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3년에 간행된 <간성읍지>에는 특이한 음식 하나가 나온다. 간성읍의 진상품 목록으로 ‘방풍교침홍합해(防風交沈紅蛤醢)’를 3월에 진상하는 걸로 기록되어 있다. ‘방풍교침홍합해’라는 한자를 풀어쓰면 ‘방풍을 섞어서 담근 홍합젓’이다. 1년 중에서도 오직 3월에만 진상을 했다고 하니, 음력 3월 새로 돋는 방풍의 새순을 따서 싱싱한 홍합과 섞어서 담근 홍합젓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3월에만 진상한다는 걸 봐도 일상적으로 먹는 예사로운 음식은 아니다.
이 음식은 다른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직 간성읍지에만 나온다. 1633년 간성읍지뿐만 아니라, 1814년과 1884년 간성읍지에도 진상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1884년 발간된 간성군읍지에서는 “연어식해, 황어식해, 은구어식해, 홍합식해, 방풍교침홍합젓, 고등어내장은 명령이 있으면 봉(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간성읍지에 ‘방풍홍합젓’ 진상 기록
간성읍지는 다른 지방 읍지와 달리 식해(食醢)가 기록된 것도 특이하지만, 옛 문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향토별미로 ‘방풍홍합젓’이 기록된 것도 특이하다. 읍지 기록에 의하면 방풍홍합젓은 최소한 2백50년 동안 간성지방에서 나라에 진상한 향토 별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방풍홍합젓은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진 우리 지방의 향토별미이다.
우리에게는 섭 또는 섭조개라로 잘 알려진 홍합. 동해안에서 나오는 싱싱한 섭으로 끓인 섭죽이나 섭국은 우리지역의 별미로 지역주민이면 누구나 한번쯤 먹어본 친근한 음식이다. 홍합은 칼슘과 철분, 인이 풍부하다. 예전에는 바닷가 물 밑 바위에서 쉽게 채취했지만, 지금은 개체수가 많이 줄어 자연산 홍합(섭)은 귀한 해산물이 되었다. 남해안 일대에서도 홍합이 나온다. 양식도 한다. 그러나 남해안에서 나오는 홍합에는 수온이 올라가는 3~6월에 패류독소가 검출되기도 한다. 우리 지역에서도 홍합은 장마철에는 먹지 않는 해산물로 알려져 있다.
옛 문헌을 보면 홍합은 동해, 남해, 서해 바다에서 모두 나오는 해산물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강릉과 간성의 토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양양과 간성, 고성의 토산으로 나온다. 간성읍지에 따르면, 생홍합(生紅蛤)은 감사가 부임해 올 때 진상했고, 건홍합(乾紅蛤)은 5월에, 홍합식해는 3월과 7월에 진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평론서라 불리는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홍합에 대해 “중국인들이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 한다. 동해·남해에 모두 있는데, 남해의 것이 조금 크다”고 했다. 조선 성종 때 성절사(聖節使, 중국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을 통해 중국이 요구한 품목의 하나로 홍합젓(紅閤鮓)이 나온다.
방풍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생하는 다년생 식물이다. 고혈압에 좋고 풍을 다스려 풍병(風病)을 치료한다고 해서 방풍(防風)이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나는 걸 갯방풍, 해방풍 또는 갯기름나물이라고 한다. 어린잎은 맛과 향기가 좋아 예로부터 죽에 섞어 먹었고, 뿌리는 한방에서 해열 진통제로 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는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각 고을의 진상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양양도호부의 약재로 나오고, 1759년 간행한 양양부읍지에도 양양의 약재로 나온다.
허균은 <도문대작> 첫머리에서 외가인 강릉의 방풍죽을 자신이 먹어본 음식 중에 최고의 별미로 손꼽았다. 2월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을 맞으며 처음 돋아난 싹을 딴 방풍을 쌀죽이 반쯤 익었을 때 넣는데, 방풍죽을 먹으면 3일 동안 달콤한 향기가 입안에서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강릉에서는 몇 년전 방풍죽을 강릉대표음식으로 재현했는데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다.
- 음력 3월 방풍 새순 향 머금은 홍합젓
갯방풍은 지금도 사람들 손을 타지 않는 동해안 모래사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자생식물이다. 홍인우의 <관동록>에는 지금의 영랑호 인근 바닷가에서 방풍이 어지러이 나 있어 하인을 시켜 수백 뿌리를 채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갯방풍이 몸에 좋다고 해서 손을 많이 타기에 고성군에서 특별보호대책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고성군 바닷가의 일부 농가에서는 방풍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또 동해안 어느 지역에서는 몸에 좋은 갯방풍으로 술을 담가 내놓고 있다.
1946년 육당 최남선이 지은 <조선상식문답>에는 우리나라 지방 유명음식이 나온다. 여기에는 강릉의 방풍죽과 함남 차호(遮湖)의 홍합죽이 나온다. 간성읍지에 나오는 방풍홍합젓은 두 지방의 별미인 방풍과 홍합을 섞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방풍홍합젓을 오직 음력 3월에만 담근 이유는 방풍의 새순에서 우러나오는 향을 젓갈에 담고자 한 것이 아닐까? 방풍 새순의 향을 머금은 홍합젓. 그 맛과 향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자. 옛날 같았으면 음력 3월 지금이 바로 방풍홍합젓을 담글 때이다. 오직 우리 고장 옛 문헌에만 기록되어 있는 방풍홍합젓을 지역의 향토별미로 다시 복원할 수 없을까? 사라진 향토별미를 다시 맛보고 싶다.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성 송지호 해변의 갯방풍, 사진 엄경선 2016년 7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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