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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귀환어부 진실규명 이야기<1>
환영받지 못한 귀환, 다시 경찰에 끌려가는 납북귀환어부
등록날짜 [ 2021년08월30일 14시48분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원회)는 오는 2022년 12월 9일까지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피해를 본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받고 있다. 속초와 고성을 비롯한 동해안에는 과거 납북되었다가 돌아와서 국가로부터 부당한 처벌과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가 많다. 이들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당시의 납북사건과 피해사실을 다시 짚어보는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오래된 사진이 말하는 납북귀환어부 진실
보통 납북어부사진은 귀환하는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 풍경이나, 부둣가에 모여서 귀환납북어부를 기다리는 군중들,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 가족과 만나는 장면, 돌아온 귀환납북어부들의 기자회견과 산업시찰과 관광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귀환 현장 취재 기사에는 “조국 품에 안긴 어부들”, “자유의 땅을 밟자 생기를 되찾았다”, “가족들과 뜨거운 재회”라는 제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위 사진은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깨뜨린다. 북한의 억류에서 풀려나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어부들이 누군가 고개를 들지 말라고 지시를 했는지 배 갑판 위에서 고개도 못 들고 쪼그려 앉아 있다. 배에는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서 있다. 귀환어부들을 반갑게 환영하는 사진이 아니라 범죄자를 체포해 호송하는 사진이다. 배에서 내려 줄을 지어 가는 선원들을 군인인지 경찰인지 총을 들고 호위를 하고 있다. 납북어부들이 경찰 트럭 뒷칸에 실려 경찰서로 이송되는데, 총을 든 경찰이 동승해 어부들을 감시하고 있다. 영락없이 경찰서로 범죄자를 끌고 가는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1960년대 말 납북되었다가 고성 거진항으로 돌아온 어부들이 어떤 존재로 취급받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시 <경향신문> 기자가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데, 신문에는 게재되지 않았다. 당시 강압적인 체제에서는 감히 이런 분위기의 사진을 신문에 게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6달만에 거진항으로 돌아온 납북 어부들 
1969년 5월 28일 고성군 거진항은 너무나 반갑고 기쁜 소식이 전해져 온 마을사람들이 들떠 있었다. 지난해 북한 쾌속정에 의해 납치된 명태잡이 어선 23척과 선원 1백50명이 6개월 이상의 억류 끝에 드디어 거진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북에 납치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어 애를 끓이던 가족들과 주민 1천명이 납북어부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거진항 부둣가로 나와 초조하게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 아들, 남편, 형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혹시 못 돌아온 건 아닐까? 기대와 흥분, 불안감이 부둣가에 몰려나온 주민들 얼굴에 가득했다. 
납북된 어선과 선원들은 5월 28일 오후 1시쯤 억류에서 풀려나 북한의 고성군 남애항에서 출항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했다. 오후 3시쯤 해군함정이 레이더를 통해 남하하는 어선을 발견해 해양경찰대와 함께 예인해 저녁 무렵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거진 앞바다에 도착했다. 돌아온 어선들은 거진항으로 바로 입항하지 않고, 해상에서 심문 검색을 받은 후 모두 4그룹으로 나누어 시간차를 두고 거진항에 입항해 하선 대기했다. 다음날 아침 마지막 배가 거진항에 들어오자, 오전 8시25분부터 어부 1백50명을 미리 대기해 둔 경찰트럭 4대에 싣고 고성경찰서와 속초경찰서로 분산 수용했다. 
대다수 납북어부 가족들은 크게 실망했다. 일부 기사에서는 잠시 부인과 만나는 기쁨을 누린 선원도 있다고 인터뷰도 있었지만, 배에서 내린 어부들 대부분을 바로 트럭에 싣고 경찰서로 다시 끌고 갔기 때문에 돌아온 어부들과 기다리던 가족들은 상봉할 수 없었다. 조국의 품에 안긴 납북어부들은 가족들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고 삼엄한 경비 아래 다시 경찰서로 짐짝처럼 끌려갔다. 
 당시 신문에서는 돌아온 어부들은 모두 납북될 때의 옷차림 그대로였으며, 이북에 끌려가서는 심한 감시 속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억류생활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미처 돌아오지 못한 어부의 가족들은 실의에 빠져 울기도 했다. 어느 신문에서는 귀환어선이 북에서 보내준 북어와 인삼주 등을 약간씩 싣고 왔다고 보도했다.
당시 납북귀환 소식을 전한 신문 기사에는 경찰이 납북귀환어부 전원을 반공법,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등을 적용해 구속할 방침이라고 했다. 실제로 6월 18일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선원 29명을, 6월 23일 춘천지검 속초지청에서 선원 1백명을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리고 검찰은 귀환 어선 15척을 거진, 대진, 속초항에 억류 조치까지 했다. 

