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동 아바이 김상호 옹의 살아온 이야기<4> 속초로 올라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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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을 사람들 모인 청호동 ‘짜꼬치마을’

등록날짜 [ 2018년09월21일 13시50분 ]

주문진에 있는 동안 김상호 옹의 모친은 쌀을 조금 넣고 물을 많이 부어서 죽을 쑤는 경우가 많았다. 쌀이 너무 적었기에 죽이라기보다는 숭늉처럼 말간 물이었다고 한다. 김 옹의 가족들은 속초에 와서도 한동안 그렇게 물 같은 죽을 먹었다. 김 옹은 어릴 때 그렇게 먹어서인지 이후에는 식사 시 마른 반찬을 꺼리게 됐고 또한 국물 없이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김 옹은 주문진에 머무는 동안 음식을 잘 먹지 못해 기운이 없어 한참을 방에 누워만 있던 적이 많았다. 허기져서 누워 있던 것은 김 옹의 양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김 옹이 피난 직후 동냥에 나선 것에는 이런 극한 배경이 있다.
그는 동냥 외에도 부둣가에서 사람들이 흘리고 간 고기를 주워서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때로는 어부들이 잡아놓은 고기를 한 마리씩 들고 왔다. 정확히 얘기하면 훔치는 것이지만 잡혀서 혼난 일은 없다고 한다. 어른들이 마음만 먹으면 도망가는 아이 걸음을 따라 잡아 혼내 줄 수 있지만, 그곳 어른들은 소리만 지를 뿐 굳이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동해안에 고기가 풍부했기에 차림새가 허름한 아이가 고기 한 마리 가져가도 어른들이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그렇게 가져간 한 마리의 고기는 아사(餓死)의 문턱을 넘어가던 세 식구를 살리는 요긴한 먹거리가 됐다.
김 옹은 주문진에 있을 때 주영초등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살았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다니지는 못했다. 그런데 주문진에 있을 때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다. 천막으로 지어진 교회에서는 공부를 지도해줬고 먹을 것을 줬다. 김 옹은 교회에 나간 이유로 음식을 준 것이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때 천막 교회에서 만난 이들 중에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교회에서 자신을 가르치던 여교사는 김 옹이 공부를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줬는데 지금도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주문진을 떠난 후 그 여교사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주문진에는 반년을 살다가 고향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다는 소문을 따라서 드디어 속초 청호동으로 오게 됐다. 청호동이란 명칭은 1966년에 지어진 것이고 청호동이 당시에는 속초리 5구도 아니고 3구로 분류돼 있던 시기였다. 1950년대 초반 청호동은 모래밭이었고 현재의 청호초등학교 남쪽으로는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김 옹은 당시 해송이 너무 울창해서 해가 지면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서 그곳으로 못 돌아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청호아이파크아파트가 있는 곳도 당시에는 해송이 가득했다. 그곳은 공동묘지로도 사용돼 예전엔 ‘해골마을’로 불렸다. 그런데 지금은 청호동 해송 숲의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없고 그보다 더 아래쪽인 속초해수욕장 인근에 조금 남아 있을 뿐이다.
청호동은 모래밭과 해송 숲으로 이뤄져 있었지만 피난민들에게 속편한 장소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 지역 주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청호동에는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없어 처지가 비슷한 피난민들끼리 서로를 이해하며 지낼 수 있었다.
김 옹 가족이 속초에 와 보니 이북에서 온 피난민들이 해안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신포마을, 단천마을, 홍원마을 등등 각 출신지별로 마을이 형성돼가는 중이었다. 청호동에 임시거처를 마련한 이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고향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만들어진 마을들이다. 북청군 속후면 신창2리에 살던 고향 마을 사람들도 한데 모여 주거지를 이뤘는데 이곳은 ‘짜꼬치마을’이라 칭하게 됐다.
<다음에 계속>
구술 김상호.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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