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17일 속초 조양동 청대리마을에서 만난 장진원(74) 통장은 “올 추석은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청대리마을에서 태어나 70 평생 넘게 살아왔지만, 올 추석은 농촌마을의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동서고속철사업 확정 이후 불기 시작한 대형건축물 건축바람이 속초지역에서 마지막 남은 자연부락인 청대리 마을에도 번져 일부 주민들이 하나 둘 정든 마을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장 통장은 “그래도 나는 바로 마을 인근 부지에 새로 집을 짓고 이사했지만, 막상 새 집에서 추석을 지내려고 하니 예전 집이 그리워진다”며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예전의 추석 인심을 느낄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추석을 맞아 이날 농업기술센터에서 받은 햅쌀 선물 상자를 주민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예전 집터를 다시 찾은 장 통장은 철거를 하다 일부 건물 뼈대만 남은 자신의 집터를 한 동안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대단위 아파트 건축으로 시작된 전통농촌마을의 해체현상이 논산리 마을을 시작으로 온정리 마을을 거쳐 현재는 청대리 마을로 이어지고 있다. 논산리 마을은 지난 1990년대 부영아파트 6블럭 공사로 농촌마을 기능이 거의 상실됐고, 온정리 마을도 지난 2014년 대단위 아파트 건축으로 자연부락 기반이 모두 사라졌다. 지금은 청대리가 대단위 아파트 건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청대리 마을은 마을 경로당 주위 60여 가구 중 14가구 정도가 아파트 사업부지에 포함돼 추석을 앞두고 이주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은 현재 한 민간건설업체가 조양동 415번지 등 71필지 8만5,000여㎡ 부지에 6개동, 지상 20층~29층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해당 건설업체는 아파트 건축을 위해 사업부지 내 토지매입작업을 거의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마을 입구에는 명절 때마다 어김없이 붙던 ‘고향 방문 인사’ 현수막 대신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터전, 절대 훼손 말고 즉각 해결하라’는 경고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마을회관 건너편 사업부지 내 일부 가옥은 이미 철거돼 빈 터만 남아있었다. 그 주위의 가옥 2동도 건물 주인이 토지보상금을 받고 떠난 상태여서 빈 집으로 남아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 있지만, 마을은 썰렁하기만 했다.
마당에 설치했던 건축 자재를 새로 이사 간 집에 가져가기 위해 마을을 다시 찾았다는 한 이주 주민은 “주위의 이웃들이 하나 둘 토지보상금을 받고 떠나고 빈 집만 남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며 “어디 가나 자기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30여년을 살았던 마을을 떠날 때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현재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가는 사람은 가고, 여기서 살 사람은 남아야지. 내 집 놔두고 어디 가겠어”라며 청대리 마을에 진한 애착을 나타냈다.
이성린 조양동장은 “마을회관 윗마을도 현재 개발 소문이 돌고 있어, 이러다가 우리 지역의 자연부락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고 했다.
고명진 기자 mjgo9051@hanmail.net
지난 17일 오후 장진원 청대리마을 통장이 뼈대만 남은 예전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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