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 24일 대검에서는 “두 번 이상 납북되는 어부에겐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라”고 전국지검에 지시했다. 납북이라는 큰 피해를 입고 돌아온 어부들에게 사형을 구형하라는 이 지시는 어부들을 소름끼치는 공포에 몰아놓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 지시 이후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에게 사형이 구형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씩이나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은 다른 납북귀환어부들보다 더 큰 고초를 겪은 것만은 틀림없다.
고성 아야진 김씨, 고문으로 양 고막 터져
기자는 2009년 4월 고성 아야진에 거주하는 김씨로부터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김씨는 1947년 속초시 대포동에서 태어나 고성군 거진읍으로 이사해 거진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67년 12월경 명태잡이 어선을 타고 납북되었다가 한 달 정도 억류되었다가 귀환했다.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지 6개월 만인 1968년 7월 10일 거진항 만복호를 타고 오징어잡이를 나갔다가 다시 납북되었다. 당시 거진 앞바다에서 북한 쾌속정에 나포되어 북한에서 6개월 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그 해 11월 1일 귀환했다. 귀환한 만복호 어부들은 모두 15명이며, 미귀환 억류어부는 5명이다.
귀환 당시 선박 5~6척이 함께 귀환하여 고성경찰서에서 다른 선원들과 같이 합동심문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이 조사과정에서 만복호가 월선조업을 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납북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고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지만 그리 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차 조사가 끝나고 다시 서울 미군부대로 추정되는 곳으로 끌려갔다. 김씨는 미군들이 근무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여기서 김씨는 두 번씩이나 납북되었다가 돌아왔다고 해서 더 심하게 추궁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선장이나 기관장도 아니었고 배 운항에 아무 권한이 없는 일반선원이었을 뿐이었다.
서울 미군부대에서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고, 팔과 귀에 전기를 꽂는 전기고문을 받고, 갖은 구타를 당했다. 고문으로 양쪽 귀 고막이 모두 터지는 바람에 김씨는 제대로 듣지도 못해 더 심하게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고성경찰서와 서울 미군부대에서 한 달 간 조사를 받고 나서 다시 속초경찰서에 구속 수감되었다. 김씨는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 1심에서 수산업법,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춘천에서 열린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고 한다.
1969년 3월 20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검찰은 김씨를 비롯해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일반선원 3명에게 선장들과 같이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구형했다. 당시 신문에서는 검찰이 탈출죄를 적용해 3년이 넘는 징역형을 구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1969년 4월 17일자 <동아일보>에는 김씨를 비롯해 기소 납북귀환어부 54명 전원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선장 5명과 김씨를 비롯해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 3명은 수산업법 위반과 반공법 탈출죄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불구속기소된 46명 어부도 모두 수산업법과 반공법 탈출죄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때 김씨 나이는 만 21세였다.
김씨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고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김씨는 유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1969년 8월 1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7월 30일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지난해 10월말과 11월초에 귀환한 동해안 납북어부 74명 전원에게 수산업법, 반공법,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했다. 두 번 이상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어부들에게는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장에게는 징역 10월에 자격정지 10월을, 다른 피고인들에게는 모두 징역 10월, 자격정지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이 선장 등 책임자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석방된 후 집에 돌아와서는 3년 동안 몸이 아파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고문과 구타로 양쪽 고막이 다 터졌지만, 치료비도 없어서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이후에도 늘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몸무게가 80kg에서 40kg으로 절반이나 줄어들었으며, 먹으면 모두 토해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이후 계속 병원에서 신경안정제를 타다 먹었으며, 온몸에 통증을 안고 살았다. 특히 귀 고막은 손상 후 치료를 제대로 해 보지 못했는데, 높은 곳에 올라 갈 때도 그렇고 가끔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나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지가 무력해지곤 했다.
김씨는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후 다른 일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시 배를 타야만 했다. 항상 경찰의 감시를 받았으며, 어디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때는 반드시 신고를 해야만 했다.
2009년 납북피해자 보상 신청도 거절 당해
김씨는 지난 2009년 4월 국가에서 납북피해자 중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상해 또는 사망한 경우에는 보상을 해준다고 해서 ‘납북피해자보상및지원심의위원회’에 보상금 및 의료지원금 지급을 신청했다. 신체장애진단서까지 발급받아서 어렵게 신청했지만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결국 기각되었다.
김씨가 탔던 만복호 선장 최씨도 납북사건으로 부자가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아버지인 선장은 돌아오고, 같은 배에 선원으로 탔던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선장의 아들과 선주의 아들을 비롯해 만복호 선원 5명이 미귀환했다. 통일부 북한납북억류자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장 최씨는 귀환 후 김씨와 함께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돼 1심에서는 징역 1년, 2심에서는 징역 10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억울하게 납북되어 북한에 아들을 빼앗기고 돌아온 아버지를 대한민국은 북으로 탈출한 공안사범으로 내몰아 징역형을 살게 한 것이다.
만복호 김씨 말고도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다른 어부의 이야기도 있다. 속초 청학동에 살던 김아무개씨는 1960년대 말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는 구속되어 형을 살고 나와서 고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한다.
<동아일보> 1968년 1월 8일자 보도에 따르면, 1968년 1월 11일 김씨가 탔던 속초항 소속 ○○호(9톤, 선원 6명) 등 7척 어선 35명의 어부들은 동해 어로저지선 부근에서 북한 쾌속정에 의해 납북되었다. 이날 납치 현장에는 우리 어선 70척이 조업 중이었는데, 짙은 안개를 이용해 북한 함정 3척이 기습적으로 다가와 어선들을 끌고 갔다. 그해 4월 11일자 신문에는 ○○호 선원 김씨(당시 43세)는 그해 3월에 귀환해 4월 10일 속초경찰서에서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등 위반 혐의로 입건된 걸로 확인된다.
김씨가 또 언제 납북되었다가 귀환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주변 지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는 심한 고문을 받고 징역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 못 살고 죽었는데, 죽기 전에 아들, 딸 호적을 동생 앞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이 땅에서 간첩이라는 공안사범으로 몰리면 자식들도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김씨는 하늘이 내려준 자식들과의 인연을 법적으로라도 끊은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말 북한의 쾌속정이 우리 해역에 넘어와 무차별적으로 어선들을 납치해 가던 그 때는 두 번씩이나 납북된 이들이 제법 있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기에 가혹한 형벌의 삶을 살아야 했을까?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간첩으로 내몰린 어부들이 그 억울함을 풀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09년 7월 고성에서 납북어부의 권익보호·증진을 위한 고성군 실태조사 및 현장 민원 상담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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