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을 8․15 전후로 갖기로 잠정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10년 넘게 생사를 알 수 없는 사촌 여동생의 소식이 무척 궁금하네요.”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마을인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현지 모습을 담기 위해 청호동주민센터를 방문한 지난 1일 오전, 김영화(58) 동장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다.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빛바랜 흑백사진에서부터 개인 사진까지 여러 장의 사진들이 저장돼 있었다. 사진 속의 배경이 이상해 물어보니 “북한에 있는 작은아버지와 고모님의 가족사진”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을 넘기던 김 동장의 손이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의 사진에서 한동안 멈췄다. 김 동장이 생사를 가장 궁금해 하는 바로 사촌여동생 A 씨의 사진이었다. A 씨는 살아있으면 올해 50살이 된다.
김 동장은 탈북해 중국에서 지내던 사촌 여동생이 2000년대 중반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대사관건물에 진입하다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끌려가던 중 열차에서 뛰어내리다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었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의 탈북을 도와주던 중국 브로커로부터 ‘여동생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다가 크게 다쳐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됐는데 아마 살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중국 브로커부터도 연락이 끊겨 여동생의 생사여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동장은 사촌 여동생의 탈북 소식을 듣고 지난 2002년 중국으로 건너가 여동생을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듣고 사진 등을 건네받았다.
함경도 이원군이 고향인 김 동장의 부친(85)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 내려왔다. 북한에는 김 동장의 할머니와 작은아버지(작고), 고모가 남게 됐다. 김 동장은 사촌동생과의 연락이 끊겨 할머니와 고모의 생사는 현재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여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제발 살아 있어 이산가족 상봉 때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발표 당시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이날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김진국 청호동노인회장은 “아바이마을이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마을이지만, 이산가족 상봉 이후 지금까지 상봉자가 1명(북한 가족 신청) 밖에 안 나와, 대부분의 실향민들이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도 큰 기대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실향민들 대부분 고령인 탓에 가족 상봉 못지않게 죽기 전에 북한의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는 게 소원”이라며 “이번 선언을 계기로 남북 관계가 진전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실향민 1세대들의 소원이 꼭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1세대는 대략 100여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고명진 기자
이산가족 상봉 재개 소식에 김영화 청호동장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북한가족들의 사진을 보며 만남을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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