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전 세대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복부인(福婦人)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가정부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
주지하다시피, 복부인이란 단어는 1970년대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와 아파트 열풍이 한창 불어 닥치기 시작할 때 생겨난 신조어였다.
그 시절 같지는 않지만, 요즘도 복부인은 음으로 양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복부인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멕부인’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내쉬곤 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는 분이라면 다 알고 있듯이, 멕부인(N. F. von Meck; 1831-1894)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후원자였다. 멕부인은 13년 동안이나 차이코프스키에게 매년 6천 루우블의 후원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이 후원금은 엄청난 거액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차이코프스키는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서양음악사에 빛나는 많은 음악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호사가들은 미망인이었던 멕부인의 이러한 호의가 우정과 같은 순수한 의도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면서 수많은 추측들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되고 있듯이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길어도 3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아주 뜨거운 연인 사이면 더더욱 화끈하게 깨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동양 철학에서도 사랑은 결코 영원한 게 아니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가 생로병사라는 과정을 겪듯이 사랑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법적으로 남녀를 묶어두지 않는다면, 두 사람은 해로(偕老)할 수가 없다고 한다.
제한된 지면 관계상 세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미망인이었던 멕부인이 차이코프스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연정(戀情)은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하지만 멕부인의 통 큰 후원은 사사로운 연정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정을 초월한 더 큰 사랑이 있었기에 긴 세월 동안 그런 후원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가진 게 돈뿐이었던 멕부인은 돈을 정말 멋있게 썼다. 그야 말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데 썼던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지만, 나는 조숙한 천재 작곡가가 아니다. 그래서 대학·대학원 때의 습작품은 내 작품 목록에서 모두 뺐다. 그러고 나니 120 여 곡 정도가 되었다.
개인 작곡발표회는 네 번을 했다. 주위 분들에게 재정적으로, 행정적으로 큰 도움을 받아서 잘 치를 수 있었다.
창작곡 음반은 모두 세 장을 출반(出盤)하였는데, 모두 자비(自費) 출반이었다. ‘작품 해설’과 ‘기획’이라는 형태의 도움만 받았었다.
2집 출반 때는 대학 후배에게 연주를 부탁했는데, 제작비 부담 때문에 연주료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나는 연주료를 떼어먹은 악덕 작곡가가 되었다.
3집 출반 때는 안 되겠다싶어 해당 기관에 지원금 신청을 냈었다. 그런데 접수한 신청 서류가 부실해서인지, 아니면 심사위원들이 창작음악에 대해 무식해서인지 보기 좋게 탈락을 하였다. 그 후, 나는 두 번 다시 지원금 신청은 안 하겠다고 맹세했다.(번거로운 신청 절차와 정산 절차 때문에도 더 이상은….)
이게 21세기 우리 대한민국의 작곡 현실이다.
4집 음반에 해당하는 창작 기타곡 음반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어디 멕부인, 아니, 멕처녀 같은 골드미스는 없을까?
나는 차이코프스키처럼 훌륭한 교향곡을 쓸 능력은 없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가 평생에 단 한곡도 남기지 못했던(않았던?) 기타곡은 쓸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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