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속초 관광, 양적성장에서 질적관광으로
2. 새로운 관광수요를 위한 트렌디한 콘텐츠의 개발
3. 도시재생에서 찾는 도시관광의 가능성
4. 지역을 닮은 관광, 사회적경제와 만나다
5. 인문관광으로 만나는 속초, 작은 서점 이야기
6. 지속가능한 실향민 문화를 위한 에코뮤지엄
7. 축제와 마이스(MICE)를 통한 관광산업의 재편
8. 특별좌담 : 4차혁명과 관광, 백년 후 속초를 위해
속초 관광은 실향민문화가 먹여 살린다. 주말이면 갯배를 타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선 관광객의 모습이 진풍경이다. 갯배 건너 청호동에는 오징어순대와 냉면, 순대국 가게가 즐비하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T map 빅데이터 분석결과 ‘속초관광수산시장’이 강원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은 시장현대화 사업과 함께 중소기업청의 시장활성화사업을 하면서 활성화의 기반을 다졌다. 그때 중요콘텐츠가 ‘실향민문화’였다. 주차장 입구에 시장과 실향민의 옛모습을 담은 전시관, 시장 안의 명태박물관, 속초사자놀음과 돈돌날이 공연이 바탕이 되었다. 갯배와 청호동으로 이어지는 연계관광도 시장의 관광상품성을 높일 수 있는 배경이다.
실향민문화는 지역민의 생활공동체에서 나왔다. 먹거리 중 가장 인기 있는 물회도 따지고 보면 어부들의 일상에서 나왔고, 어업문화가 이북 실향민의 대거유입으로 활성화되었다고 생각하면 지금 속초의 가장 뜨거운 관광아이템은 실향민 생활문화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향민문화의 원형을 문화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실향민문화축제’나 ‘갯배예술제’도 개최하고,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아트플랫폼 갯배’를 건립하는 등 실향민문화 콘텐츠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실향민문화가 속초의 대표브랜드로 전면에 나서기에는 부족하다. 미래관광콘텐츠의 확신도 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장소성의 약화를 말한다. 장소성이란 주민이 체험을 통해 애착을 느끼게 되고, 한 장소에 고유하면서 동시에 다른 장소와는 차별적인 특성을 일컫는 것이다. 많은 지자체가 매력적인 장소성을 개발하기 위해 잠재자원을 개발하거나 축제같은 가시적 이벤트로 인위적 조성을 한다. 하지만, 속초는 실향민문화촌이 청호동과 동떨어진 장소에 건립되어 무형의 가치에 대한 보존과 지속이라는 측면을 간과하게 되었다. 최근의 청호동 개발붐은 그 결과이다.
청호동의 공동체 기반이 위협받게 되자 아바이마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모임도 활동이 늘었다. 아사모(아바이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는 마을미술프로젝트로 탄생한 ‘아트플랫폼 갯배’를 거점으로 지역성을 간직한 문화활동을 기획한다. 최근 청호동주민자치위원회는 유정충 선장의 동상을 청호동 신수로 공원조성 부지로 옮겨와 새로운 가치 조명에 앞장선다. 이러한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은 의미 있다. 실향민문화촌 건립과 실향민 축제 등 관 주도 실향민문화콘텐츠 활용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청호동, 실향민문화 장소성 회복 중요
아사모 정성수 회장은 “실향민 1세대가 일군 삶의 터전이 점점 제 모습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향민문화축제 등 실향민 콘텐츠가 청호동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민 활동은 청호동을 실향민 문화의 의미가 발현된 상징적 ‘장소’로 인식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전쟁과 분단을 맨몸으로 겪으면서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청호동이라는 지역이 ‘장소’와 ‘기억’의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실향민 문화의 장소성이 약해지자 축제를 통한 인위적 장소성 부여도 시도되었다. 2016년 청호동에서 개최한 ‘실향민문화축제’는 실향민문화를 집대성하여 다른 향토문화축제와 차별화되는 축제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청호동이라는 장소, 이북5도민이 참여한다는 상징적 의미 외에는 축제의 지향이나 프로그램, 대중성에 있어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음식과 공연을 나열하는 프로그램 구성은 실향민 문화의 보존과 활용이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었다. 