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음식점 역사 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요릿집. 속초항이 개발되면서 덩달아 이 요릿집과 주점들이 성황을 이뤘다. 속초를 비롯한 양양의 바닷가 경기에 따라 요정 경기도 부침이 심했다. 1938년 3월 16일 <동아일보>에는 양양 대포와 속초 등에 전대미문의 청어 풍어로 요리집과 색주가들만 살고 난다며, 주야를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장구 소리와 아가씨들의 가냘픈 노래가 그야말로 ‘별건곤’이라고 했다. 그러나 3개월 후인 6월 19일자 같은 <동아일보>에서는 물가는 폭등하고 춘궁기를 맞아 양양의 요정들도 극히 한산하고 현상유지도 곤란한 형편이라고도 했다.
당시 주점은 몇 개가 들어섰는지 알 수 없지만, 1935년 10월 19일 <조선중앙일보>가 속초항의 발전상을 적은 기사에서 지난 2년간 속초항은 7백여호가 늘어났는데, 술집 작부도 40여명이나 된다고 했다.
속초항 한성관 기생 얼굴 실어 신문광고
요릿집은 당시 지역소개 신문 하단에 광고도 개재했다. 1938년 <동아일보> 양양 특집판 하단에는 양양읍 명월관, 속초항 한성관이 기생의 얼굴을 실어 광고를 올렸다. 1940년 5월 4일 <조선일보> 속초특집판에는 조선고등요리 한성관 사진과 전화번호도 게재되었다. 이 요릿집은 해방 후에도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유흥주점은 계속 이어져 왔으며, 일부는 한정식집으로 바뀌기도 했다.
불행히도 요릿집은 안 좋은 기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4.19혁명 이후 속초의 수산업계도 혁신의 바람이 불었다. 어민의 대표기구인 어업조합이 특권층 행세를 한다고 비판하는 신문기사가 1961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기사에서는 “기생을 끼고 술먹는 놈은 어조원뿐이라고 어민들이 비난한다”고 하고, “속초어조의 경리는 접대비 투성이로 금강원(金剛園)이라는 음식점 한 군데만도 삼백만환의 외상을 받아낼 것 같지 않다고 점주가 하소연한다”고 보도했다.
수복 후에 속초에는 어떤 음식점들이 들어섰을까? 양양군에서 발간한 1955년 <군세일람>에 따르면 당시 속초시에 카바레 1, 한식당 9, 중식당 1, 다방 5, 병과점 1, 중국빵 2, 주점 10곳이 있었다.
1959년 속초읍의 현황을 보여주는 <읍세열람>에는 요리업 8, 식당 23, 다방 1, 제과점 5, 제빙점 4 등이 접객시설로 기록되어 있다. 1963년판 제1회 속초통계연보에는 카바레 1, 한국식 요리업 13, 중국식 요리업 1, 식당업으로 한식당 39, 중식당 8, 다방 5, 주점 58, 제과점 6 등이 접객업소로 기록되어 있다.
1950년대 대표적인 음식점으로는 다방과 국수집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국 전쟁 중에 수복된 속초시는 젊은 군인들로 넘쳐나는 지역이었다. 당시 속초와 양양 수복 지역에서 일간지로 발행되었던 <동해일보> 1954년 신문에는 다방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54년 7월 7일자 <동해일보>에는 군 치안대 보안계에서 속초와 양양의 다방 찻값을 조정해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신문 하단에는 속초 1구 다방 ‘칼멘’과 쿠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방 ‘미완성’의 광고가 실렸다. 광고에는 속초의 식당 한 곳도 실렸다. 속초에 있는 ‘군인회관’으로 대중식사와 각종요리를 취급한다고 광고했다. 이들 상호는 수복 속초에 들어선 최초의 식당들이다.
수복지역 속초읍에는 다방들이 많이 들어섰다. 1953년 초반에는 대중가수 고복수와 황금심 부부가 운영하는 ‘고향다방’도 있었다. 1955년 9월 19일자 <경향신문>에는 속초읍 계장과 군경원호회 간부가 속초읍내 ‘칠성다방’에서 군경원회비를 걷으려다가 시비가 붙어, 다방주인이 군경원호회 간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보도됐다.
하루 끼니 연명하는 10원 어치 국수
궁핍한 피난민들이 정착한 속초에서 요릿집과 다방은 특별한 사람들의 음식문화였다. 오히려 일반 서민들에게는 ‘면옥’이라는 상호의 국수집이 대표적인 음식점이었다.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인 함흥냉면옥은 1951년 속초에서 처음 개업을 했다. 1955년 5월 4일자 <동아일보> 3면에는 위조지폐단 3명이 속초의 ‘풍미면옥’에서 검거되었다고 보도됐다.
1958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 3면 기획르뽀 ‘동태(凍太) 경기의 속초’에서 기자는 당시 속초를 술집과 여관, 판자집, 소주와 탁주, 생선, 돼지고기, 불고기를 들어서 표현했다. 반대로 1962년에는 오징어 어황이 부진해 많은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고구마 몇 개와 국수로 연명하고 있다는 기사도 확인된다. 1962년 10월 2일자 <경향신문> 6면에는 ‘오징어떼를 쫓는 동해의 명암’이라는 기사로 오징어풍어를 맞아 대성황을 이루는 강구항과 오징어잡이 철임에도 7,8년만의 흉어로 절량사태를 빚는 속초항의 풍경을 대조시켰다.
속초읍 3구 32반 B지구는 사람하나 살지 않던 산골짝이 마루턱으로 나무막대기로 떠받치고 풀을 베어 지붕을 덮고 땅을 파서 만든 움막집을 짓고 24가구가 들어와 모여 살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도 오징어가 안 잡히자 집집마다 식량이 다 떨어졌다. 이런 움막집도 부러운 노숙자들도 다수 있다. 속초에 몰려든 사람 중 일부는 집도 구하지 못하고 거적을 깔고 처자식과 함께 밖에서 노숙하며 생활하고 있다. 성묘객들에게 음식을 구걸해 먹기도 하고. 그들은 하루에 국수 10원어치나 고구마 몇 개로 연명하고 있다.
하루 끼니 연명하는 10원 어치 국수. 1962년 흉어기 속초의 비참한 참상을 보여주는 음식이다. 1959년 속초의 <읍세열람>을 보면 당시 속초에는 제분업소가 6개, 제면업소가 15개나 있었다. 동네 곳곳에 국수를 뽑는 집이 있었다. 같은 자료에는 속초의 구호양곡 배급 기록도 나와 있다. 1957년 10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총 4천여명에게 밀가루와 옥수수가루, 소백과 호맥, 정맥 등 39톤의 구호양곡이 배급되었다. 속초시 전체 7,029세대의 26%인 1,857세대가 요구호대상자로 기록되어 있다. 수복 후 속초는 한편에서는 요릿집과 다방이, 또 한편에서는 밀가루를 비롯한 구호양곡과 값싼 국수가 있었다. 빈부의 음식문화가 함께 공존하였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랑동 내 대흥면옥. 수복 속초에는 요릿집도 있었지만 일반서민들이 즐겨먹던 국수집이 많았다. 사진은 “옛 사진으로 보는 속초(속초시, 속초문화원 발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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