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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음식생활사<8>
우리 지역에 음식점은 언제 등장했나?
등록날짜 [ 2018년05월14일 14시59분 ]

속초에는 언제 음식점이 생겨났을까? 옛날에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갯길에 주막이 있어 나그네들이 숙박과 끼니를 해결했다. 양양의 구룡령 옛길, 고성의 대간령 고갯길에는 옛 주막터가 남아있다. 걸어서 고개를 넘어가던 아득한 옛 시절의 이야기이다. 1900년대 들어 근대적인 교통수단이 생겨나면서 원거리 여행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우리지역에도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속초에 처음으로 음식점이 확인되는 시기는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2월부터 부산에서 원산까지 가는 연안기선이 거쳐 가면서 대포항에 여관과 음식점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917년 10월 14일자 <부산일보> 3면에 실린 강원도발섭기(江原道跋涉記) ‘대포항’편 기사를 통해 보면, 대포항에는 관공서로 주재소와 우편소 각각 한 곳씩 있었다. 그리고 조운점 1, 잡화점 3, 여관 1, 요리옥 1, 대공 2, 석공 1, 어업 종사자 약 50명이 있었다. 요리옥 1은 기록으로 확인되는 속초 최초의 음식점인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상호조차 알 수가 없다.

요리옥·여관 대포항에 먼저 들어서
당시 요릿집만 들어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포항에 일반 음식점도 들어섰을 것이다. 요정 또는 요릿집으로 불린 요리옥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등장한 유흥음식점으로 술과 음식을 판매하고 기생을 두고 가무(歌舞)를 행할 수 있는 갑종(1급) 조선요릿집이다.
요리옥은 1880년대 제물포 개항 이후 일본인 거주지가 생기면서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섰으며, 1900년대 들어 서울에서 크게 성업했다. 조선요리옥은 일본요리옥에 자극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1903년 안순환이 조선요리옥의 대명사인 명월관을 개업했다. 1920년대에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일본요리옥, 조선요리옥, 청요리옥이 자리 잡았다.
음식점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1925년 7월 24일자 <부산일보> 강원도판 특집기사에 실렸다. 말만 강원도판 특집이지, 기사의 대부분이 양양군 소개 내용이다. 기사에는 특별히 양양군내 관공서 목록을 게재했는데, 그 뒷부분에 “여관 2, 요리점 2, 이발업 3, 자동차회사 2, 시장 2”이라고 게재했다. 이를 보면, 당시 양양에는 요리옥이 2개가 있었다. 같은 지면 하단 광고에는 대포항에서 여관을 하는 김두순(金斗淳), 김영수(金永守)의 이름이 게재되었다. 두 사람 모두 해산물상을 겸업했다.
 요리옥과 여관은 속초지역에서는 기항지였던 대포항에 먼저 들어섰다. 그리고 속초항에는  속초항 개발로 인구가 급증하고 수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933년 10월 19일자와 12월 7일자 <부산일보> 기사를 보면, 속초항에 일본인이 땅 2백평을 사서 60평 규모의 건물을 지어 10여실 객실 규모의 ‘속초관’을 개업했다고 보도했다. 이전에는 대포항에 여관이 있었으나 속초항을 찾아오는 외래객은 거리가 멀어 크게 불편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기사에서는 속초항 호수입구를 당초 3미터 준설하려 했으나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1미터를 늘려 4미터로 준설하기로 했는데, 속초항 개발로 인해 인근 땅값이 갑자기 폭등했다고 보도했다.
1930년대 양양군에도 냉면집이 있었다. 1930년 11월 18일자 <매일신보> 3면에는 양양경찰서 위생계에서 식육판매업자들을 소집해 가격인하를 명령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냉면가에서 자발적으로 냉면 한그릇에 5전씩 인하하여 10전씩 판매하였으나 일반인들은 냉면의 양이 줄어든 것은 아닌지 주목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냉면집은 이미 구한말에도 서울 등 도시에서 즐겨먹던 외식이었다. 이때는 함흥냉면이라고는 없었고 오직 평양냉면만 있던 시절이다.
양양에서는 오색리 약수터가 효험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1920년대에 벌써 인근에 식당가가 형성되었다. 1928년 9월 9일자 <동아일보> 4면에는 오색리 음식점 영업자 측에서 약수보존회를 조직하고 구장인 홍재윤(洪在允)씨 주관으로 약수부근에 제반 설비를 신축하고 낙성을 축하하기 위해 백중회를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앞서 1925년 7월 24일자 <부산일보> 4면 양양특집판에서는 오색리 약수터는 17가구가 사는 한촌(寒村)이지만, 예로부터 약수의 이름이 높아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며칠씩 묵고 간다고 했다. 이를 보면 오색약수터가 우리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음식 숙박단지로 자리잡은 곳이 아닌가 싶다.
 
비빔밥 15전·만두 20전·갈비 5전
당시 우리지역 음식점에서는 어떤 메뉴의 음식을 팔았을까? 지역에서는 이를 확인해 줄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대신 인근 강릉지역의 신문기사를 통해 양양의 음식점들은 어떤 음식을 팔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1930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에는 “강릉 물가도 일률적으로 감하(減下)”라는 제목으로 음식점 판매음식과 가격정보가 실렸다. 당시 경찰에서 강릉읍내 음식점 영업자 72명을 소집해 협의토록 해 음식가격을 일률적으로 2할씩 낮추도록 했다. 탁주 1합(合) 5전(錢), 소주 및 약주 1합에 15전, 정종 1합에 20전, 국밥 1기(器) 15전, 떡국 15전, 비빔밥 15전, 만두 20전, 소면 10전, 갈비 5전, 밥(飯) 20전이다.
 당시 일반 식당에서는 주류로는 탁주와 소주, 약주, 청주를 판매했으며, 식사류로는 국밥과 떡국, 비빔밥, 만두, 소면, 갈비, 밥을 팔았다. 1935년 3월 <동아일보> 강릉지국에서는 강릉 상점 인기투표를 실시하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개최했다. 음식점의 경우 요리업부와 음식점 1부, 음식점 2부로 나누어 투표를 실시했다. 음식점 1부에는 양식집으로 추정되는 ‘알푸스’라는 상호의 식당이, 음식점 2부에는 중식당으로 추정되는 ‘영춘루’가 포함되어 있다. 양양 속초지역도 이 즈음 양식당과 중식당이 들어섰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양양 지역에는 음식점이 몇 곳이 있었을까? 1938년 6월 29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에는 양양의 여관과 요리집, 음식점 1백11개 업소에 대해 저축을 장려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1941년 12월 27일자 3면 <매일신보>에는 양양군민이 전쟁 지원을 위한 헌금과 헌품을 보내왔는데, 당시 양양면 음식점 조합원 33명이 현금 1백20원을 헌납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상업과 수산업이 발달한 속초에도 양양면에 못지않게 많은 음식점이 들어섰을 것이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속초항에 들어선 최초의 여관인 ‘속초관’. 1933년 12월 7일자 부산일보 4면.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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