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귀환어부를 공안사범으로 몰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59년 10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어로저지선을 넘어 월북한 어선에 대하여는 수산업법 및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처벌한다고 의결했다. 1959년 12월 11일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속초항 소속 용진호 선원 6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67년부터 납북귀환어부 공안사범으로 몰아
1960년대 들어서도 어선 납북사건은 계속 이어졌지만, 납북귀환어부를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적용해 처벌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1967년에 들어서면서 납북귀환어부에 반공법을 적용해 공안사범으로 몰아 구속 기소하기 시작했다. 1967년 3월 19일 꽁치잡이를 나갔던 속초 제3용진호가 77일 만인 6일 3일 귀환했다. 돌아온 어부 8명은 북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속초경찰서 등 정보기관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해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하지만 1,2심에 이어 1968년 3월 19일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판결을 통해 “생명과 신체에 대해 방어할 능력이 없는 상황 속에서 협박에 의해 강요된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1967년 납북사건이 급증해 동·서해안에서 39척, 359명이 납북되자, 그해 12월 26일 내무부장관이 강원도지사에게 긴급으로 어부들의 자각을 촉구하기 위해 돌아온 어부들을 수산업법과 반공법을 적용하여 입건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1967년 12월 25일과 26일 귀환한 납북귀환어부 85명을 입건 조사해 45명을 다음해 1월 초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형법, 수산업법, 개항질서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했으며, 40명의 어부들도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당시 신문에서는 납북귀환어부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구속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어부들은 강릉경찰서에 27명, 고성경찰서에 14명, 속초경찰서에 4명 구속되었다. 구속된 어부들은 선장 또는 기관장 등 책임자이거나 두 번 이상 납북된 사람들이다.
이때 구속된 어부들 중에는 1967년 11월 3일 북한이 무력으로 끌고 간 납북어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북한은 동해 어로저지선 근해상에서 명태잡이를 하던 우리 측 어선 2백여척에 총격을 가하면서 토끼몰이식으로 포위하여 어선 12척과 어부 74명을 납치해 갔다. 북한군의 총격에 팔에 관통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돌아온 어부들도 있었다. 당시 우리 해군은 난리통에도 아무 대응을 하지 못했다. 납북사건으로 거진항 일대는 어부 가족들로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포된 배들이 휴전선 북쪽 장전 앞바다에서 강제로 어로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관측되었다. 이날 강제로 북에 납북된 순광호 선장 장씨(당시 27세)도 53일 만인 12월 26일에 돌아와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장씨로부터 2009년,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피해 증언을 들었다.
순광호 선장 장씨 이야기
“지난 1967년 11월 3일 명태잡이배 선장으로 납북되었다. 당시 어로한계선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이 우리 배를 비롯해 10여척의 어선을 토끼몰이하듯 잡아갔다. 그리고 그해 12일 26일 거진항으로 돌아왔다. 납북 당시 우리 해군이나 경찰이 어떤 보호도 해주지 않았으며, 거진항으로 돌아왔을 때도 우리가 직접 임검소에 가서 돌아왔다고 신고하니까 그제서야 경찰이 쫓아왔다. 그날 돌아온 선원만 60여명이다.
고성경찰서에서 일반 선원들은 방면되고 선장, 기관장들은 속초검찰청으로 끌려갔다. 여기서 조사를 받으며 모진 구타와 고문을 받았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그 자리에서 바지에 생똥을 싸고 해맬 정도였다. 검찰서기라는 사람이 곡괭이 자루로 어깨와 등을 때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입안이 모두 터지고 어금니가 부러졌다. 연필을 손가락에 끼우고 비틀고 손등을 발로 짓밟았다. 일부러 북으로 넘어간 거 아니냐고 다그쳤다.
6개월 동안 속초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매일 맞다시피 했다. 같이 끌려간 사람 중에는 골병이 들어 일찍 죽은 사람도 있다. 결국 재판을 받아 2심에서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여기서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한 달 남짓 북에 끌려갔다온 죄가 평생을 따라 다녔다.
