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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의 뿌리와 문화재생<4>
실향민들 미군정 시기 청호동에 집단으로 정착하기 시작
등록날짜 [ 2018년05월14일 13시23분 ]

■그런데 속초사람들이…
유물이야 운 좋게 출토되면 세상에 빛을 보는 것이지만,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양양·간성지역에 세거하던 주요성씨 중 강릉 김씨, 강릉 최씨, 경주 김씨, 경주 이씨 분들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강릉→양양→간성으로, 또는 강릉→간성→양양으로 거주지를 이전한 경우가 많다. 강릉사람이었다가, 간성사람이었다가 양양사람이었다가 개인의 사정으로 인해 지역을 옮겨 다닌 것에 불과하며 결론은 같은 집안이다.
속초지역에 세거하는 성씨의 족보자료를 보면 최초 1500여년 경부터 여러 성씨들이 이 지역에 세거하며 살았는데, 상도문리에는 해주 오씨, 밀양 박씨, 강릉 박씨, 강릉 김씨, 경주 김씨, 함평 이씨 등이, 하도문에는 연일 정씨, 경주 이씨 등이, 부월리에는 경주 이씨, 제주 고씨 등이, 논산리에는 진양 진씨 등이, 청대리에는 단양 장씨 등이, 노리에는 전주 이씨, 연안 차씨, 초계 정씨, 진주 강씨 등이 세습해 살아온 걸로 나타났다. 물론 일반 양인(良人)들도 성(性)을 가질 수 있지만 이들은 곧 양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어느 지역이던 간에 한 지역에는 양반, 중인, 양인, 노비가 공존해 왔다. 평등의 시대인 지금 너와 나의 조상의 신분이 무엇이었냐 따지는 것이 아니라, 4대 신분의 사람 모두가 이 지역의 역사를 가진 원주민이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속초지역 원주민들의 한 맺힌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치하(이하 인공(人共), 그리고 군정시대(軍政時代)를 거치면서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우여곡절’이란 시대(時代)와 사상(思想)이 바뀌면서 ‘일부 지주(地主, 일부 양반과 일부 부자 양인)와 보통사람(일부 양인과 일부 소작농) 등 사이에서의 권력의 쟁탈’을 의미한다.
 다만, 속초지역을 이끈 일부 주도세력들의 이야기지 속초주민 모두가 권력쟁탈 과정에 참여했다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속초지역내의 몇 안 되는 지주(地主)들 중 일부가 면협위원(面協委員), 애국반(愛國班),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 등의 친일단체(親日團體)의 주체 또는 간부가 되어 일제의 탄압에 동조하면서 부와 권력을 누려왔다. 또한 속초에서는 유일하게 마을전체가 일제에 동조한 곳도 있었는데, 동아일보 1937년 9월 14일자 기사에 따르면 ‘모리(某里) 부인회에서 일본이 태평양전쟁 준비 중인 1937년 9월에 자기 동네 남자들이 헌금하겠다고 노동하는 것을 보고 생산된 감자를 갈아 속초시장에 내다팔아 일본군의 중일전쟁 승리를 지원하기 위한 국방헌금을 하였다고 하는데….’ 말이 좋아 마을전체 주민이지 분명히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친일과는 반대로 좌우연합 사회운동단체인 신간회(新幹會) 양양지회(襄陽支會)를 결성하여 기회주의 배격, 농민 의식개혁, 항일운동 진상규명 등을 통해 일제에 대항하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광복이후, 양양지역 남쪽 현북면 기사문리 인근에 38선이 그어지면서 속초와 양양 일부지역이 북조선의 인민정부에 예속되게 되었다. 이 지역 청년들에 의해 ‘호산 청년회’, ‘양양 신청년동맹’ 등의 조직단체가 결성되어 양양지역의 사회주의 전파에 적극적 활동을 보였다.
