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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대포항 지키는 80대 중반 현역 어민 전창우 옹
“며칠씩 못 잡는 날도 있지만, 그만 둘 생각 없어요”
등록날짜 [ 2018년07월02일 15시38분 ]

오전 4시. 여든넷의 전창우 옹이 자신의 작은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서는 시간이다. 그의 새벽 바다행은 마치 습관처럼 굳어져 있어 날이 좋지 않은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 바다로 나간다. 자식들도 독립을 한 지가 한참 됐고 아내도 3년 전쯤 유명을 달리하여 더 이상 자신이 의무적으로 돌봐야 할 가족은 없다. 그리고 노후대책은 이미 마련돼 있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다로 나간다.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바다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그의 이력을 고려하면 그러한 습관이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스물아홉 때 전업 어부로 나서
양양 손양면 도화리 태생의 전창우 옹이 어부 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가 스물일곱이 되던 때였다. 그해에 그는 결혼을 했는데 그 이전에는 농사만 지었지만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바다로 나섰다. 농사는 농사대로, 고기잡이는 고기잡이대로 두 가지를 병행하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삶을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바다가 가까운 도화리 주민들 상당수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도화리 주민들은 마을에서 직접 목선을 만들어 어로생활을 했다.
농사는 쌀농사와 배농사를 주로 지었다. 그때는 사업적 목적으로 내다팔 농산물보다는 자신과 가족들이 먹고 살 것을 지은 게 대부분이었다. 전 옹은 혼자서 3,300제곱미터(1,000평) 정도 농사를 지었는데 이것만으로는 가족 건사를 하기에 부족하다 느껴 어업을 시작하게 됐다. 50~60년대에는 농업 기술이 부족해 비닐하우스나 농약이 없었고 김매기를 직접 일일이 손으로 해줘야 해서 일은 일대로 힘들고 산출은 많지 않았다. 같은 면적에서 요즘 산출량의 1/3 혹은 1/4 정도를 수확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 옹의 어업 병행은 선택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농반어의 삶을 살다가 전업 어부가 된 것은 스물아홉 때의 일이다. 1960년대만 해도 동해안에 어족 자원이 풍부해 어로 사업이 잘 됐는데 전 옹은 이에 자극을 받아 정치망 사업을 시작했다. 한곳에 그물을 쳐 놓고 고기 떼가 지나다가 걸리도록 해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인 정치망 어업은 당국의 허가 사항이었는데 마침 그때 자리가 나서 돈을 급하게 마련해 사업을 하게 됐다. 자신이 농사를 짓던 땅을 모두 처분했고 이걸로도 모자라 빚까지 내서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정치망 어업에서는 튼튼한 그물이 필요한데 포항까지 직접 가서 그물을 사왔고 배는 목선 세 척을 구비했다.
당시에는 크레인 같은 기계 장비가 없어 그물을 설치하거나 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이 대단히 고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일은 힘든 반면 사업은 쭉쭉 커나갔다. 그때는 동해에 물고기들이 넘쳐나서 어획량이 상당했다. 청어를 단번에 1,000~2,000kg이 아니라 2만kg까지 건져 올리기도 했다. 잡은 고기를 육지에다가 쌓아 놓았는데 다 판매하지 못해 처치가 곤란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30년 전까지도 냉동고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여름이면 고기가 금방 부패했기에 사료공장에다 공짜로 넘기기도 했다. 사료공장에서는 공짜로 주는데도 실어다 주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풍어인 경우가 많았다.

“고기 잡으러 나가는 게 재밌지요”
도화리를 떠나 대포항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가 마흔넷 되던 1970년대 말이었다. 당시 도화리에 인접한 곳에 항구가 없어서 어로 작업이 불편했기에 대포항으로 옮긴 것이다. 지금은 도화리 옆 수산리에 항구가 생겼는데 수산항이 더 빨리 만들어졌다면 그는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어업 환경이 많이 변했다. 전 옹이 보기에 바다의 물고기 개체 수가 1/3쯤으로 감소됐고 출하되는 어족의 종류도 달라졌다. 인근 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어류인 오징어가 확연히 줄었고 예전에는 게가 없었지만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어류가 되어 축제도 개최되고 있다. 그리고 어로 작업에 있어서는 목선이 사라지고 기계장비가 발달해 예전보다 조업이 편해졌으며 정치망 어업은 남아 있는 게 얼마 안 된다.
전 옹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년 전이다. 그때부터 동해바다에 물고기가 줄었고 어망 가격은 치솟았다. 어망은 석유의 부산물로 만드는데 석유 가격이 오르면서 어망의 가격도 자꾸 올라 90년대 말쯤에는 사업에 큰 부담을 주는 정도가 됐다. 그렇게 내리막길을 걷다가 몇 해가 지난 2000년대 중반에 사업을 정리하고 작은 배 한 척만 남겼다. 그때 그의 나이가 70을 갓 넘긴 시점이었다.
전 옹은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혼자서 배를 몰며 고기를 잡고 있다. 고기를 아예 못 잡는 날이 며칠씩 계속 될 때가 있지만 그는 그만둘 생각이 없다. 고기를 많이 잡는 날에는 그 무게가 10kg 정도 되며 요즘은 도루묵, 문어 등을 주로 잡는다.
굳이 일할 필요가 없는데 왜 매일 바다에 나가냐고 묻자 전옹은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게 재밌지요”라고 말하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인생에서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요. 그저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거죠.” 이렇게 말하는 80대 어부의 표정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새벽 바다행이 계속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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