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갯배가 1910년대에도 운행되었다는 사실은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에 속초 갯배(도선)의 존재를 보여주는 지도부호가 확인되고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 전역을 측량하여 5만분의 1 축척으로 지도를 발간했다. 이 지도는 현재 서울 종로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국의 지도가 지역별로 분책되어 발간되었는데, 양양읍 도천면에 해당하는 속초지역의 지도는 ‘간성7호’의 ‘옹진(瓮津)’편에 실려 있다. 옹진(瓮津)이라는 지명은 지금 대포항이 있는 대포리(大浦里) 표기에 덧붙여 괄호 안에 나온다. 지도에는 위도와 경도의 위치값과 등고선에 따른 지형의 높낮이, 논과 밭, 초지, 모래사장 등 토지이용 현황과 관공서와 학교, 도로 등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지도
이 지도는 인터넷으로는 저배율로만 볼 수 있어, 속초시립박물관 김만중 학예팀 주무관이 소장처인 종로도서관에 요청해 고배율 복사본을 확보했다. 고배율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초호 하구 물길 위에 배 모양의 지도 부호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현재 갯배가 운행되는 지점이다. 지도를 확대해 보면, 물길을 건너는 도선(渡船)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당시 원산-양양간 2등도로가 대포리를 거쳐 청초호 동남쪽 모래해변인 반부평(半扶坪)과 동쪽 모래해변인 사주(沙柱)를 한가운데 관통해서 청초호 하구 수로를 건너 속초리(束草里)로 이어지고 있다. 직선으로 뻗어 청초호 물길을 건너는 2등도로와 함께 물길 양 옆으로 우회도로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배 모양의 지도 부호는 2등도로 우회도로가 지나가는 지점에 그려져 있다. 도선이 바로 2등도로 통행 보조수단으로 역할을 한 것이다.
2등도로는 지금의 국도에 해당되는 중요도로이다. 1911년 4월 조선총독부는 식민지배체제 구축을 위해 ‘도로규칙’을 제정하고 전국의 도로 중 조선총독부가 관할하는 중요도로를 고시했다. 여기에 원산-양양간(元山襄陽間) 도로는 경성-양양간(京城襄陽間) 도로와 함께 2등도로로 고시되었다. 1등도로는 폭 4간(7.2m) 이상, 2등도로는 폭 3간(5.4m)이상의 도로이다. 2등도로는 자동차 2대가 교행할 수 있는 도로이다.
당시 양양 지역 주요 도로에 도선이 표시된 곳은 속초리 청초호 하구가 유일하다. 지도에는 하천이나 물길을 건너는 교량 지도부호는 많이 나온다. 2등도로구간에서 양양 남대천과 상운리, 청곡리, 포월리, 주청리, 용호리, 물치리, 쌍천(다리가 2개), 용천리, 천진리 도로에 교량 표시가 있다. 양양 남대천에서도 도선을 운행한 기록이 있다. 1930년 9월 15일자 부산일보 기사에서는 양양 남대천에 자동차나 우마차, 사람을 실어나르고 도선이 있어 돈을 받고 운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918년 지도에는 양양 남대천에 도선 표시는 없고, 교량 표시만 보인다.
원산-양양 2등도로 중 속초 해당 구간은 조선시대에도 양양의 강선역과 간성의 청간역을 잇는 중요 도로망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여러 금강산 유람기에는 청초호와 영랑호, 지금의 영금정인 비선대를 명승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청초호와 비선대는 이 도로 구간을 이용해야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양양 강선역에서 청간역까지 청초호 서편을 지나 원암역을 거쳐서 갈 수도 있었지만, 청초호 동편 길보다 소요시간이 더 걸리는 길이었다.
1929년 속초리 축항 기성회 홍보용 엽서
1918년 지도에 나오는 속초리 청초호 하구의 2등도로 우회노선과 도선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1929년 1월 속초리 축항 기성회가 조직된 이후에 홍보용으로 제작된 엽서에는 청초호의 옛사진이 나온다. 이 사진 속에서 속초리 2등도로 우회노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속초항 수축을 촉구하는 홍보엽서에 실린 사진에서 청초호 하구 모래톱을 잇는 다리가 보인다. 1918년 지도에 나오는 원산-양양간 2등도로의 본 구간이다. 길이 내뻗은 청초호 동편 모래해변으로 길이 이어져 있고, 청초호 물길을 건너는 목조 교량이 보인다. 육안으로 봐도 교량 폭이 좁아 사람 한둘이 지나갈 만한 교량이다. 청초호에 정박한 작은 선박들이 목조 교량를 지나 바다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만약 이 구간에 교량을 건설하려면 감히 당시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대규모 공사가 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길이 하나 보인다. 사진 왼편 아래 호수변으로 바퀴 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는 비포장 도로가 선명하다. 바퀴 흔적을 보더라도 그냥 사람만이 다닌 길이 아니라 우마차나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1918년 지도에 나오는 원산-양양간 2등도로 우회도로 구간과 일치한다. 사진 속의 도로를 오른쪽으로 연장하면 지도 속의 도선 위치와 연결된다.
1930년 7월에 실측해 제작한 ‘속초항 수축도’에도 우회도로가 선명하게 나온다. 대신 사진처럼 목조교량이 있던 2등도로 본 도로는 없어졌다. 원산-양양간 2등도로 속초리 노선이 도선운행 노선으로 변경된 것이다.
본래 청초호 하구에는 사람이 건널 수 있는 목조 교량이 있었으나 자동차나 우마차 등은 통행이 불가능했다. 이런 사유로 자동차나 우마차 통행을 위해 속초 청초호 하구에는 일찍부터 도선이 운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도선이 지금 운행되는 갯배이다.
그렇다면 속초 갯배 도선은 언제부터 운행된 것으로 봐야할까? 해당 지도의 인쇄 발행일은 1918년 10월 30일로 기록되어 있지만, 지도 제작을 위한 측량은 1915년, 제판은 1916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에는 도천면사무소가 중도문리에 표시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따르면, 양양군 도천면사무소는 1916년 5월 24일자로 중도문리에서 대포리에 이전했다. 1916년 이전에 지도 제작을 위한 측량을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백년이 넘는 1915년에 이미 청초호를 건너는 도선인 속초 갯배는 운행되고 있었음을 당시의 지도가 말해주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그 긴 세월 운행해 온 ‘역사적 유물’을 타고 청초호 물길을 건너고 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18년 일제가 발행한 양양군 도천면 지도.
지도를 확대하면 속초리 청초천 하구에 배 모양의 지도부호가 선명하게 보인다.
1929년경에 만든 홍보엽서 사진 속에 나오는 청초호 하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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