또 하나가 농민조합운동이었다. 북한의 토지개혁정책으로 말미암아 북한사회에 적대적인 주민들이 양산되었는데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붉은 패’와 소극적으로 비판하는 ‘흰 패’이다. ‘흰 패’는 주로 지역의 유지들이였는데 이들은 서로 충돌하지는 않았지만 ‘물과 기름’처럼 대립하고 있었다. 모든 재산이 국유화되면서, ‘공동생산 공동분배’라는 미명하에 일부 농민과 소작농들이 주를 이룬 적색동맹(赤色同盟) 등의 ‘친 인공단체’가 주된 세력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동조하여 속초를 지배하였던 일부 세력들은 숙청당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타 지방으로 도망을 가기도 하였다.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 이론가였던 양양 조산리 출신인 최용달(崔容達)은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에 참여하여 광복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여 1948년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헌법’을 기초하였을 정도로 양양지역의 사회주의 노선은 일제강점기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피난민들 속초 중심축으로
1950년 한국전쟁(6.25) 발발 이후 1951년 7월부터 속초는 남한의 영토로 수복(收復)되어 미군 주도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다. 당시 인민위원장, 적색세포위원장, 농민동맹위원장 등 친공산주의 단체의 주역들은 북으로 도망가거나, 숙청당하였다. 반대로 북조선은 전쟁도발 이후 북조선에 있던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1945년 11월 북한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 우익정당), 청우당<靑友黨-천도교도(天道敎徒)로 이루어진 종교정당, 지금도 존재하며 현재는 북한 노동당의 우당역할을 함> 등의 반공인사나 관련주민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조부 고 정태현<鄭泰賢(1913~1998), 동명동 지명 작(作)>님도 광복 이후 인공 당시 속초에 거주하시면서 속초지역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 사무국장(조부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속초읍 민주당 위원장은 김해수님)을 역임하시다가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조선민주당원 몰살소식을 듣고 경북 울진까지 피난 갔다가 돌아오셨다고 한다.
1․4후퇴 때 북조선의 만행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갔던 북한주민들은 한국군의 북진행렬과 더불어 다시 고향인 북으로 향하다가 서서히 청호동(靑湖洞)지역에 일정한 집단 거주공간을 형성하였다.
실향민들이 지금의 청호동(아바이 마을)에 집단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미군정 시기이다. 당시 속초주변에는 군수부대, 미군부대 및 한국군 부대 등 많은 부대들이 창설되었는데, 많은 노무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노무 일을 지원하거나, 어업에 종사해서 함경도 해안 지형에 익숙하기에 첩보활동을 지원하는 일들을 하였다고 한다.
피난민들의 탈출 러쉬는 대부분 어선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때에도 배를 이용하기 위해 배를 손쉽게 댈만한 곳이 필요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청호동이다.
당시 청호동 사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어서 임시 거주공간으로 적당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주민과 큰 갈등 없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후 동향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신포마을, 영흥마을, 단천마을, 이원마을 등의 집단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농업이 발달했던 남한과는 달리 중공업·수산업 등이 발달했던 북한지역에서 온 피난민들은 당시의 지식을 활용하여 속초의 중요산업, 행정, 교육, 상업 등 다방면에서 속초지역의 중심축이 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속초읍사무소의 직원, 사환 등이 되어 행정에 합류하고, 교사가 되어 교육계에 투신하고, 속초치안대에 합류하여 경찰력의 주축을 이루기도 하였다.
함경도 북청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지금의 금호동사무소 건너편에 ‘북청회관’을 건립하여 그리운 고향에 가고 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북청사자놀음’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전반적인 바탕으로 속초의 행정영역, 문화영역 등을 장악한 실향민들은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인 속초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와 인공시절(광복후 수복되기 전까지), 군정(한국전쟁이후)시절을 거치면서 정치, 행정, 문화 등의 영역에서 속초지역을 이끌어가던 원주민들은 사라지고 실향민들이 들어와 속초를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토대로 이세진(한국외대 교수, 도문동 출신, 이봉진 의회사무과장 동생)은 ‘1930~1950년대 수복지구 마을의 국민화 과정(속초시 A리·양양군 B리의 경험을 중심으로)’이라는 석사논문(한국외대)을 발표했다. <계속>
*본 글은 <속초문화 제33호(2017)>에 실렸으나 지면관계상 실리지 못한 부분을 추가해 수정 보완했습니다.
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38선을 통해 북진하는 한국군(1950). 출처 : 양양문화원
1950년대 속초 아바이마을 전경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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