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는 속초의 명물이다. 전국 어디 도시에 도심 한가운데에 손으로 끄는 도선(渡船)을 타고 물길을 건너는 곳이 있을까? 오직 속초에만 존재하는 교통수단이 바로 갯배이다. 한때는 청초호 구수로 매립과 함께 갯배는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갯배는 지금도 아바이마을 북단 신포마을과 속초시내를 연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지금 갯배 남단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설악금강대교를 타고 중앙시장 입구까지 오려면 3.3km를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갯배를 이용해 중앙시장 입구까지 걸어오면 그 거리가 300m도 안 된다. 속초시내 대표적인 두 관광명소를 이어주는 갯배는 직접 배를 끌어 손맛을 느끼는 체험관광상품이기도 하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몰려 줄을 서서 갯배를 타고 청초호 구수로 물길을 건넌다.
갯배가 속초의 명물인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바이마을 실향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갯배는 실향민들의 통일 염원을 상징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망향의 그리움을 삭혀온 아바이 실향민들에게는 시내와 단절한 아바이마을을 이어주는 갯배는 남북의 단절을 극복하고 연결되어 통일을 이루는 실낱같은 희망을 상징한다.
속초의 명물인 갯배는 언제부터 운행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갯배가 속초 수복 후인 1950년대부터 운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역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갯배는 속초항 수로가 개설된 1930년대 후반에도 이미 운행되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갯배가 일제강점기 때 운행되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확인해 주는 신문 기사 3건이 확인되었다.
시대적으로 가장 앞선 갯배 운행 기사는 19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7월 26일자 일본어 신문인 부산일보 5면에 실린 기사 속에서 갯배 운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기사를 번역해 일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시장 신설 축항 측량 / 활황 정(呈) 속진(束津)’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속초리는 현재 조선인은 3백호, 일본인은 2호(戶), 중국인은 4호로 밀집된 부락을 이루고 있다. 지난 6월 27일자로 시장 신설 허가가 나서 도천면 소유 토지가 있는 2등도로 옆에 시장을 신설하게 되었다. 지금 매일 4,50명의 인부들이 일을 하며 시장 부지를 정리하고 대부 토지를 구획하는 등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속진(束津)은 양양군의 선박 출입항인 대포리에서 북쪽으로 1리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속진호(束津湖) 부근은 수 정(町)의 모래땅으로 인해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 중략 …
현재 대포가 기선 발착항으로 정해진 이후에 일본인 거주자가 다수 머물고 소학교, 공립보통학교, 금융조합, 어업조합, 기타 공무소가 설치되어 있어 지금 성황을 이루고 있는데. 주변 지형이 산으로 둘러싸여 가옥 건축의 공간이 많지 않다. 또한 항구 규모가 작아 간신히 어선들이 피난이 가능할 정도이다. 풍파(風波)가 높으면 방파제를 넘어오기에 항구 안쪽도 위험하다. … 중략 …
속진(束津)은 1919년(대정8년) 이후 호수가 180호 이내였으나 지금은 1백여 호가 증가했다. 이번 시장 신설로 40여 호의 가옥을 건설하는 조건으로 땅을 임대해 주고 있다.
속초호(束草湖)에는 면(面,도천면)에서 경영하는 도선(渡船)에 의지하여 자동차는 물론 우마차도 운반해 왔으나 수년 전부터 호수 부근에 모래(砂)와 진흙(粘土)이 쌓여 통행상 장애가 있다. 양양읍 방면의 교통은 이용하기 편하나 속진 이북으로 토성, 죽왕 양면은 물론 북으로 고성군 일부와 고개 넘어 영서 방향으로는 경제활동이 어렵다. … 이하 생략 …
<1930년 7월 26일자 부산일보 5면 기사>
1930년 속초에 최초로 시장이 들어섰다. 2등도로 옆이라는데, 지금의 영랑동 옛 시장터 부근으로 추정된다. 속초에 3일, 8일 개장하는 5일장이 들어서면서 상업이 크게 발전할 걸 기대한다는 기사 내용이다.
기사 속에는 속초리와 속진(束津)이 같은 지명으로 나온다. 조선 말 1871년 발간된 관동읍지에는 양양군 소천면에 속초리와 속진리가 따로 존재했다. 그러나 1930년 양양군 지도에는 속진리는 없고 속초리만 나온다. 속진리가 속초리에 흡수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진(津)은 강이나 하천에 위치한 나루터를 뜻한다. 나룻배는 진선(津船) 또는 도선(渡船)이라고 했다. 속초의 갯배는 일제강점기에 ‘도선’으로 나온다. 1960년대에도 청호동 갯배 선착장을 ‘오구도선장’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보면 갯배는 ‘속진(束津)’이라는 지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 속에 나오는 속초호(束草湖)와 속진호(束津湖)는 청초호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속진은 대포에서 북쪽으로 1리 거리라고 하는데, 사실은 10리 쯤 떨어져 있다.
갯배 운행과 관련된 기사 내용을 재정리해 보자. 1930년 속초 청초호 부근은 수천 평 이상의 모래땅으로 교통이 매우 불편했다. 양양군 도천면에서는 예전부터 이곳에 청초호를 건너는 도선을 운영해 왔다. 도선을 이용해 자동차는 물론 우마차도 실어 날랐다. 그러나 이곳은 수년 전부터 모래와 진흙이 쌓여 도선 통행에 큰 장애가 있었다.
신문 기사를 통해 1930년보다 훨씬 앞서 자동차와 우마차를 실어 나르는 도선이 속초 청초호 하구에서 운행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속초의 도선인 갯배는 언제부터 운행된 것일까?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또 다른 단초는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지도에서 찾을 수 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30년 7월 26일자 부산일보 5면 기사. 줄을 친 부분이 갯배(도선) 운행 관련 기사.
청호동 아바이마을과 속초시내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인 갯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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