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도시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공연이 많지 않고 배울 기회도 별로 없다. 지방에서는 클래식 음악인으로 살아가기도 어렵다. 찾는 이들이 많이 없기에 활동의 근거지로 삼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런 악조건에서도 지역에서 활동 반경을 넓혀 가는 젊은 클래식 음악인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도영이 그 주인공이다.
속초에서 나고 자란 이도영 씨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은 5세 때다.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동경해온 그의 모친이 그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게 했다. 어머니의 의지로 글도 모를 때 바이올린을 잡았던 것이다. 멋모를 때 시작했지만, 그는 점차 재능을 발휘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설악콩쿨’에서 고학년 학생들을 제치고 상을 받기도 했고, ‘YWCA 강릉 학생음악콩쿨’, ‘강원도 학생실기대회’에서 입상한 바 있다. 속초에서는 실력이 독보적이어서 강원도 학생실기대회 속초지역예선에서 3년 내내 1등을 차지했다.
그는 속초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바이올린을 그만둔 적이 있다. 부친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로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다. 이전에는 당연히 하는 줄로만 알고서 하던 바이올린을 스스로 다시 하고 싶다고 느끼고서 부친을 설득했다고 한다.
다시 시작한 바이올린은 그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1년 반 동안 바이올린을 놓았다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몇 개월 연습했을 뿐인데 실기 수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일본대사관 주최 콩쿠르에서 1위를 했고 중국 항주사범대에서 초청연주를 갖기도 했다. 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했다.
독일 유학 그의 음악세계 영향
그는 독일 트로싱엔(trossingen) 국립음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독일 유학은 그의 시야를 틔운 계기가 됐다. 독일은 세계적으로 기술이 우수한 첨단국가인데도 국민들은 검소했다. 겉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독일인들은 내실을 추구했고 내실을 기하기 위해 기초를 중요시했다. 이런 독일인들의 성향은 음악에도 반영됐다. 그의 생각에 독일인들은 대체로 음악의 본질과 기초를 중시한다. 편곡을 새롭게 하기보다 그 곡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독일에서는 음악 교육에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육을 중시했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기교를 발전시키기 위한 교육이 중시되는데 독일에서는 개인의 연주만큼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조화롭게 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도 많이 이뤄졌다.
수업 현장의 분위기도 달랐다. 교수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라고 주문했다. 음악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에 교수들은 무작정 연습을 하는 것보다 나가서 놀며 자연을 느낄 필요도 있다고 했다. 갇혀서 연습만을 강요당하는 한국의 엘리트 음악 교육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고 매일 오전 7시 반이면 학교에 도착해 연습을 했다. 교수들이 얘기했던 근본적인 골자, 왜, 그리고 어떻게 음악을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이런 고민과 연습을 바탕으로 그는 트로싱엔 대학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을 수 있었고 독일 곳곳을 돌며 한국인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려줬다. 그리고 이탈리아 ‘Citta di Barletta’ 국제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잠깐 자만심을 가진 때도 있었다. 2016년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당시 외국에서도 인정받은 자신이 무엇이든 하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귀국 이후의 상황은 자신의 기대와 달랐다. 귀국 이후 반년 동안 나가는 콩쿠르마다 떨어졌고 교향악단에도 낙방했다. 강사 자리를 알아보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조건과는 맞지 않았다. 자신을 불러주는 곳도 없어서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그는 당시 상당히 초조했다고 한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큰 무대가 아니어도 자신을 불러 준다면 달려갔고 무료 연주를 가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씨앗이 되어 이제는 자신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게 됐다.
속초에서 11월 독주회 예정
그는 현재 강원도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작년 5월부터 ‘고성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초빙돼 활동 중이다. 고성 필하모닉은 전문 연주자 단체는 아니다. 음악에 관심을 가진 지역민들이 모여서 기량을 닦으며 지역의 문화단체로서 성장해가고 있다. 고성 필하모닉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이도영 지휘자는 애정이 크다. 그는 지역에서 평범한 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고성 필하모닉을 이끄는 일 외에도 그가 지역의 무대에 서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는 속초에서 11월에 독주회를 갖는다. 연주회의 콘셉트는 ‘누에보 탱고’다. 클래식과 탱고를 조합한 흥미로운 공연이 될 예정이다. 그가 리더로 있는 ‘조이트리오’도 우리 지역에서 조만간 공연을 하게 된다.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이제 시작이니까요. 우리 지역에서 더 다양한 무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지역의 음악 인재도 발굴하겠습니다.”
그의 젊은 기운이 지역 문화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보인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바이올리니스트 이도영은 점차 우리 지역에서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이도영 제공).
고성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아 단원들의 지도에 몰두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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