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속초 관광, 양적성장에서 질적관광으로
2. 새로운 관광수요를 위한 트렌디한 콘텐츠의 개발
3. 도시재생에서 찾는 도시관광의
가능성
4. 지역을 닮은 관광, 사회적경제와 만나다
5. 인문관광으로 만나는 속초,
작은 서점 이야기
6. 지속가능한 실향민 문화를 위한
에코뮤지엄
7. 축제와 마이스(MICE)를 통한
관광산업의 재편
8. 특별좌담 : 4차혁명과 관광,
백년 후 속초를 위해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터미널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게스트하우스가 생기더니 서점과 술집 등 매력적인 공간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서점 겸 게스트하우스 ‘완벽한 나날’이다. 시간의 내력이 차곡차곡 쌓인듯한 터미널 뒤편에 불현 듯 나타난 복합문화공간이다. 운영자의 애정이 묻어나는 서적 큐레이션, 한 달에 한번 정도 열리는 북콘서트, 드문드문 반가운 소식 들려주는 전시회로 속초문화에 풍성함을 더했다.
최근에는 그 골목에 ‘동명동 별장’과 ‘백수씨 심야식당’이 들어섰다. ‘동명동 별장’은 상업공간이 아니라 사적인 ‘별장’이다. 가족이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뿐이다. 오래된 주택의 골조와 느낌은 그대로 두고, 주인장의 취향이 곳곳에 묻어나도록 꾸미고 있다. 혼자서 느릿느릿 조성하는 개인공간이지만 만듦새가 심상치 않다. 손 때 묻은 낡은 공간에 예술적인 감각이 더해지면서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옆으로 50미터 정도 걸어가면 ‘백수씨 심야식당’의 간판을 만날 수 있다. 나무간판에 희미하게 적혀있는 가게 이름이 무심하게 느껴진다. 6월에 문을 열었다는데 흔한 현수막 하나 붙이지 않았다. 이웃집과 함께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전의 매력이 있다. 목욕탕 타일이라고 부르는 촌스러운 색감의 타일과 고급스러운 키엔호 타일의 조화, 불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오픈 주방, 빈티지한 소품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오래된 주택을 최소한으로 개조하면서 고유의 인테리어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버려진 골목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반전 매력의 공간은 젊은층의 사랑을 받으며 골목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의 홍대에서 시작하여 연남동, 문래동을 거쳐 최근에는 익선동과 을지로가 그렇다. 저렴한 임차료와 편리한 교통을 찾는 젊은 예술가들이 쇠락한 상업공간을 재발견하면서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넛지효과’로 설명하기도 한다.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사전적 의미의 넛지 효과는 강제적 규제나 감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할 때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변화가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행정이 주도하는 전면 재개발 형식의 구도심 변화보다 주민중심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공동체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때 주민의 삶과 지역이 함께 발전하는 도시재생이 이뤄진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살아나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문화적 재생으로 도시관광의 활력을
지난 2017년 한국관광공사의 봄 여행주간은 도시재생의 현장을 새로운 관광콘텐츠로 제안했다. 대상 지역은 모두 문화적 도시재생을 한 곳이다. 광명 업사이클아트센터, 담양 담빛예술창고, 삼례 문화예술촌, 청주 동부창고, 부산 또따또가, 대구 북성로, 광주 양림동, 대전 원도심, 인천 배다리, 제주 원도심, 충남 부여, 경북 안동, 경남 통영, 강원 묵호, 서울 필동 등 대표적인 문화재생 시설과 문화적 도시재생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연구자, 전문가, 예술가 등과 함께 해설을 듣고 도시 재발견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부산의 ‘작가와 함께 하는 또각또각 예술투어’는 중앙동 유휴건물을 예술가 입주프로그램을 통해 재생에 성공한 사례를 체험했다. 대구의 ‘북성로의 시간여행’은 근대건축자산을 활용한 리노베이션과 기술장인들과의 콜라보를 통한 기술생태계 재생사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시연구자가 함께 했다. 인천은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배다리마을의 도시재생 사례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강원도 사례도 있다.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집과 골목에 역사와 추억이 벽화로 그려진 묵호항 논골마을이 관광콘텐츠로 재발견된 것이다.
부여군은 1500년 동안 쌓여온 부여의 역사를 시인의 시와 함께 읽어가며 시인의 시세계를 통해 부여를 재발견하게 되는 여행코스를 만들었다. 전북 완주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역사가 담긴 양곡창고를 예술공간으로 바꾼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삼례의 미학을 만들었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군은 폐산업시설을 ‘담빛예술창고’로 만들어 문화가 살아있는 휴식공간이자 예술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문화적 재생의 역효과도 있다. 서울 북촌한옥마을,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 새로운 도시재생의 결과로 주목받는 낙원상가 등이 그렇다.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은 관광객의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면서 대책을 호소했다. 이화마을의 일부 주민은 벽화를 지웠다. 맥락이 없는 스토리텔링을 지속가능에 대한 고민없이 ‘벽화’로 보여주는 재생, 가난마저 상품화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포기한 인천의 ‘옛 생활체험관’ 설치시도도 역효과의 하나이다. 관광효과 사례만 보면서 재생의 탈을 쓴 신개발주의 욕망이 도시재생의 이름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주민참여·장소가치 발견 관점 필요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도시재생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인구가 감소하고,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쇠락하게 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전면 철거를 통한 재개발 방식에서 ‘유지, 관리 위주’로의 전환, 공공과 주민의 갈등을 최소화하여 도시를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특히, 구도심의 경우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자산을 보유하여 생활사적 가치와 아날로그 정서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재생의 효과가 도시관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앞서 관광공사의 프로그램이 그런 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도시재생 사업의 효과를 제고하고 도시 활성화의 궁극적 실현을 위해 도시관광사업의 효율적 추진방안을 모색하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에 발간된 <도시재생 추진에 따른 도시관광 정책 방안연구>(김향자/한국문화관광연구원)가 대표적이다. 도시재생이 지역활성화를 위한 계획을 만들다보니 관광관련 사업이 다수이기 때문에 단계별 추진과제와 부처별 협력방안을 제시하여 정책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속초도 올해 도시재생사업 용역에 들어갔다. 지난 몇 년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구 속초수협’도 해당된다. 이곳은 도시재생과 도시관광이 중첩되는 곳이며 수산업도시 속초의 역사문화 장소이기도 하다. 시 행정조직의 경우 교육문화체육과, 건축디자인과, 관광과가 협력하여 정책의 성과와 관리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각의 변화도 필요하다. 도시재생을 개발 중심의 하드웨어적 관점에서 주민과 장소성의 발견이라는 휴먼웨어와 소프트웨어적 관점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장소의 자본가치 상승이나 자본만능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시 만들어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산물을 분별하고 도시공동체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의 통합적 관리능력, 주민의 주도적 참여방안 마련, 장소적 가치의 발견이 어우러진 도시재생은 도시의 활력을 일으키고 도시관광으로 이어질 것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이 변하고 있다. 서점 겸 게스트하우 ‘완벽한 날들’, 선술집 ‘백수씨의 심야식당’>, 개인 공간 ‘동명동 별장’은 낡은 주택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골목길 재생의 전형을 보여준다.
버려진 양곡창고에서 예술창고로 변한 담양의 ‘담빛예술창고’. 330㎡ 규모로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선 담빛예술창고는 본래 1960년대 지어진 붉은색 양곡창고였다. 버려진 창고가 정부의 ‘폐산업 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담양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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