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더운 여름이었다. 예년 같으면 한여름에도 집에서 에어컨을 켜는 기간이 3~5일 정도, 길어야 일주일가량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계속 이어지는 열대야 현상으로 도무지 며칠을 켰는지 셈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더웠다. 그래도 이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 곳 설악권을 찾아 휴가를 왔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던가? 막히는 도로를 뚫고 내리쬐는 폭염 속에서도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어쩌면 묵은 삶의 때를 벗겨버리기엔 속초를 비롯한 설악권 만큼 좋은 피서지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산, 바다, 호수, 온천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환경과 다양한 먹거리들, 그리고 피서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단위 리조트에서부터 호텔, 펜션, 민박까지 여러 부류의 숙박시설들이 비교적 잘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악권에 삶의 터를 지닌 사람들이 피서철만 되면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일이 하나 있다. 그건 아마도 해마다 반복되는 손님맞이일 것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해도 변함없이 손님 치르는 일이 이 여름의 통과의례가 된 것 같다. 대학친구들,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 이런 저런 연유로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을 비롯해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본가와 처가의 식구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의 지인들까지…. 그들에게 속초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숙박, 먹거리, 볼거리에 대한 안내와 동행을 하다보면 이 여름이 바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잠깐 눈을 돌려 우리의 10년, 20년 후를 조망해보면 어떨까? 그때도 여전히 설악권이 지금처럼 관광의 메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까? 여러 난관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금강산 관광이 다시 재개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고성을 비롯한 접경지역에는 여러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악권 전체를 볼 때에는 설악권 패싱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수년전 한창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 되었을 때는 많은 이들이 설악산과의 연계관광을 모색하기도 했었다.
올 여름 손님맞이 중에 여러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는 왜 이렇게 속초에 건설현장이 많은가 하는 질문이었다. 주변 경관들을 가리고 생뚱맞게 우뚝 서있는 건물들과 공사 중인 건설 현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개발과 보전의 갈래길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며칠 전 남동생의 가족과 외옹치항의 둘레길을 다녀왔다. 개통된 뒤 처음으로 가본 비교적 자연 친화적인 둘레길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멋진 풍광이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개발된 대포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조금은 답답해졌다. 사람들이 바랐던 대포항은 저렇게 삭막하게 메꾸고 개발한 모습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만이 가질 수 있는 정취를 살리는, 그런 방향으로 정비되고 개발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에는 자연환경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겠지만, 그것들이 하나 둘 익숙해지면 뭔가 좀 색다른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여러 번 속초를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매번 똑같은 루트의 안내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이번 여름에는 청초호 주변의 야경을 벗삼아 한 라이브 카페에서 처가 식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가졌었다. 라이브 음악을 듣기도 하고 또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금강산 관광은 금강산 관광대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게 하고, 설악권 관광은 설악권 관광대로 콘텐츠 있는 테마 관광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먹거리, 볼거리 위주의 관광에서 즐길거리, 누릴거리가 가득한 관광으로의 전환은 어쩌면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될 때를 대비한 설악권 관광의 최선의 준비가 될 것이다. 이젠 익숙해져 가지만 속초의 난개발은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고, 언젠가는 어쩌면 찾아오는 이 없이 건물들만 우뚝 서있는 껍데기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똬리를 튼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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