 

북한 쾌속정에 강제 납치된 어선·선원들
돌아온 어선과 선원들은 1968년 10월 31일과 11월 1일, 7일, 8일 모두 4차례에 걸쳐 동해안 휴전선 근해에서 어로작업을 하다가 북한 무장쾌속정에 의해 납치됐었다. 당시 신문에 이들 납북사고가 보도되었다. 
1968년 10월 30일 어선 7척과 어부 54명이 북한 쾌속정의 기관포세례를 받아가며 납북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사고를 목격하고 돌아온 거진항 배 선장이 어협에 보고해 알려졌다. 10월 31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동해 어로저지선 근해에서 우리 어선 86척이 명태잡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북쪽에서 북한쾌속정 3척이 나타나 어선들을 포위하면서 기관포를 난사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어선들은 그물을 끊고 남쪽으로 빠져 나왔으나 7척의 어선은 피하지 못하고 납북되었다. 납북된 배들은 거진항, 속초항, 대진항 소속이다. 
이틀 후인 1968년 11월 1일 낮 12시 30분쯤 어로저지선 남쪽에서 조업하던 어선 2척과 선원 8명이 북한 쾌속정에 납북되었다. 11월 2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속초, 아야진, 거진에서 출어한 3백여척 중 70여척이 어로저지선 남방 1km 해상에서 조업할 때 북한괘속정 2척이 나타나 기관포를 난사하며 포위하려하자 도망쳐 나왔는데, 2척이 강제로 납치되는 것을 군 전방관측소가 확인했다. 
며칠 후인 11월 7일 다시 어선 4척과 어부 31명이 납북되었다. 11월 8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거진, 대진, 속초항 소속 2백여척의 어선이 동해어로저지선 부근에서 명태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오전 10시경 갑자기 3척의 북한 쾌속정이 나타나 50톤급 저인망어선 1척과 다른 3척의 어선을 포위하고는 북한병이 배에 올라가서 기관총으로 위협해 납북해 갔다. 이같은 사실은 기적적으로 탈출해 거진항에 돌아온 배 선장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다음날인 11월 8일에도 우리 어선 10척과 선원 72명이 납북되었다. 11월 9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11월 8일 오전 10시쯤 동해어로저지선 인근에서 3백여척이 조업을 하고 있는데 북한쾌속정이 어로저지선 남쪽 3마일 해상까지 침입해 기관포를 쏘며 접근해 기선을 북으로 돌리라고 위협했다. 어선들은 낚시와 그물 등을 팽개치고 남으로 탈출했으나 일부 어선에는 북한 수병이 올라타고 강제로 북으로 끌고 갔다. 납치현장을 탈출한 거진항 배 선장에 의해 납북사고가 알려졌다. 
당시의 신문 기사를 보면 1969년 5월 28일 거진항으로 돌아온 어선 23척은 모두 북한쾌속정에 의해 강제로 납치되었다. 납치 상황을 보면 한, 두척의 어선이 이탈해서 북쪽 어로저지선을 넘어간 것이 아니라, 수십~3백여 척이 조업하는 어로현장에 북한 쾌속정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기관총을 쏘면서 강제로 어선을 납치해 갔다. 당시 어선 수백척이 조업하던 해상에서 우리나라 해군 함정이나 해안경비정이 우리 어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응했다는 기사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구나 4건의 납북사고 중에 3건은 납북을 간신히 모면하고 돌아온 배 선장이 신고를 하면서 처음으로 납북사실이 알려졌을 뿐, 관계기관은 납북사고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낙인이 찍히는 중대범죄이다. 이들 납북어부들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북한에 납치되어 고생을 하고, 다시 귀환해도 가족들과의 상봉도 하지 못하고 다시 끌려가 중대한 공안사범으로 구속된 것일까? 왜 조국의 품에 안긴 납치 피해자들을 다시 범죄자로 취급하고 처벌했을까?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https://archives.kdemo.or.kr)에 공개된 납북어부 사진들이다. 1969년 5월 28일 촬영한 사진으로 사진 생산 및 기증자는 <경향신문사>이며, 사진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 글이 붙어있다. ▲사진1 / 납북되었다가 6개월만에 무사귀환하는 어부들 ▲사진2 납북되었다가 귀환하는 어부들을 기다리는 가족들 ▲사진3 군인들의 경호 아래 줄 서서 항구를 빠져나가는 납북귀환어부들 ▲사진4 고성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는 납북귀환어부들. 이들 사진과 추가사진(2장) 고화질 원본은 오픈아카이브에서 ‘납북어부’로 검색하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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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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