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뒤지면 1980년 초반 속초 모습을 보여주는 두 개의 영상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영상자료원에서 제공하는 한국고전영화 중 1981년 김수용 감독, 김혜자와 정동환 주연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만추>. 영화 속에서 속초항과 갯배, 아바이마을, 속초등대, 설악파크호텔과 설악산이 나온다. 갯배와 구 제일극장 사이 좁은 부둣가로 식당들이 들어서 있고, 고래회집, 설악산추어탕, 구구식당(?) 간판이 보인다.
다른 영상은 1982년 1월 22일 제작한 대한뉴스 제1368호 <길따라 풍물따라>. 영상에는 낙산사와 설악산 여행을 소개하면서 설악의 별미로 대포항의 활어회와 상도문의 도토리묵을 소개했다. ‘삼해장 여관·식당’ 간판이 보이는 대포항 전경과 관광객들이 활어회에 소주를 기울이는 횟집 실내 장면을 보여주면서 동해에서 잡히는 싱싱한 해산물이 이 고장의 자랑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같은 영상에서는 상도문 새마을협동공장에서 마을 부녀자들이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설악산 도토리묵을 인기 특산물로 소개했다. 영상에서는 설악산 소공원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탐방객들이 도토리묵을 먹는 장면도 나온다.
두 영상을 통해 보면 1980년대 초반 당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은 설악산 소공원과 신단지, 대포항, 속초항 근처에 집중되어 있었다.
1981년 언론보도를 보면 속초시는 지역 토산음식을 정해 육성하고 있었다. 속초의 토산음식으로 오징어순대와 물회, 회국수, 도치볶음, 표고버섯덮밥, 산채비빔밥, 막국수, 도토리국수 등이다. 지금에 비하면 빈약한 먹거리 메뉴지만, 행정에서 처음 관광먹거리를 육성하기 시작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1980년대 들어 단순한 볼거리 관광에서 먹거리 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여행정보로 지역 특산 먹거리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주목받은 속초 관광먹거리 1호가 ‘오징어순대’이다. 1970년대 말부터 속초 오징어순대가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1980년대에는 여러 언론과 입소문을 타고 속초의 별미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중앙일보 장창영 속초 주재기자는 1980년 8월 1일 기사에서 오징어순대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〇값싸고 영양많은 오징어순대 등장
오징어의 고장 속초항에 토속식품의 하나로 새로 개발한 오징어순대가 등장, 맛을 즐기는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속초시 중앙동 극동극장 옆 「삼영집」(주인 이옥선·54)에서 개발한 오징어순대는 값싼 대중식품이면서도 고단백 영양식으로 평가, 미식가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1980년 8월 1일 중앙일보 5면>
속초 사람들이 즐겨 해먹던 오징어순대는 누가 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식당에서 처음 만들어 팔기 시작한 집이 삼영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삼영집은 이후 무슨 이유인지 사라지고 다른 집들이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오징어순대가 속초의 별미로 알려진 데는 별미기행가로 잘 알려진 백파 홍성유의 극성어린 칭찬도 큰 몫을 했다.
〇속초 오징어순대
대포의 오징어물회와 함께 오징어 미각의 쌍벽을 이루는 것에 오징어순대가 있다.… 오징어순대의 원조는 역시 삼영식당(주인 최극성)일 것이다. 속초시 금호동 흔히 얼음공장 골목이라 하는 골목 안에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아담한 집이다.… 그 모양이 흡사 돼지순대 같대서 오징어순대란 이름이 붙었지만, 돼지순대에 비길 수 없는 사치스런 맛이다. 따뜻한 것이 입안에 슬슬 녹는다. 술안주로도 그만이지만 어린이의 간식이 될만한 각별한 맛이다. 게다가 주인네들의 인심이 어찌나 후한지 이편이 미안할 지경이다.…
<1986년 8월 3일 조선일보 6면 ‘백파(伯坡)의 별미여행’>
이 당시 설악산 별미로는 표고버섯덮밥을 비롯해 송이장아찌, 당귀차, 잣죽, 솔떡 등이 소개되었다.
〇표고버섯덮밥
[설악산] 풍기 좋기로 이름난 이곳은 특산물도 갖가지다. 스님들이 즐기는 송이장아찌는 나른한 몸을 일깨워준다. 장아찌라고 해서 따로 파는 것이 아니라 고급여관이나 식당을 찾으면 반찬으로 나온다. 귀한 음식이라서 아무데서나 볼 수는 없다.
표고로 만든 덮밥도 별미. 더글더글 볶아 카레라이스처럼 해먹는다. 한 그릇에 2천원. 설악동 신단지에 있는 동해회관이나 해바라기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별미로는 단기차를 빼놓을 수 없다. 단기(당귀)잎에서 우러나는 흙냄새 같은 향기가 마실 때는 껄껄하지만 토속미가 있어 좋다. 조그마한 그릇의 잣죽은 한 그릇에 5백원. 솔잎으로 만든 솔떡은 한 개 3백원씩 한다. 백설기만큼의 크기에 갓 돋은 솔잎을 듬성듬성 넣어 만든다. 봄미각으로 제격이다.
<1982년 3월 26일자 동아일보 7면 ‘여로의 미각(하), 무르익는 봄, 동해의 풍미’>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81년 김혜자와 정동환 주연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만추”의 한 장면. 갯배와 구 제일극장 사이 부둣가에 식당들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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