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씨는 대진에서 머구리 사업을 시작한 이후 판매고에서 줄곧 수위를 지켜왔다. 2014년부터 시작한 횟집도 꾸준히 성업 중이다. 탈북한 지 2년 만에 자신의 길을 찾고 새로운 사업에서 한 발 한 발 성장해 가고 있는 모습은 실로 경탄을 자아낼 만하다. 박 씨는 이미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해낸 것이다.
성공한 이도 피할 수 없는 자식 걱정
안정적인 생업,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범부의 시름을 하나 덜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고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식 걱정을 한다. 그도 그렇다. 그의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함께 일하면서 또래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고 그의 둘째 아들은 서울의 명문대를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두 아들 다 자신의 길을 찾아 잘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그는 명문대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걱정이다.
박 씨의 생각에는 누구든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 박 씨는 고난이 닥쳤을 때 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에서도 그렇게 했고 남쪽에 왔을 때도 그랬다. 자신이 북한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남쪽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의 공군 장교로 입대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머구리라는, 목숨을 거는 일을 택했다.
그런데 박 씨는 명문대를 다니는 둘째 아들이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을 꺼릴까 걱정이 크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을 나온 것이 장점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다. 박 씨의 생각에는 대학 진학이 장점보다는 오히려 살아가는 데 있어 잘못된 가치를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명문대를 다니는 그의 둘째 아들 학교 친구들은 집안이 좋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이들이 많다. 주위의 그런 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둘째 아들이 그릇된 허영심에 빠질까 두려운 것이다.
박 씨는 인터뷰에서 둘째 아들의 대학 진학을 말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거듭 말했다. 박 씨는 둘째 아들이 명문대를 졸업하더라도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학에서 배운 것을 잘 활용하며 한 걸음씩 성장해 가기를 바라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부른 소리이지만 그의 가치관에 따르면 자못 심각해 보인다.
탈북 머구리의 꿈
“탈북민 정착촌을 만들고 싶습니다.”
꿈이 뭐냐고 묻자 박 씨에게서 돌아온 답변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이 그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요. 정착촌은 휴전선 부근에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박 씨는 탈북자 정책에 있어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씨가 보기에 탈북자에게 임대주택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안 주는 것보다 낫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박 씨는 탈북자에게 생업의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 씨의 견해에 따르면 지금까지 탈북자들을 위한 취업 정책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아 탈북자들 상당수가 사회 적응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임대주택만이 아니라 탈북자에게 땅을 주어 거기서 일하게 한다면 고령화된 한국의 농촌 문제도 해결하고 탈북자의 정착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좀 더 진전된, 파격적인 주장을 내놨다.
“민통선을 없애야 합니다. 그곳에 탈북자들을 위한 정착촌을 만들어야 합니다. 민통선은 민간을 통제하는 선이 아니라 민간이 통하는 선이 돼야 합니다.”
그는 탈북자 정착촌을 건설하기 위해 휴전선 부근에 땅도 사놨다. 정부가 나서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갈지 구체적인 전망도 없이, 정해진 직장도 없이 이사를 가는 일은 한 국가 내에서도 쉽지 않다. 그런데 탈북이라…….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곳이 과연 어떨지, 그리고 자신들과 잘 맞는 곳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살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일은 평범한 사람에겐 상상조차 어렵다. 박명호 씨와 그의 가족들은 이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따라서 박명호 씨네가 우리 사회에서 성공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는 모습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흐뭇한 일이다.
그런데 탈북자 모두가 이 가족처럼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한 것은 아니다. 남북하나재단의 ‘2017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은 비(非)탈북민에 비해 고용률이 낮고 실업률은 높으며 비정규직 종사 비율도 높다. 특히 임금은 탈북자들이 178만7천원으로 242만3천원인 비탈북민에 비해 60만원 이상 낮아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아래표 참조) 이 조사로 볼 때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정책이 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박명호 씨는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밝혔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략됐지만 논쟁의 소지가 있는 정치관도 강한 어조로 피력했다. 북한에 대한 비판을 넘어 우리 사회 기득권의 악습마저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그런데 이는 그의 진심이라기보다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 대해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였다. 그의 이런 모습에서 그가 출연한 영화 <올드마린보이> 속에서 박 씨가 잠수를 하며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이 겹쳐졌다. 한국에서 안정된 삶을 향한 그의 투쟁은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이 회담을 두고 사회 곳곳에서 환영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평화와 통일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멀리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트럼프를 향해 “노벨”을 외치는 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명호 씨, 그리고 탈북자들의 마음은 어떨까?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룬 이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탈북자들이 이 땅에서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은 평화통일일 것이다. 구술 박명호·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 ‘탈북 머구리 박명호의 살아온 이야기’를 마칩니다. 다음 지면부터는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김하은 씨의 살아온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탈북 머구리 박명호 씨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마린보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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