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속초시 메가박스에서 다큐멘터리 <초승달의 집> 김재영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2015년부터 배우의 삶과 연기활동에 관심을 갖고, 남호섭(극단소울씨어터 대표)을 만나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초승달의 집>은 김재영, 태휘원 감독의 작품으로 ‘2018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의 경쟁작으로 선정되어 이날 오전 9시 20분 메가박스에서 상영됐다.
-영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초승달의 집>은 속초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남호섭의 삶과 연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남호섭은 망막 포도막염 증상으로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지만, 시각 외 다른 감각들을 이용하여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남호섭이 몸의 여러 감각들을 이용하여 어떻게 연기해 나가는지, 그리고 연극이라는 예술이 시각 장애를 안고 있는 한 배우의 삶을 어떻게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 남호섭을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상은 하나의 연극 무대’라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말처럼, 모든 사람의 삶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배우라는 존재는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삶의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호섭은 시력을 잃게 되어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연극 무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또 자신이 본 것을 관객들에게 돌려줍니다. 볼 수 없지만,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배우’ 남호섭의 아이러니한 상황이 다큐멘터리 <초승달의 집>을 제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가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배우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보는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어머니는 대기실에서 호섭에게
1,000석 규모 객석이 꽉 찼다며
잘했다고 말씀해 주셨고,
어머니의 거짓말을 알고도
호섭은 정말 꽉 찼냐고 되묻고는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 촬영과정은 어땠나요.
“2015년 4월, 처음 촬영을 시작하여 2018년 상반기까지 만 3년 정도 촬영을 진행하였습니다. 처음 촬영할 때에는 시력을 잃어가는 남호섭의 모습과 그의 주변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단원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젊은 단원들이 배우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떠나게 되면서 촬영의 방향도 조금 수정되었습니다. 속초에 홀로 남겨진 남호섭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무명배우 남호섭’이라는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동시에, 서울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어하는 김수진, 윤국중 두 단원의 모습 또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두 단원이 서울로 이사를 하는 과정을 담으며 ‘지방에서 연극한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속초와 강원도를 배경으로 촬영했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2015년 소울씨어터 단원들이 속초 바닷가에서 연습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 때 단원들은 중국 훈춘에서 공연할 마임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원래는 연습실에서 연습할 계획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바닷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김수진, 윤국중 두 단원이 마임 연습을 다 하고 바닷가로 풍덩 뛰어들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속초와 같이 바닷가에 있는 도시가 아니면 이런 연습 장면은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컴컴한 저녁에 바다를 배경으로 모래사장에서 배우들이 연극 연습을 하는 장면은 제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호섭이 ‘무명배우 남호섭’ 공연을 끝내고 대기실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머니는 늘 남호섭이 연극할 때, 속초문화회관 객석이 꽉 찼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사실 이 연극에는 관객들이 많이 오지 않아 빈자리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대기실에서 호섭에게 1,000석 규모 객석이 꽉 찼다며 잘했다고 말씀해 주셨고, 어머니의 거짓말을 알고도 호섭은 정말 꽉 찼냐고 되묻고는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어머니와의 이 짧은 대화 속에서 호섭이 어머니로부터 얼마나 큰 힘을 얻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서 제게는 무척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무대에 홀로 서 있는 호섭의 모습은
시각 장애를 안고 있는 한 사람의
특수한 모습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삶의 질곡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영화에서 호섭이 조명 세팅을 위해 무대에 홀로 서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넓고 휑한 무대의 중앙에 홀로 서서 빛(조명)을 받고 서 있는 한 사람의 다소 비장한 모습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배우의 모습을 가장 잘 형상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 무대에 홀로 서 있는 호섭의 모습은 시각 장애를 안고 있는 한 사람의 특수한 모습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삶의 질곡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록 앞을 잘 보지 못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배우의 모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관객들에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살아가면서 좌절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삶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얻길 바랍니다.”
- 속초에서 상영을 했는데, 관객을 만난 소감은 어떤가요.
“속초에서 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영화에는 속초의 여러 모습, 예를 들면 영금정 앞바다의 거친 파도, 외옹치 해수욕장 앞 소나무 숲에 불어오는 눈보라, 설악산의 푸르른 나무들과 아바이 마을에 늘어선 식당들의 모습이 인서트 컷으로 자주 쓰였는데, 이런 장면들에 친숙한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속초의 풍경들이 나올 때마다 반가워하는 반응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 남호섭을 응원하는 분들도 극장에 많이 와 주셨는데요.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에 ‘남호섭이라는 배우가 초승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곧 보름달처럼 차오르게 될 순간을 기대한다’고 멋지게 말씀해주신 관객 분도 계셨습니다. 남호섭과 극단 소울씨어터를 응원하는 많은 분들이 자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초승달의 집>은 공동체 상영 방식이나 다큐멘터리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 IPTV 서비스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찾아갈 예정이다. 국내외 영화제들에 출품하여 더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도록 희망하고 있다.
<초승달의 집>은 ‘2018 속초국제장애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되었고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롯데시네마 합정에서 열린 ‘제19회 장애인영화제’에서 인권상을 수상했다.
손미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 7일 속초 메가박스에서 만난 김재영 감독.
김재영 감독(가운데)과 남호섭 배우가 <초승달의 집>을 상영한 메가박스에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