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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이야기<6>
“국가는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와 가족에게 손해배상하라”/속초지원, 1972년 납북귀환 창동호 가족 위자료 지급 판결/국가 불법행위 피해 인정…동해안서 손해배상 결정 첫 판결
등록날짜 [ 2021년11월22일 17시05분 ]

납북귀환어부에게 가해진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손해배상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11월 11일 오후 2시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민사부(재판장 안석)는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가족 백쌍엽 외 27인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선고판결에서 피고 대한민국에 이미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포함해 6억3백만원의 손해배상 위자료를 원고 28명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손해배상 판결은 2008년 원고측인 피해자 가족 김창권씨와 강준기씨가 돌아가신 부친들의 납북귀환어부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호소한 지 13년 만에 이뤄졌다. 납북피해자 보상지원 법률이 제정된 지난 2008년 3월 19일 속초경실련 주최로 속초문화회관 소강당과 거진 고성군 수협 회의실에서 납북피해자 보상 신청 설명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속초 설명회에 참석한 김창권씨와 강준기씨는 부친들이 지난 1971년 함께 ‘창동호’를 타고 멸치잡이를 나갔다가 납북되어 1년만인 1972년 5월 10일 돌아와서는 관계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억울하게 처벌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창동호 선장 김봉호씨(당시 49세) 아들 김창권씨는 “부친이 이북에 끌려갔다 와서 관계기관에 끌려갔는데, 나포 당시 선원이 죽는 사고가 발생해 더 심하게 고문을 받고 실형을 살았으며, 고문후유증으로 고생을 하다 돌아가셨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설악신문> 2008년 3월 24일자 기사 “납북피해자 보상, 피해자 대다수 배제 반발” 중)
김창권씨의 사연은 <설악신문>이 지난 2008년 12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발간한 <동해안 납북어부의 삶과 진실>에 납북어부 피해 사례로 자세히 소개되었다. 
그러나 당시 발효된 납북피해자 보상지원 법률로는 대다수 납북귀환어부가 보상을 받거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에 김창권씨와 강준기씨는 같이 창동호를 타고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억울하게 처벌받은 다른 선원 가족을 설득해 2014년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어선납북사건 처벌 피해와 관련해 제기된 재심청구에 대해 속초지원은 몇 년 동안 재심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2년 전인 2019년 11월 8일 피해자 유족들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20년 7월 15일 고인이 된 창동호 선원 4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청구 6년 만에 유족들은 고인이 된 피해자의 무죄 판결을 받아내 공안사업으로 몰린 고인의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 재심 무죄판결 따라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이번 판결문에 따르면,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받은 피해자 4명은 1972년 5월 10일 귀환한 날 연행 구금되어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해 속초지원은 8월 17일 선장 고 김봉호씨는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 고 송흥룡, 고 마한기, 고 강재봉씨는 각각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 징역형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와 금품수수 부분만큼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에 불복해 검찰과 피고들이 각각 항소했으나 1972년 12월 14일 춘천지방법원은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심을 진행한 속초지원은 피해자들이 귀환한 1972년 5월 10일 바로 수사기관에 검거되어 구금되었는데, 구속영장은 그해 5월 15일 또는 6월 7일 발부되어 집행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피해자들이 모두 불법으로 체포, 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로써 법적 처벌의 근거가 되는 피해자들의 진술은 모두 불법 구금된 상황에서 강제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 증거능력이 없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물을 살펴보더라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구금일수를 김봉호씨는 399일, 다른 선원들은 각각 100일로 산정했다. 
재심 무죄판결에 따라 유족들은 지난해 10월 1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지난 7월 8일 마지막 변론재판을 진행했다. (<설악신문> 2021년 7월 12일자 “49년 만의 재심 무죄 납북귀환어부 손해배상청구 재판 방청기”)
유족들은 지난해 12월 1일 형사보상금 지급결정을 받아냈으며, 다시 이번 1심 판결에서 해당 위자료 지급을 판결받았다. 이번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피해자 고인들은 “1972년 5월 10일 속초경찰서 소속 수사관들에 의하여 영장없이 연행된 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불법적인 수사과정을 통하여 수집된 증거능력 없는 증거들에 따라 망인들이 유죄를 선고받고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구금되었는데, 공무원들이 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불법 구금을 통한 수사와 기소, 판결로 인하여 망인들과 그 가족들이 입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였을 것 △이 사건 불법행위는 국가기관에 의하여 자행된 반인권적인 행위로 그 위법성의 정도가 중대한 점을 고려했으며, 유사한 국가배상 판결에서 인정된 위자료 액수와의 형평성을 참작하여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판결 근거를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미 지급된 형사보상금을 포함하여 고 김봉호씨와 가족은 3억6천6백만원, 고 송흥룡씨와 가족은 8천1백만원, 고 마한기씨 및 가족은 7천8백만원, 고 강재봉씨 및 가족은 7천8백만원을 위자료 금액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국가가 피해자가 지급할 위자료 총액은 6억3백만원이다. 

