년 9월 7일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이때 납북어선 7척에 160명의 선원이 속초항으로 들어왔는데, 납북귀환어부 가족을 비롯해 3천여명의 환영인파가 속초항에 운집했다.
귀환어부들은 속초시청 회의실에 수용되어 인근 여인숙에서 합동심문단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승운호 피해자들에 따르면, 귀환 후 선원들은 보름 동안 불법 구금된 채로 북에서 받은 지령을 실토하라고 구타와 가혹행위, 심지어는 물고문과 전기고문까지 받았다. 또 배에서 한두 명 씩 차출되어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군 정보부대에 다시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신문 보도에 따르면, 9월 7일 속초항으로 귀환한 160명의 납북어부들은 보름이 지난 9월 21일 35명은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고, 1백25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신문보도와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납북귀환어부들은 9월 7일부터 9월 21일까지 15일간 국가기관으로부터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구타와 가혹행위, 고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9월 7일 귀환한 어부들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으로 거의 모두 기소되어 선장 등은 징역 1년 이상, 일반선원은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납북 당시 승운호에는 16세를 비롯해 10대 소년들이 다수 승선하고 있었다. 이들 소년들도 어른들과 같이 어김없이 반공법 위반 등으로 구속되거나 처벌받았으며, 평생을 ‘용공분자’라는 올가미에 씌워져 감시와 사찰, 통제를 받아야 했으며 연좌제 피해까지 입었다.
16세 나이에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승운호 선원 김○○씨는 귀환 후 심문 과정에서 물고문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시청 인근 여인숙에서 조사관들이 자신을 눕혀놓고 얼굴을 다 가리게 수건을 올려놓고 주전자로 수건 위에 물을 부었다. 물을 몇 번 부으면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가면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컥컥대다가 기절했다. 그러면 다시 깨워 고문을 했다고 한다. 김씨는 1년 후 인천 연안부두로 조기잡이를 갔다가 다시 북한을 고무찬양했다고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 6개월 복역 후에 출소했다. 같은 배 선원이 북에 끌려갔다온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북한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게 빌미가 되어 간첩으로 내몰려 인천 부평경찰서에 끌려가서 14일간 밤낮으로 조사를 받았다. 형사들이 교대로 잠을 재우지 않고 24시간 조사를 했다. 결국 다른 혐의를 찾지 못하자 경찰은 고무찬양죄를 적용해 김씨를 구속 기소해 처벌받게 만들었다. 김씨는 20살도 안 된 나이에 납북사건으로 연거푸 두 번씩이나 반공법 등 위반으로 처벌받은 것이다. 북에 납북되어 억류되었을 때도 김씨는 가슴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남으로 내려가겠다고 억류된 휴양소를 탈출했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는데 1년도 안 되어 납북 경력 때문에 그만두어야 했다.
승운호의 또 다른 선원은 귀환 후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한밤중에 군인들이 구두를 신고 집으로 들이닥쳐 고성군 소재 어느 군부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납북귀환어부 출신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까봐 남들보다 더 착실하게 살았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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