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잡이가 성행하던 시절 속초의 겨울 밥상에는 온통 명태였다. 성한 명태는 내다팔고 상한 명태는 집에 가서 손질해 말려 명태살을 발려 기름을 넣고 볶아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도시락 반찬으로도 많이 싸갔다. 명태를 적당히 말려서 조린 명태조림이 밥상에 올랐다. 터진 명란젓과 창난젓, 명태 서거리깍두기, 명태곤지볶음, 명태국. 한 겨울 속초 사람들의 밥상은 이렇듯 명태요리로 가득했다.
명태국은 명태잡이 어부들이 먹던 음식이다. 한겨울 새벽에 추운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은 군인용 반합(항구)에 밥과 김치를 싸가지고 나갔다. 추운 몸을 덥히려면 따뜻한 국물이 필요했다. 화덕불에 솥을 올려 그물에 걸려온 싱싱한 생태를 토막을 쳐서 넣고 명태애와 곤지, 소금, 파, 고추가루 등 양념을 넣고 끓여 먹었다. 명태국은 소금을 넣고 맑게 끓여낸다. 생태지리이다. 집에서도 한 겨울 밥상에서 명태국은 빠지지 않았다. 명태국이 지겨우면 생명태를 넣고 장을 풀어넣어 칼국수를 끓여 먹기도 했다. 명태국은 일상식이고, 명태칼국수는 별미음식이었다.
생명태가 많이 나는 속초에서는 북어국이나 황태국은 생소한 음식이었다. 싱싱한 생물로 끓이는 명태국이 있기에 굳이 말린 명태로 국을 끓이지 않았다. 황태국은 1990년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황태요리 전문점이 들어서면서부터 일반화되었다.
명태음식은 아직 속초의 대표 음식
보통 추석이 지나면 명태잡이를 시작하는데, 초가을에 잡은 명태를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김장김치에 같이 넣는다. 명태를 통째로 넣기도 하고 토막을 쳐 넣기도 한다. 김치가 익으면서 명태도 함께 삭으면 김치보다도 더 맛이 좋다. 그래서 식구 많은 집 밥상에 김치가 올라오면 서로 젓가락으로 김치 속을 헤쳐 명태살부터 골라 먹었다.
김장김치 속에서 삭은 명태와 비슷한 맛이 명태식해이다. 따로 명태를 좁쌀 등에 넣어 식해를 담가 먹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가정에서는 겨울철 별미로 명태를 김치에 함께 넣어 발효시켜 먹었다.
지금 속초의 음식문화에는 명태 음식의 추억이 곳곳에 남아 있다. 냉면 고명에 들어가는 명태회. 젓갈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명란젓과 창난젓, 그리고 명태식해. 생선찜 식당에서는 매콤하고 담백한 매운코다리찜을 맛볼 수 있다. 속초 닭강정이 유명세를 타면서 명태살로 만든 명태강정도 상품화되어 판매되고 있다. 명태강정은 코다리 명태살에 닭강정과 같이 매콤한 양념을 함께 버무린 간식거리이다. 황태나 황태국, 황태구이도 명태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명태 곤지와 알을 넣고 해장국으로 끓여낸 명태곤지해물뚝배기도 있다. 명태 속에 양념과 소를 넣고 얼려 말린 함경도식 명태순대도 식당 몇 곳에서 맛 볼 수 있다. 물론 속초에서 가공 건조되는 코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속초산 명태는 사라져도, 명태음식은 아직도 속초의 대표적인 음식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친 삶 위로해 주던 서민의 생선
속초라는 이름을 내걸고 외지에서 장사를 하는 식당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을 꼽으라면 서울북창동 골목의 ‘속초생태집’이다. 우선 속초라는 지명에 반갑고, 사라진 명태의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어 정겹다. 대표인 양현남씨가 1999년 속초에서 올라가서 개업을 했으니 벌써 20년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라고 하는 ‘블루리본 서베이 : 서울의 맛집’에 2017년, 2018년 연이어 이름을 올린 맛집이다. 이 집은 속초에서 올라온 싱싱한 수산물 요리가 일품이다. 속초산 대구와 도루묵, 물곰, 도치, 문어, 골뱅이, 세꼬시가 나온다. 그런데 반가운 속초 이름과는 달리 이곳에서 파는 생태는 속초생태가 아니다. 원산지 표기를 보면, 다른 생선은 모두 국내산으로 속초산인데, 오직 생태만은 오호츠크해역과 일본, 러시아로 적혀 있다. 속초산 수산물도 많은데, 유독 속초에서 나지 않는 명태를 상호로 고집하는 건, 역설적으로 속초 명태를 다시 보고 싶어하는 속초사람의 간절한 희망을 담은 게 아닐까 싶다.
꿩 대신 닭이라고, 명태가 사라진 허전함을 대구탕으로 달랠 수 있다. 속초에서 생선회나 게찜을 빼면 대구탕이나 물곰탕 간판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대구탕 맛은 과거 지역주민이 먹던 명태국이나 명태지리의 맛과 비슷하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명태가 한창 날 때 대구는 일반 서민은 감히 먹어보기 힘든 귀한 생선이었다. 명태같이 애잔한 과거의 추억이 느껴지지 않는다. 속초사람들의 명태에 대한 집착은 명태가 삶의 애환이 함께 녹아있는 서민 생선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가난한 시절 허기를 달래주며 지친 삶을 위로해 주던 서민의 생선이 바로 명태였다.
올해 9월 들어 속초 북쪽 고성 앞바다에서 사라졌던 명태가 좀 잡혔다. 사라졌던 명태가 잡히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조만간 소금으로 끓여낸 싱싱한 명태국도 제 맛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명태식해(촬영 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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