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교동 ‘58년 감자탕’의 간판에는 아래쪽에 작게 ‘싼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국 음식인 감자탕과 ‘싼티아고’라는 낯선 이국 지명이 무슨 관계인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게의 대표 김춘식 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간판에 그런 글귀가 적힌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에 세 번이나 여행을 다녀왔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뜻이다. 유럽의 각지에서 가톨릭의 성인인 성 야고보(Saint Jacques)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가는 순례길을 일컫는다. 요즘은 이 길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명 관광코스로 알려져 있다. 김춘식 대표도 천주교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입교를 한 사람은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길’, ‘은의 길’, ‘북쪽 길’, ‘포르투갈 길’이 유명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이 중 김 대표는 ‘프랑스 길’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프랑스 길은 프랑스 남부 국경 지역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800km를 걸어서 가는 길이다.
15kg 배낭 메고 매일 20km 이상 걸어
김 대표의 산티아고 순례는 그 첫 회가 2013년이었고, 두 번째는 2015년, 세 번째는 올해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였다.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가 50대 중반이었는데 김 대표는 어느덧 환갑의 나이가 됐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순례는 속초 대승당약국 김영인 약사와 달랑 두 명이서 함께했고, 세 번째 도보여행은 김 약사와 그의 아들, 그리고 김 대표 자신의 딸, 꽃집 ‘화사랑’ 김영상 대표까지 5명이 ‘킴화이브’라는 팀을 이뤄 다녀왔다.
프랑스 길은 한 번 걷는 데 보통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루에 최소 20km 이상을 걷고 도중에 숙소가 없는 구간을 지날 때에는 60km를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사람이 한 시간에 4km 정도를 걷기에 식사 시간, 휴식 시간을 고려하면 한 달 동안 아주 징글징글하게 걷는 것이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걸어서 가며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동안 밀밭, 보리밭, 포도밭 등의 멋진 들판이 펼쳐진다. 그러나 여행은 낭만으로만 가득하지 않았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죽을 뻔했었죠. 첫 번째 여행 때 프랑스 국경 지역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는 첫날에 있었던 일이에요.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도보에 나섰는데 그날 갑자기 우박과 폭우가 쏟아졌죠. 그 지역에서 30년 만의 이상 기후로 통행 통제가 된 날이었어요. 산인데도 축구 경기장처럼 잔디밭만 이어지고 몸을 피할 데도 없었죠. 오지라 구조가 힘들고 이제 죽었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차가 나타나 겨우 살았어요.”
여행에서 고통스러운 기억은 이외에도 많다. 걷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고통이었다.
“발바닥이 땅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죠. 배낭 무게가 15kg인데다가 매일 20km 이상 걸으니 발바닥이 너무 아팠어요.”
“마음은 지금도 그 길 걷고 있어”
그러나 그 순례에서는 이런 고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길은 정말이지 매일 걷고 싶은 길이에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요. 일주일 동안 밀밭과 보리밭만 보다가 어떤 지역에선 포도밭이나 유채꽃밭을 며칠 동안 계속 보기도 했죠. 그 풍경들이 근사한 그림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도 제가 걷게 하는 힘이 됐죠. 힘든 길을 걷기에 사람들의 심성이 다 비슷해지더군요. 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에서 서로 마주칠 때마다 미소 짓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전 세계의 순례자들과 얘기를 하면 고통을 금세 내려놓을 수가 있죠. 술도 마시고 음식도 함께 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꿈만 같네요.”
김 대표는 아직도 꿈에 젖어 있는 듯했다.
“가족들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제 마음은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네요. 올해 함께 그 길을 걸어본 제 딸의 마음도 마찬가지랍니다. 아마도 직접 걸어본 사람들만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김 대표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다녀 온 이후 인생에 큰 활력을 얻었다. 즐거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매사에 용기 있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리고 도보순례 이후 김 대표는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던 소상공인의 권익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현재 김 대표는 한국외식산업협회 강원지회를 이끌고 있다. 여행이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 것이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은 포부를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길이 없을까요? 도시와 도시 사이를 며칠 동안 계속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네요. 우선 우리 지역에서 홍천까지 걷는 길을 개척해보자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 번이나 다녀온 속초 교동 ‘58년 감자탕’ 김춘식 대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과 포즈를 취한 김 대표. 그의 등에 커다란 짐이 보인다.
‘58년 감자탕’의 간판과 복도. 복도에는 여행의 추억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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