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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아흔 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읽고 나서
등록날짜 [ 2018년09월03일 11시31분 ]
‘콩밭을 매면서 콩잎을 바라보면서 그리도 귀엽게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동그렇게 생긴 콩이 어찌 그리도 고 속에서 동골라한 이파리가 납족하고 또 고 속에서 속잎이 뾰족하게 나오고 디다볼수록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니 뽑는 풀도 나한테는 고맙게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풀 아니면 내가 뭣을 벗을 삼고 이 햇볕에 나와 앉았겠나. 뭣이든지 키우기 위해 무성하게 잘 크는 풀을 뽑으니 내가 맘은 안 편하다. 뽑아놓은 풀이 햇볕에 말르는 것을 보면 나도 맘은 안 좋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할 수 없이 또 짐을 매고 풀을 뽑으며 죄를 짓는다.’
우리 고장 양양 송천 마을에 사는 아흔 일곱살의 이옥남 할머니가 1987년부터 2018년까지 30여 년간 쓴 일기 가운데 151편을 묶어서 펴낸 <아흔 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편의 글이다.  할머니는 어릴 적 글을 배우지 못해서 아궁이 앞에 앉아 재를 긁어서 ‘가’ 자 써 보고 ‘나’ 자 써 본 게 다인데, 시집살이할 적엔 꿈도 못 꾸다가 남편 먼저 보내고 시어머니 보낸 뒤 도라지 캐서 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공책을 사서 글씨 좀 이쁘게 써 볼까 싶어 날마다 글자 연습한다고 쓰기 시작한 일기를 30년 남짓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고 하신다. 이 책은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북펀드’ 첫 번째 책으로 목표금액의 5배를 펀딩하여 독자들의 관심을 입증한 책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글 한 편 한 편이 진솔한 삶의 기록이다.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읽다보면 다음에는 또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하여 책 읽기를 멈출 수 없게 한다. 할머니의 글을 읽다보면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 속에서 살아서 걸어 나오시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내 어릴 적 고향의 그리운 풍경들이 오래된 앨범 속의 흑백사진처럼 정겹다. 내가 살아 왔던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 할 내일이 그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공기방울처럼 톡톡 튀어나오는 이 맑은 느낌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리고 글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니 솔직하게 많이 부끄러웠다.
무더운 여름 날 깊은 산, 숲 속에서 만난 작지만 푸른 옹달샘 같은 책을 덮으면서 얼마 전 문화예술관계 일을 하던 젊은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원주시는 그림책으로 인문학 도시를 만들고, 강릉시는 책 읽는 도시로 인문학 도시를 선점했는데, 그럼 우리 속초는 글 쓰는 시민 만들기로 인문학 도시를 기획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 때 우리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하는 속초문화예술대학의 인문학 강좌의 수강생이 스무명을 넘지 못하는 데, 그 어려운 글쓰기를 속초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시도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처음이고,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볼만한 프로젝트가 아니겠느냐는 소극적 긍정이 두번째였다. 그런 저런 이유로 올해 우리는 두 가지 사업을 시험적으로 시도했다. 하나는 속초문화예술대학의 이름으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문예창작반을 개설하여 매월 2, 4주 수요일 저녁에 문우당에서 수업을 시작하고, 속초문협의 이름으로 학생문창반을 개설하여 매월 2, 4주 토요일에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였다. 지역의 문인들이 재능기부로 강사를 하고, 나는 담임강사로 기획 및 운영을 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어렵다. 등록자는 두 강좌 모두 30명이 넘는데, 매 수업 때 마다 자리를 채우는 수강생은 열명 남짓이다. 수업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글쓰기는 어렵다는 시민들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일이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주민들께 이런 제안을 해 보는 꿈을 꾼다. ‘도토리를 돌멩이 위에 놓고 망치로 때리는데 자꾸 뛰나가서 에유 씨팔 뛰나가긴 왜 자꾸 뛰나가너 하고 욕을 하고는 내가 웃었다’라고 쓰신 할머니의 글을 보며 크게 웃었다면, 당신도 글을 쓸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이 몇 권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당신의 이야기를 시 한 편으로, 수필 한 편으로 써 보는 것은 어떨런지? 그래서 우리가 사는 곳이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 누구나 한 권의 책을 쓴 글 쓰는 인문학 도시’로 기네스 북에 오르는 것은 어떨런지?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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