축제발전용역을 맡은 문화컨설팅 바라는 ‘미래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하자’라는 제언을 통해 실향민 문화의 미래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향민이라는 주제는 역사적, 사회적 특수성에 있어 명확한 특성을 보이고 있으나 단기간 이벤트성 축제프로그램에 의존하기보다 지속적으로 지역 내에 콘텐츠가 쌓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며 “특히, 실향의 주제를 실질적 문화소비자인 20~30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문학적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대안으로 미래적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국제평화마을 선포식’, ‘평화시계 제작’, 실향민 기록 프로젝트 ‘피스 마스크’, ‘삶의 기술, 생존기술 체험’같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청호동의 장소적 가치를 높이면서 실향민문화를 문화예술적으로 해석하고, 미래세대에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이다. 특히, 황폐한 청호동에서 삶의 터전을 일군 실향민 정착기는 생존기술이나 공유문화 등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지난해 지역문인의 청호동 소재 문학작품을 집대성한 <청호동에 가본 적이 있는지>의 원고를 쓴 김종헌 시인은 청호동의 어르신들 한분 한분의 구술을 통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속초 실향민의 집단 기억 속에 상징화 되어 있는 ‘기억의 장소’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코뮤지엄 방식, 주민참여 중요
실향민 문화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성공적인 방식은 축제만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앞서 문화컨설팅 바라가 제안했듯이 지역 내에 콘텐츠가 쌓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는 에코뮤지엄 방식도 필요하다. 에코뮤지엄은 지역 고유의 문화와 건축유산, 생활방식, 자연환경 등을 그대로 보존 계승하면서 이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독특한 형태의 박물관이다. 오하라 가즈오키는 에코뮤지엄의 중요한 구성요소를 “지역의 유산, 지역주민의 참여, 박물관 활동”으로 제시한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유물의 보존과 전시에 초점을 맞춘 박물관이 아니다. 지역민의 생활공간에 조성하여 쉽게 체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청호동의 경우 오징어할복장이나 덕장, 옛골목이 그렇다.
에코뮤지엄이 각광받는 이유는 콘텐츠의 보존과 개발이 주민참여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관광을 위한 재개발이나 랜드마크 만들기가 아니라 원주민의 삶을 존중하며 자산을 가꾸는 방식은 문화재생, 관광자치에 활용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진해 원도심 에코뮤지엄과 임실군 섬진강 에코뮤지엄이 만들어졌다. 경기도는 경기만 일대의 문화자원을 엮어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을 펼친다. 최근에는 인천의 시민들이 모여 인천의 중요 공간 5곳을 거점으로 ‘인천 에코뮤지엄 플랜’사업을 펼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청호동을 비롯한 속초 곳곳의 실향민 문화도 에코뮤지엄의 방식으로 보존되고 활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수복탑과 갯배, 음식문화와 사자놀음이 지역민 삶의 방식에서 출발하여 지역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자원임을 주목해야 한다. 속초시립박물관이 중핵박물관이 되고, 수산업 중심의 구 속초수협, 오징어 할복장 등 자연유산, 문화유산, 산업유산 등을 발굴 및 현지보존하고 재생을 통한 콜랙션 자원을 개발하여 위성박물관으로 구성한다. 이들 박물관의 주요 전시주제와 내용은 주민참여 기반의 관리로 운영되고 체험교육과 투어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이를 위한 속초에코뮤지엄 포럼을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실향민 문화는 과거의 향수나 오늘의 현실반영을 넘어 미래의 가치를 구현한 지역의 독특한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구 속초수협 내외부(전태극 작). 실향민과 수산업 등 속초의 문화적 자산을 발굴 개발하여 위성박물 3~4개를 에코뮤지엄의 방식으로 조성한다면 속초의 지속가능한 관광자원이 새로 만들어지게 된다. 그 시작은 문화와 관광, 도시재생의 협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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