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뉴스홈 > 기획특집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갯배 1백년의 역사를 찾아서<마지막회>
주민 애환 녹아있는 속초 최고 문화유산 / 한국전쟁 중 다시 운행된 갯배
등록날짜 [ 2018년09월10일 12시10분 ]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속초에 월남 피난민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실향민들은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폭 1백m의 수로를 건너야 했다. 하지만 예전에 운행되던 도선은 전쟁 중에 소실되어 없어졌다.
아바이마을에는 이북에서 배를 타고 피난 온 주민들이 많아 정착 초기에는 배를 타고 수로를 넘나들었다. 갯배 운행 초창기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다. 2014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도시민속조사보고서 ‘모래 위에 세운 터전, 속초시 청호동’의 내용을 인용해 정리해 보자.
청호동에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수로를 건너기 위한 수단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때부터 김영학이란 사람이 요금을 받고 거룻배를 운행했다. 김영학씨는 손을 다친 탓에 ‘조막손’이라고 불렸다. 형태가 제법 갖춰진 갯배는 1952년 4월에 탄생했다. 미군정의 대리운영을 맡은 1군단 민사처에서 목재 및 자재를 지원하여 갯배를 건조했다. 이전의 거룻배는 승원 인원이나 물건이 제한적이었다. 특히 손수레를 싣지 못해 상당히 불편했다. 새로 만든 갯배로 손수레와 자전거를 같이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갯배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1961년 속초읍에서는 갯배 한 척을 더 제작해 2대의 도선에 대해 정식 도선업 허가를 받았다. 이를 재향군인회에 위탁하여 운영 관리했다. 갯배 운영은 속초시 승격 후 속초시의 관리 하에 두었다가 1988년 청호동 주민자치위원회(당시 청호동개발위)에 관리를 위탁하여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 승격 후 ‘속초시 도선 사용조례’ 제정
갯배 운행과 관련해 다른 기록도 있다. 1991년 발간한 <속초시지>에는 “김영학씨의 거룻배 운행이 속초도선의 효시”로 “민정 이후 속초읍이 김씨로부터 갯배를 인수했다”고 했다. 2000년 발간한 <속초시 거주 실향민정착사>에서는 “민정 이후인 1955년 처음으로 속초읍에서 갯배 1척을 만들어 5구(구장 김무림)에 위탁 운행하다가 1961년에 칠성조선소에서 한척을 더 만들어 정식 도선업허가를 받아 재향군인회 속초지회(지회장, 마장건)에 위탁운영을 했다”고 했다.
도선 운영과 관련해 속초시가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국가기록원 기록물을 보면, 1963년 1월 1일 속초시장 서리 김치룡씨 명의로 ‘속초시 도선 사용조례’를 제정해 공포했다. 시 승격 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조례에 도선운영조례가 포함된 것이다. 조례를 보면 도선 이용료는 1회 이용시 사람은 1원, 여객 및 화물자동차는 20원, 자전거는 2원, 우마차는 4원, 손수레(손구루마)는 3원 등이다. 이 도선조례는 1968년 6월 한차례 개정되었다가 1970년 12월 31일자로 폐지된다. 재향군인회에서 도선경영허가를 얻어 운영하기에 도선경영 규제권한이 없어 폐지한다고 했다.
한 동안 도선 운행과 관련한 조례는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인 2017년 12월 29일 속초시가 ‘속초시 청호도선 운영관리조례’를 제정해 공포했다. 조례에서는 청호도선은 속초시장이 관리하며, 관리위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조례상에는 갯배의 이름이 ‘청호도선’이다. 갯배는 일제강점기에는 ‘속초도선’ 또는 ‘청초호도선’으로 불렸으며, 현재에 이르러 ‘청호도선’으로 이름 지어진 것이다.

계속 바뀌어온 갯배 모양
일제강점기 때 운행한 도선이나 1950년대 초창기 갯배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안타깝게도 당시 사진은 없다. 일제말기 운행된 도선은 1척으로 우마차 4대를 싣거나, 25인승 중형버스와 옆에 사람 몇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 새로 운행된 갯배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7번국도 우회노선이 개통된 이후로 자동차까지 실을 필요가 없었다. 1953년 무렵 속초의 사진을 찍은 미군 폴 뷰포드 밴처가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한 사진 속에 갯배로 추정되는 도선이 보인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람이 10여명 타고 있고 나즈막한 뱃머리가 보인다. 지금의 갯배와는 사뭇 모습이 다르다.
