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시경제의 다양한 공공재를 창출하는 골목길을 하나의 자본으로 이해해야 한다. 골목길은 기억, 추억, 역사, 감성을 기록하고 신뢰, 유대, 연결, 문화를 창조하는 사회자본인 것이다.(<골목길 자본론>, 모종린)
도시재생은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한다.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되고 연간 2백만명이 찾아온다는 대구의 근대골목은 낡은 공간과 잊혀진 이야기를 궁금해 하던 20대 청년에게서 시작했다. (사)시간과 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는 20대 시절 YMCA 활동을 하며 동성로와 약전골목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2002년 ‘거리문화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만든 후 2007년까지 100명의 조사원들과 함께 대구 중구의 골목을 다니며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가 대구 근대사 가이드북인 ‘대구新(신)택리지’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에는 대구 골목의 공간과 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꼼꼼하게 기록되어 도시 생활사의 견본으로 불린다.
권 이사는 2002년 골목길 탐방과 함께 대구시민들을 대상으로 근대골목 투어를 시작했다. 그 결과 2007년까지 대구시민의 1%에 해당하는 2만5천명이 투어에 참가했다. 행정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각성과 도보의 편리함을 위해 디자인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이상화고택의 보존 등 대구의 역사와 문화가 낡은 공간에서 시작되어 도시의 대표 콘텐츠로 확장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한국 관광의 별’로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지역문화브랜드 대상을 수상했다.
골목 상권 가치, 북성로 공구박물관
대구의 첫 번째 방문지는 북성로 공구박물관이었다. 1930년대 미곡창고로 지어진 일본식 건물로 지난 2013년부터 공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공구사의 방, 기술자의 방 등 좁은 공간을 공구 관련 콘셉트의 전시물로 다양하게 채워놓았다.
이 건물은 대구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인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으로 되살아났다. 한때 전국의 거의 모든 공구가 이곳에 집중될 정도로 활황이었던 거리를 기억하기 위한 거점공간인 셈이다. 대구시는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점 중 하나인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고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첫 번째 결과물은 2011년 탄생한 카페 ‘삼덕상회’였다. 삼덕상회라는 와이어 상회에서 출발한 이 건물은 2011년 대구 중구청과 권 이사의 협력으로 카페운영자와 리노베이션하게 되면서 새롭게 탄생했다. 당시 대구시장은 민간에서 주도한 북성로 재생사업을 보면서 2번째 프로젝트 예산을 특별교부하였는데, 그 결과가 공구박물관이다. 공고박물관의 전시물은 대부분 ‘삼덕상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북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은 2014년 7곳이 완료되었고, 2015년에는 20곳이 진행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이 사업은 사업구간 내 위치한 1960년대 이전 건축물을 원형에 가깝게 개보수하는 사업으로 리노베이션 위원회의 가이드라인 및 기본설계를 준수하고 5년 이내 사업비 지원 부분을 훼손변경하지 않으면 가능하다.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 카페 ‘소금창고’ 등이 이러한 방식으로 완성되어 거리의 활력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속초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숨쉬는 골목이 있다. 특히 구 속초수협 중심의 해안거리는 바닷가 사람들의 생업과 연관된 어구점과 음식점이 숨어 있다. 그물과 덕장, 생선 리어카 등은 속초시민을 위한 옛 기억의 복원이자 속초를 찾는 관광객에게 새로운 생활사 오브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은 골목과 공간 등 사회적 자본의 성격을 가진 공간을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막을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이다. 사회기반 시설이 아닌 주택만 난립하는 최근의 개발붐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골목서 만난 역사, 시장에 그려진 예술
대구 근대골목은 단순한 생활사의 복원에 그치지 않는다. 대구시민의 생업과 그에 따른 골목의 형성은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겹치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한다. 탐방단이 체험한 근대골목투어 2코스는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는 코스였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탄생한 <동산선교사주택>과 <계산 성당>은 1900년 초부터 시작한 선교활동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자, 1910년 초기의 전통한식과 양식의 조화가 잘 이뤄진 근대건축을 살펴볼 수 있다. 동산선교사 주택에서 계산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3.1만세운동길로 불린다. 3.1운동 당시 신명학교, 성서학교, 계성학교 학생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는 길 위의 보도블록에 대구의 대소사를 음각으로 기록하여 걷는 재미를 주었다. 이밖에 지난 1999년 백만인 서명운동으로 지켜낸 이상화 고택은 근대문학의 발상지 대구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대구 근대골목의 역사성과 이야기성은 건물의 리모델링과 스토리텔링, 거리벽화 등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청라언덕은 장소의 역사성과 특징에서 영상의 소재를 이끌어내어 뉴미디어라는 현대예술로 표현한 ‘미디어 스카이 청라’를 조성하기도 했다. 도보여행을 위한 걷고 싶은 길은 역사성과 만나면서 도시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전달했다.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조성한 ‘김광석 길’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고 김광석이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이곳은 지난 2010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하나로 방천시장 골목길 약 350m 길의 벽면에 벽화와 조형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길의 이름은 김광석이 생전 발표한 음반 ‘다시부르기’에서 착안했다. 아무도 찾지 않았던 이 길은 2013년 행정안전부 주관 ‘향토자원 베스트 30’, 2014년 한국관광공사의 ‘2014 베스트 그곳’에 선정될 정도로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대구에서는 골목이 품고 있는 이야기, 그곳을 지켜내고 스쳐가는 사람들의 기억은 예술과 만나 새로운 명소로 탄생되었다. 문화적 방법의 도시재생은 자연스럽게 관광으로 연결됨을 부산에서 살펴보았다. 속초는 어떤 기억을 지켜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구의 근대골목은 낡은 공간과 잊혀진 이야기를 궁금해 하던 20대 청년에게서 시작했다. (사)시간과 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는 지난 2월 속초를 방문하여 20대 시절부터 활동한 근대골목 형성기에 대해 강의를 하였다.
2007년 발간한 <대구 신택리지>의 저자 보유본으로 책은 현재 절판되었다. 촘촘하고 방대한 기록은 지역 생활사 기록의 새로운 모범을 제시하였다.
근대건물에서 생활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북성로 공구박물관은 젠트리피케이션과 역사적 공간의 복원을 위한 대안의 하나로 탄생했다.
<김광석 길>은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관광지가 되었다. 인근 방천시장도 덩달아 예술시장이 되었다. 인위적인 골목길 조성의 폐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도시재생은 단기간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좋은 이벤트이다. 사진은 <김광식 길>에 조성된 ‘김광석 박물관’ 전시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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