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속초의 관광 중심은 설악산에서 신흥 콘도 밀집지와 바닷가, 항포구로 옮겨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활어난전과 횟집타운으로 인기를 끌던 대포항과 동명항, 횟집이 밀집한 장사항이 관광먹거리타운을 이뤘고, 콘도들이 밀집해 들어선 노학동 학사평 일대에는 30여 곳의 순두부집들이 들어서면서 순두부촌을 이뤘다. 당시 강원도를 대표하는 관광먹거리촌으로 속초에서 대포항과 학사평순두부촌이 손꼽혔다.
한편, 1990년대 택지로 개발된 청초지구에 100여개의 식당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교동먹거리촌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속초의 원도심지인 속초중앙시장과 시내 상권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가라앉았다.
계속된 악재, 생존 위기 버틴 음식업계
1990년대 하반기와 2000년대 상반기는 속초 음식점 상당수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절이었다.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1997년 IMF 외환위기, 2002년 태풍 루사의 피해까지 이어지면서 지역경기는 말이 아니었다. 웬만한 식당들도 경영이 어려워졌다. 여기에 2003년 속초에 이마트가 들어서면서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은 낭떠러지로 내몰렸다. 이마트는 재래시장과 동네 골목상권만 타격을 준 것이 아니었다. 이마트가 쇼핑을 나온 지역주민들의 외식장소로 큰 인기를 끌면서 지역 음식업계에도 큰 타격을 안겨줬다.
이런 상황에서 속초 음식업주 20명은 2004년 11월 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생존권 사수궐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5년 4월 21일 <강원일보> 기사에서는 “양양 산불 이후 주말 관광객도 줄어 지난해 200여개 업소가 문을 닫은데 이어 올해 50여개 업소가 추가로 폐업했다”며, 지역 음식업계가 생존의 위기 상황에 내몰렸음을 알렸다. 이 시기 영세상인들은 “IMF보다 더 혹독한 불경기”라고 입을 모았다.
2001년 영동고속도로 4차선 확장과 동해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과의 접근 고속도로망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 동해안 활어난전 시대를 처음 열었던 대포항은 오히려 큰 피해를 봐야했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상대적으로 서울과 교통망이 더 좋아진 주문진항의 급부상으로 대포항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이후 대포항 개발을 위한 매립공사가 본격화되면서 대포항의 활어난전은 임시부지로 쫓겨 가야 했다. 관광객들도 어수선한 공사장이 되어버린 대포항을 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이런 와중에도 기쁜 일이 있었다. 2000년 가을에 방송된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한,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는 드라마가 끝나도 그 여운이 식지 않았다. 가을동화에서 은서(송혜교 역)와 준서(송승환 역)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의 갯배, 어린 시절 은서가 가난한 생활을 보냈던 은서네집 촬영지, 백혈병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은서와 준서가 함께 해변에서 사진도 찍고 바다를 바라보던 아바이마을 백사장. 가을동화 촬영지 아바이마을과 갯배는 주말이면 온통 젊은 연인들로 가득했다. 한적했던 갯배도 어느 순간부터 10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탑승해야 했다.
남한에서는 유일한 실향민공동체인 아바이마을은 가을동화 테마여행지로 다시 태어났다. 설악산 관광이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지 못해 속초관광이 시들해지던 즈음이었다. 속초시내와 맞붙어 있으면서도 신기하게도 배를 손으로 끌고 수로를 넘나드는 갯배와 푸른 바다와 맑은 백사장까지 갖춘 아바이마을은 정말 매력적인 관광지였다.
아바이마을에 탐방객이 몰려들면서 함경도 실향민 음식이 크게 주목받았다. 함흥냉면과 오징어순대, 아바이순대, 아바이순대국, 가지미식해, 가리국밥 등 실향민음식이 소개되었으며, 아바이마을 단천식당과 다신식당, 김송순아마이젓갈 등이 맛집으로 주목받았다.
생선구이의 원조인 88생선구이, 물곰탕(곰치국)의 원조인 사돈집과 옥미식당도 주목을 받았다. 속초의 계절 별미인 양미리구이, 도루묵구이와 찌개 등도 축제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쇠락한 중앙시장 기적 같은 반전
새로운 테마여행지로 아바이마을이 부상한 반면, 인근 2백미터 떨어진 속초중앙시장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속초중앙시장은 6.25전쟁 이후 속초가 수복되자마자 형성된 유서 깊은 속초의 중심 시장이다. 1953년 피난민이 속초에 정착하던 시절, 1군단 공병단의 지원으로 논과 웅덩이를 메우고 상인들이 나서서 263개의 점포를 만들어 시장을 개설했다. 수십 년 간 전국에 이름을 알린 수산물·건어물 시장이다. 속초중앙시장은 1988년 상가건물을 신축했다. 그러나 새로 신축한 시장상가는 활성화되지 않고 정체되더니,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형마트에 상권을 빼앗겼다. 점포 507개 중 무려 60%가 휴폐업으로 문을 닫을 정도로 쇠락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시장 현대화사업이 진행되었다. 250대 규모의 주차장을 확보했고, 속초중앙시장에서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이름도 변경했다. 상가와 시장골목도 정비하고 비가림시설도 했다. 바다 전망 좋은 항포구 활어난전에 떠밀려 절반 이상 문을 닫고 천장에는 거미줄이 드리웠던 지하 활어회센터도 깔끔하게 새단장하고 관로를 개설해 깨끗한 바닷물을 끌어왔다. 중앙시장의 현대화사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2008년에는 전국 우수재래시장으로 선정되었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상권경쟁에서 밀리고, 풍광 좋은 바닷가에 들어선 가게들과 경쟁할 힘도 갖추지 못한 속초중앙시장.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개선했다고 해도, 관광객이 찾아주지 않으면 그냥 예산만 퍼붓고 사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적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반전은 시장현대화사업이 어느정도 마무리되던 2009년경 중앙시장 닭전골목 먹거리에서 시작되었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00년 11월 속초중앙시장 어시장 골목. 시장현대화사업 이전의 중앙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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