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속초사람들은 명태로 먹고 살았다. 한겨울 칼바람에 깃발을 펄럭이며 찰랑찰랑 뱃전이 잠길 정도로 가득 명태를 실은 배가 부둣가에 명태를 풀어놓았다. 그러면 온 가족이 다 매달려 손을 꽁꽁 얼려가며 명태를 그물에서 떼어냈다. 배에서 팔려 리어커에 실려 할복장으로 옮겨온 명태에서 명란과 창난, 내장을 떼어낸 명태는 칡넝쿨로 아가미를 꿰어 고랑떼로 엮은 덕에 척척 올려 걸었다. 한겨울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면서 말라 마른명태인 북어가 탄생했다. 이러저리 명태를 가득 실고 다니는 리어커꾼도 일거리가 넘쳐 신이 났다. 한겨울 눈 속에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소리도 있었다. 이렇게 속초사람들은 명태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명태를 내다판 것만이 아니라 집에서도 명태를 먹으며 한 겨울을 났다. 한 겨울 속초 사람들의 식탁에는 온통 명태 음식으로 가득했다. 꾸덕꾸덕 말려 김장김치 속에 넣어 삭힌 명태살은 새꼼달콤한 맛에 밥상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젓가락이 가는 별미였다. 명태 아가미와 무를 썰어 넣어 만든 서거리깍두기와 밥통과 창자를 훑고 손질해 만든 창난젓, 좋은 알은 다 내다팔고 터진 알로 담근 명란젓도 겨울철 속초 사람들의 밥상을 지키는 단골 반찬이었다. 싱싱한 명태 몸체를 토막쳐 애와 곤지를 함께 넣고 오직 소금간만 해서 끓어낸 생태국도 식탁에서 빠지지 않았다. 물 좋은 명태는 내다팔고 잘렸거나 벌레 먹어 집에 가져온 파치는 손질해서 말렸다. 꾸덕하게 말려 코다리찜이나 조림으로 먹고, 바짝 말려서 손으로 일일이 찢어서 기름을 넣고 볶아서 도시락 반찬으로도 싸갔다.
명태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고 했다. 영양제 간유구의 원료가 되었던 명태애로 건빵을 튀겨 만든 ‘애건빵’은 가난한 시절 훌륭한 군것질거리였다. 칼국수를 끓일 때도 꾸덕하게 마른 명태나 빠짝 말려 채를 가른 명태살을 넣고 장을 풀어 끓여 먹었다. 명태장칼국수이다. 함경도 아바이들 음식문화로 내려온 통심이. 한겨울 명태 속에 소를 넣고 처마밑에 걸어 얼말려서 쪄낸 명태순대도 속초의 별미 음식이었다. 명태만큼 동해안 어부들의 일상 음식으로 많이 쓰인 물고기가 있었을까?
향토색 짙은 옛 시에도 명태 이야기가 나온다.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냄새를 맡는다 /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 까마득히 신라(新羅)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백석(1912~1995)이 쓴 함주시초(咸州詩抄) 연작시 첫편인 ‘북관(北關)’이다. 창난젓에 무를 썰어넣은 반찬. 일제강점기 때 함경도 함주에 머물면서 쓴 이 시에 나오는 창난젓 반찬이 속초지역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다. 바로 명태가 많이 나던 속초 지방에서도 창난이나 명태 아가미인 서거리에 무를 썰어넣고 삭혀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창난젓 깍두기라고 할 수 있다. 백석은 1930년대 말 함흥지방에 거주하면서 향토색 짙은 시를 몇 편 잘 남겼는데, 1938년에는 ‘멧새 소리’라는 제목으로 또 한편의 명태 시도 썼다.
처마끝에 明太를 말린다 / 明太는 꽁꽁 얼었다 / 明太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明太다 / 門턱에 꽁꽁 얼어서 /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명태는 서민의 음식이다. 한때는 우리나라 최대 어획 어종으로 가난한 서민들이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생선이었다. 이미 동해안에서도 자취를 감춘 명태지만 이렇게 옛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한국전쟁 후 가난한 삶을 명태와 소주로 달래는 내용을 담은 가곡 ‘명태’.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낸 몸은 없어질지라도”라는 노랫말처럼 가난한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국민 음식이었다. 고 오현명씨가 불러 유명해진 이 가곡은 한국전쟁 중에 1951년 시인 양명문씨의 시를 변훈이 작곡했는데, 1952년 바리톤 오현명씨가 부산극장에서 처음 불렀다.
명태는 대중가요 속에도 나온다. 가수 한대수는 1975년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고무신’에서 “바람아 불어라 불고 불고 또 불어라 / 우리 아버지 명태잡이 내일이면 돌아온다 / 아이고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 좋아 / 명태를 잡아오면 명태국도 많이 먹고 / 명태국이 나는 좋아 아이고 좋아 기분이 좋아 / 명태국을 먹고 나서 명태가 몇 마리 남는다면 / 나머지 명태를 팔아서 고무신을 사서 신고 / 저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촌색시 만나러 간다 아이고 좋아 기분이 좋아”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은 녹슨 철조망에 걸린 고무신이 불순하다고 발간 2주일만에 판매 중지되었다가 1980년대 말에 재발매되었다. 이미 이때는 명태가 서서히 우리 바다에서 사라질 때였다.
실향민의 슬픔을 노래한 ‘라구요’로 유명한 가수 강산에는 2002년 발간한 앨범에 실린 ‘명태’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 노래 되고 시가 되고 / 이야기 되고 안주 되고 / 내가 되고 니가 되고 /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 그대 너무 부드러워요 / 그대 너무 맛이 있어요 감사합니데이 / 내장은 창난젓 알은 명란젓 / 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 / 눈알은 구워서 술 안주하고 / 괴기는 국을 끓여먹고 /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명태 /그 기름으로는 또 약용으로 쓰인데이제이요 에이”라고 노래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명태 할복과 손질(사진 : 속초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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