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 유치원 담당 장학사, 총무 담당, 주무관과 같이 속초유치원 주차장에서 떠나는 유치원 통학버스를 탔다. 유치원 통학차량의 현장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안전점검을 겸한 유치원 통학차량 도우미 체험 프로그램이다. 40분 정도 걸리는 1차 코스에서 12명의 유치원 아이들을 통학버스에 태우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처음 보는 도우미 선생님이 낯설어서 부끄러움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신기한 듯 쳐다보며 ‘누구세요’ 하고 호기심 가득 담긴 질문을 던지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2명의 아이들을 유치원에 내려 주고, 다시 2차 코스로 떠나 22명의 아이를 태웠다. 34명의 아이들 모두가 생김새도 다르고, 타는 곳도 달랐지만, 한 가지만은 모두가 똑 같았다. 그 것은 바로 아이가 버스에 올라 도우미 선생님의 안내로 자리에 앉고, 안전벨트를 매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아이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위해 목을 길게 빼고 열심히 손을 흔드는 부모님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이야기 소리를 노래처럼 들으며 유치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일곱 살 배기 아이가 ‘불은 불인데 안 꺼지는 불은 뭐예요?’ 뜬금없이 던지는 넌센스 퀴즈 때문에 우리 어른 다섯 명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답을 댔더니 ‘딩동댕’ 하더니 계속 퀴즈 문제를 던져댔다. 어렵게 어렵게 답을 맞춰가던 우리 어른들 중 한 명이 이제는 그만 두자는 뜻으로 ‘넌 어떻게 그렇게 많은 퀴즈를 알고 있니?’ 하고 묻자, 자기가 요즘 넌센스 퀴즈에 꽂혀 넌센스 퀴즈 책만 읽는다는 아이의 대답에 우리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그 아이가 입을 다물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벚꽃, 영산홍, 진달래꽃에 대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맞장구를 쳐 주자, 이번에는 뒤에 앉은 아이가 ‘8시 55분’ 하고 시계를 찬 팔목을 위로 자랑스럽게 치켜 올리면서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 줬다. 도우미 선생님이 저 아이가 요즘 시계 보는 법을 터득해서 저렇게 틈만 나면 시간을 외친다고 나에게 낮은 소리로 귀띔을 해 주셨다.
9시 15분, 1시간 45분의 일일 유치원 통학차량 탑승도우미 역할을 마치고 교육청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34명의 봄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의 눈빛과 까치발로 아이들을 보내던 부모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최근 며칠 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이 도저히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아동학대 사건을 주제로 ‘신과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학대를 넘어 입에 담기도 끔찍한 살해, 유기, 암매장이라는 살벌한 단어들이 한 달 넘게 메인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 일련의 사건을 분석한 기획기사에서 그 잔인한 부모들의 뚜렷한 공통점의 하나로 게임중독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충분히 예견된 바였다.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모두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 할 때 주어지는 거룩한 이름이다.
몇 년 전 자녀 교육법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읽은 몇 권의 책 중에 ‘부모 자격증’,‘부모도 자격증이 필요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올해는 ‘가짜 부모 진짜부모’라는 책이 나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의 본문 중에 ‘진짜 부모는 노력하는 부모이지, 완벽한 부모가 아니다. 진짜 부모가 노력하는 것을 내 자녀가 보고 있다. 나머지는 내 자녀가 채워줄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진심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으면 내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생물학적 부모는 진짜 부모가 아니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고 아이의 삶을 존중할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부모의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는 진짜 부모가 아닌 가짜 부모가 너무 많다. 이제 부모도 자녀 교육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주어야 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