 

- 가족까지 포함해 국가 손해배상 책임 인정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당사자 4명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부모와 형제, 처, 자식 등 가족 25명도 모두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납북귀환어부 국가폭력 피해자에 가족까지도 포함시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11일 선고 판결이 끝난 후 김창권씨는 “50년이 지났지만, 뒤늦게라도 아버지가 간첩 누명을 벗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을 비관하고 살았던 부친에게 그저 죄송스럽기만 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지금까지 납북귀환어부 중에 간첩으로 몰린 개별 사건에 대한 재심과 손해배상은 다수 있었지만, 납북사건 자체로 구속·처벌받은 어부들과 가족들에게 국가가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혔다고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결정한 판결은 동해안 일대에서는 첫 판결이다. 지난해 있었던 창동호 선원 재심 무죄판결과 이번에 내려진 손해배상 판결을 계기로 과거 속초와 고성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 수백명의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와 가족들도 법적으로 명예회복과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지난 2009년 1기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재판기록에 따르면, 과거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 재판에 회부된 납북귀환어부는 전국적으로 1,328명이다. 이중 속초 218명, 고성 313명, 강릉 78명, 동해 61명 등 강원도 피해자만 680명에 이른다. 오직 속초 창동호 선원 4명만이 처음으로 재심이 개시되어 무죄를 선고받고 간첩누명을 벗고 국가 배상을 받게 되었다. 창동호 선원들은 재심 신청 6년만에 개시결정을 받았지만, 이번 판결과 2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활동 등으로 향후 납북귀환어부의 명예회복은 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과거 사진 속의 창동호 납북귀환 

속초항 소속 창동호(16톤)는 지난 1971년 5월 13일 멸치잡이에 나섰다가 납북되었다. 납북과장에서 속초 동명동 김재수(29세) 씨가 사망했으며, 승선원 5명이 납북되어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1년만인 1972년 5월 10일 속초항으로 돌아왔다. 귀환 당시 창동호는 1971년 6월 3일 납북된 고성 거진어협지도선 협동호(15톤)와 함께 북의 억류에서 풀려나 휴전선을 넘어 귀환, 해경 861함에 의해 오후 6시50분 속초항에 예인되었다. 당시 신문에서는 “납북어부들의 귀환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과 친지, 주민 등 5천여명의 환영을 받고 자유의 품에 안겼으며, 속초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은 다음 저녁 7시30분경 속초경찰서에 보호조치되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돌아온 창동호 선원들은 바로 관계기관에 끌려가는 바람에 기다리던 가족들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1972년 5월 <경향신문사>에서 찍은 사진으로 해경선 뒤에 거진 협동호와 함께 속초 창동호가 속초항으로 귀환하고 있다. 출처 "오픈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

 


지난 11월 11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열린 손해배상 승소 판결 선고에 기뻐하는 창동호 납북귀환어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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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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