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동 아바이 김상호 옹의 살아온 이야기<3> 피난 직후의 삶

뉴스홈 > 인물

배 타고 울진 후포 도착…주문진서 동냥 다녀

등록날짜 [ 2018년09월17일 13시47분 ]

김상호 옹이 고향마을을 떠난 것은 1950년 12월로 우리 나이로 10살 때이다.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의 흥남철수작전이 진행될 때의 일이다.
김 옹이 알기로는 당시 적극적으로 북한 정권을 비판하던 사람들만 피난길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의 부친 세대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당시 미국이 38도선 이북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남으로 내려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난리를 잠시 피한다는 생각에 피난 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김 옹이 살던 마을에서는 환자나 어르신들 빼고는 거의 다 피난길에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피난을 나왔고 김 옹의 가족들은 타인의 배를 얻어 타고 이 대열에 합류했다. 마을 주민들이 이용한 배는 별도의 동력장치 없이 바람으로만 가는 돛단배였다. 김 옹은 이 배를 타고 경북 울진 후포까지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돛단배로 그렇게 멀리까지 간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한다.
고향 마을에서 떠나온 배는 세 척이었고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 우선 흥남에 정박했다. 흥남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배 세 척 중 김 옹 가족이 탄 배를 비롯해 두 척은 정박한 다음날 흥남을 먼저 떠났고 나머지 한 척은 하루 더 있다가 떠났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남은 한 척에는 반공 치안대가 여성과 아이들을 내리게 한 후 승선했다. 그 배에서 내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남쪽으로 다시 피난 온 사람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때 하선한 여성과 아이들은 흥남에서 북청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다가 전투에 휩쓸려 거의 다 죽었다고 한다.
김 옹 가족이 탄 배는 흥남을 떠나 울진 후포에 도착했다. 고향을 떠난 다른 배 한 척은 부산 영도까지 내려갔다. 후포에서는 마음 좋은 이장과 어르신들이 빈 집을 내어주어 마을에 살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대놓고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피난민들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자신이 머물던 마을에서 물건이 많이 없어졌는데 이것을 피난민들의 소행으로 여긴 주민들이 있었다고 김 옹은 기억했다. 실제로 피난민들이 궁한 처지에서 마을 주민의 물건을 가져간 일도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그의 가족은 후포에서 두 달 정도 머물다가 떠났고 삼척에서 잠시 며칠 동안 빈 집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다음 김 옹 가족이 향한 곳은 주문진이다. 주문진에서는 조그만 방을 얻어서 반 년 정도 있었다. 피난 생활이 길어졌지만 그의 부친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모친이 명태 덕장에서 생선 할복하는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세 가족이 살아가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겨울이 가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명태 덕장에서는 생선 할복 일이 점차 줄다가 끊겼다.
김 옹은 너무 배가 고파 동냥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남의 집까지 가서도 차마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저 대문이 열린 집에 들어가면 행색을 보고 거지가 왔거니 하면서 먹을 것을 내어다 줬다. 그렇게 며칠 지나니 밥을 달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같은 고향에서 나온 친구들도 동참했다. 깡통 하나 주어서 천으로 덮고 허리에 차고 음식을 구하러 다녔고 친구들과 오가다 만나면 서로 무엇을 얻었는지 비교했다. 피난민들은 아이들의 동냥에 기댈 정도로 힘들었다. 고향 친구들 중에는 밥을 적게 얻어 온다고 꾸지람을 듣는 이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리 인심이 사납지 않아서인지 동냥하러 찾아가면 음식을 곧잘 내어줬다.
부친은 객지 사람이어서인지 주문진을 떠날 때까지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김 옹의 가족들은 김 옹이 깡통에 구해온 음식을 상도 없이 바닥에 두고 먹었다.
한번은 부친과 함께 인근 마을에 감자를 구하러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한 가족이 밥상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좋아요 0

싫어요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방양호 제18대 조산초교총동문회장 (2018-09-17 13:49:03)

박상진 국회 기획재정위 전문위원 (2018-09-17 13:46:29)

1671호(2024.11.18.)1671호(2024.11.18.)1670호(2024.11.11.)1669호(2024.11.4.)1668호(2024.10.28.)1667호(2024. 10. 21....1666호(2024. 10. 14....1665호(2024.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