이후에도 숱하게 방첩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어떤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3년을 이렇게 생활하다가 전라도 여수로 도망가 배를 타다가 7년 만에 다시 고성으로 돌아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간첩신고가 들어왔다고 해서 운봉에 있는 HID 교육장에 끌려가 1주일동안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심문을 받았다.
납북 때문에 나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들 모두 피해를 보았다. 둘째가 공부를 좀 해서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했는데 신원조회에서 탈락하여 진학을 포기했다. 45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때 짓밟힌 손이 붓고 통증이 심하다. 그때 맞은 어깨와 허리가 날이 흐리면 쑤시고 아프다.”
강제로 끌려간 어부가 북으로 탈출?
1968년 3월 27일 춘천지방법원 속초지원 재판에서 검찰은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등 위반 혐의로 장씨 등 9명에게 징역 2년 6개월, 48명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그리고 4월 10일 결심공판에서 재판부는 수산업법 위반은 유죄이나,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무죄라고 판시해 장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는 등 모두 48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언론은 이 판결을 납북귀한어부에 대한 첫 실형선고라고 보도했다. 8월 22일 춘천에서 열린 2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라고 했던 반공법 6조1항 탈출죄를 유죄로 인정해,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어부들을 포함해 52명에게 징역 8월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장씨도 반공법 위반 형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1월 19일 대법원 상고심 판결에서는 납북귀환어부 6명에 대해 반공법 탈출죄를 인정해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을 한 것은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탈출한 반공법 6조1항 ‘탈출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앞서 11월 9일 내무부는 어로저지선을 넘어 고기를 잡다가 납북되는 어부들은 모조리 수산업법 위반으로 입건하고, 휴전선을 넘어 고기를 잡다가 납북되는 어부들은 수산업법과 반공법을 적용해 모조리 구속하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1968년 10월 30일 동·서해안에서 납북된 어부 3백55명이 한꺼번에 귀환했다. 경찰은 귀환어부 전원을 반공법 또는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 조사했다. 동해안 거진항과 대진항으로 귀환한 111명의 어부 중 20명이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선장과 기관장, 두 번 이상 납북된 선원들이다.
어로저지선을 5마일 남하한 지 한 달이 지난 1968년 12월 23일 검찰총장은 전국 공안담당검사를 불러 모은 자리에서 “북한이 납북어부들로부터 국내의 정보를 입수하고 있으므로 납북어부를 엄단하고 석방된 납북어부들에 대해 사후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검찰은 어부들이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하고 군사분계선에 접근하는 것은 피랍을 자초하는 고의 있는 행위로 단정하고 엄중하게 처벌하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2월 24일 대검공안부담당 한옥신 검사는 “두 번 이상 납북된 어부를 사형을 구형하라”고 전국지검에 지시했다.
두 번 이상 납북된 어부 사형을 구형 / 대검 지시
대검공안부 담당 한옥신검사는 24일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 중 두 번 이상 납북되는 어부에겐 반공법 9조의 2와 국가보안법 10조의 2(특수가중처벌)을 적용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도록 전국지검에 지시했다.
검찰은 강제로 납북된 경우라도 어로저지선을 넘으면 북괴에 끌려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반공법상의 탈출잠입죄를 인정한 최근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재범을 가중처벌하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대검은 또한 이날 납북어부들이 북괴 구성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귀환한 후 이를 신고하지 않거나 위장신고를 했을 때와 불완전신고를 했을 때는 간첩 또는 간첩미수죄를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조선일보 1968년 12월 25일자 3면 보도>
이렇게 내무부와 경찰, 검찰, 법원은 물론이고, 해양경찰까지 가세해 납북어부는 북한으로 탈출한 범죄자, 납북귀환어부는 지령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후에는 보안사령부와 중앙정보부도 이 작업에 가세했다. 두 번씩이나 납북피해를 겪는 것도 억울한데, 검찰은 납북피해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당시 공포 분위기에서 두 번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어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경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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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2월 25일 조선일보 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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