갯배의 모양은 계속 바뀌었다. 최초의 갯배 이후에도 1961년에 추가로 제작되었고, 이후에는 1975년, 1998년, 2017년에 새로 제작했다. 처음에는 목선이었으나 1998년 이후에는 FRP로 재질이 바뀌었다. 지금은 지난해인 2017년 11월 15일 이후로 새로 제작된 갯배가 운행되고 있다. 운행 초창기 사진 속의 갯배에는 난간이 없다. 손수레와 사람을 가득 실은 갯배는 위험천만해 보인다.
196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 속의 갯배에는 나무로 만든 난간이 등장한다. 1967년 9월 20일자 경향신문 3면에 나온 갯배사진. 사진 설명에는 “1원짜리 나룻배-속초항을 오가는 고철 나룻배는 영세어민들의 생명선이기도 하다. 뱃삯 1원도 아까와 함부로 타진 않는다. 건너편 오징어건조장에서 서너묶음을 사서 머리에 인 여인. 그게 언제 팔릴지 얼마나 利가 나올는지.”라고 했다.
갯배 요금은 1원에서 1968년에 2원으로 인상됐다. 지금은 지난 2017년 인상되어 소인 3백원, 대인 5백원이다. 예전에는 청호동 주민만 갯배요금이 면제됐는데, 지금은 확대되어 속초시민이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갯배는 몇 편의 영화 속에도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배우 김혜자와 정동환이 나오는 영화로 1981년 상영되어 큰 인기를 끈 ‘만추’에 생생하게 나온다. 이 때 운행된 갯배는 난간이 목조가 아닌 철구조물로 바뀌었다.
초기의 갯배는 로프를 이용해 손으로 끄는 형태였다. 그러나 로프가 자주 끊어져 강철선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강철 줄을 갈고리로 걸어서 끌고 있다.
2000년 <가을동화> 방송 이후부터 갯배 이용객은 다시 급증했다. 2001년 18만여명, 2002년 14만여명, 2003년 15만여명이 이용했다. 2010년 이후에는 더욱 늘어나 2012년 29만여명, 2013년 31만여명, 2014년 35만여명, 2015년 39만명이 이용했다.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갯배 운행의 역사. 갯배는 같은 장소에서 1백년을 운행해 왔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으며, 2001년 7월 4일부터 몇 달 동안 교량공사 때문에 갯배 나루 동쪽 2백m 지점으로 옮겨서 운행하기도 했다.
 전국 해안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도선인 갯배. 지난 1백년 동안 청초호 수로를 수없이 넘나들던 갯배는 속초의 도시 역사와 함께 해왔다. 주민의 애환이 함께 녹아있는 속초 최고의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속초의 모습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도, 손으로 끄는 이 낡은 구다닥리 교통수단인 갯배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미군 사진작가 폴 뷰포드 밴처 사진, 속초시립박물관 제공.
2010년 속초문화원 주최 장롱사진공모전에 출품해 입선한 전창선씨의 갯배 사진.
1967년 9월 20일자 경향신문 3면에 나온 갯배사진.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쳐.
1981년 상영된 영화 ‘만추’에 나오는 갯배.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좋아요 0 싫어요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도시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한 공동체 회복’<2> / 양극화를 극복해가는 공동체 마을들 (2018-09-10 12:12:45)
속초 문화로 거닐다<158> / 속초와 문화적 도시재생① (2018-09-10 12:01:36)
흥겨운 전통문화공연 한마당
시간도 지우지 못한 고향의 봄
연계행사
속초시민한마당
거리에서 추억의 음악 공연
속초고·속초여고 학생들 체험·...
1
제1회 속초시 발달장애인 자기권리 주장대회
지난 12일 속초시사회복지회관에서 속초시지적장애인자립지원센...
2
2018 드럼아 놀자 제3회 썸머페스티벌
3
양양 이옥남 할머니 30년 일기책 펴내
4
속초시 인구 ‘늘었다, 빠졌다’ 반복 왜?
5
송이축제 9월28일·연어축제 10월18일 개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