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전라도 시골마을 풍월리는 아직도 초가집이 남아있다.
눈을 감고 흥얼거리며 햇살아래 앉아 있기만 해도 잠자리처럼 날아가는 곳.
친정엄마의 처녀시절이 물들어 있고, 외할아버지께서 98세의 나이로 홀로 숨을 거두셨고, 일흔 넷의 친정엄마가 마지막으로 주무셨던 곳.
지금은 근처에 살고 있는 외삼촌의 수고로 볏짚지붕이 아닌 함석지붕을 얹어 놓았지만 여전히 향수를 불러내는 그리움의 공간 초가집.
이제 그 집도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1970년대 속초는 한창 새마을운동이 퍼지면서 초가집을 헐고 시멘트 벽돌집이 유행처럼 지어 졌었다.
4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처음 속초 땅에 발을 디딘 나는 유년기를 바닷가 공터에 만들어 놓은 둥근 하수도 배관통을 타고 놀았고, 바로 근처에 벽돌공장이 있어 남자들이 삽으로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네모진 틀에다 찍어내는 촉촉한 벽돌을 신기해하며 쳐다보기도 했다.
우리집은 벽돌에 골탕지붕을 올린 노동자의 향기가 있었고, 경찰서에 다니는 아버지를 둔 친구의 집은 돈 향기가 물씬한 기와집이었다.
어린 나에게 집은, 경제력을 판단하는 척도였고, 그래서 그리움이거나 편안함이라는 단어로 마음을 쉬게 하는 초가집의 등장은 어린 나를 흔들어 놓았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시골마을에 처음 내렸던 그 순간의 설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밤새 내린 눈을 고스란히 지붕에 얹은 채, 쏟아지는 햇살 이고 반짝 반짝 춤을 추던 시골 초가집.
솔거지 타는 냄새가 연기와 속삭이며 하늘로 오르고, 외할아버지 기침소리가 메아리 되어 내 귓가에 들리는 듯, 눈 속에 파묻힌 초가집이 한 눈에 들어오던 그림 같은 나의 고향!
봄이 오면 지붕에 머물렀던 한기가 떠나면서 짙은 짚 내음을 온 시골마을에 뿌리고, 여름 되면 갈라진 흙벽 새로 된장 끓는 소리를 들려주며, 가을이 오기도 전에 겨울을 기다리며, 묵은 볏짚을 햇볕에 말리는 수고로 고단했던 초가집.
4년 전 먼저 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눈을 감고 가보는 시골 초가집은, 사는 내내 나에게는 아픔이자 쉼터였고, 그리움이며 노래였다.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견고함보다, 외적 아름다움보다, 늘 마음의 소리로 내 인생을 행복하게 성장시켜 준 고향의 초가집에 나의 길을 물어보게 된다.
풍월리는 세월도 비껴간 듯 아직도 초가집을 안아주고 있으니 나도 변치 않은 한 가지 정도는 안아주고 가리라.
이명숙
속초여고총동창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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