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에게 필름카메라 한 대를 선물했다. 사진 촬영은 그 소년의 취미가 됐고 이후 그 소년은 대학 전공으로 사진을 선택했다. 그렇게 그 학생은 사진가의 길을 걸을 것만 같았다.
이 신입생은 자신이 보는 것들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탈춤동아리를 촬영했는데 탈춤을 추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이 학생은 그 모습에 이끌려 탈춤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
낮엔 탈춤동아리 밤엔 사진과 씨름
그가 대학을 다닌 1990년대 초반은 캠퍼스가 어수선했다. 등록금 투쟁과 학원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그가 있던 탈춤동아리는 이런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대학 당국은 탈춤동아리의 활동에 갖은 제재를 가했다. 학생들을 면담하고 부모 소환으로 압박했다. 이에 따라 탈춤동아리는 해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이 1학년 학생은 굴하지 않았다. 망해가던 탈춤동아리를 살리기 위해 독한 마음으로 버텼다. 사진과 교수들은 그의 과제물에 최하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정부와 대학 당국의 행보에 보조를 맞췄다.
오기가 발동했다. 대학생 전성호는 하나의 사진 과제물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시 제출했다. 교수들이 사진 과제물에 최하점수를 준 것은 오히려 약이 됐다. 사진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더 많이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이는 실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시련이 오히려 그를 강하게 단련시킨 것이다.
그리고 탈춤동아리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낮 동안은 탈춤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밤이면 사진과 씨름했다. 이때 같은 과 친구들이 큰 힘이 됐다. 친구들은 자신의 장비 사용 시간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당시 그에겐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술 마실 시간도 없었고 여자 친구를 사귈 엄두도 못 냈다. 그의 대학 생활은 내내 탈춤과 사진 두 가지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전 너무 바빠 쉽게 다가오기 힘든 사람이었죠.”
전성호 악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렇게 말했다.
대학생 전성호는 스러져가는 동아리를 살리기 위해 탈춤 전문성을 다지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대학의 탈춤동아리가 함께 삼척대학교에서 봉산탈춤 이수과정을 운영했는데 그는 자신이 다닌 대학에서 혼자서 참여해 봉산탈춤 전 과정을 익혔다. 다른 이들이 몇 가지 역할만 익혔지만 그는 억척스럽게 봉산탈춤에 몰입해 모든 역할과 공연의 세세한 사항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는 후배들에게 봉산탈춤 전 과정을 가르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갯마당’ 들어가 국악을 전업으로 선택
전성호 악장은 사회에 나와서 사진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한편으로는 국악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1990년대 초에 만들어진 국악모임 ‘갯마당’에 전문 연희단이 만들어진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 이전까지 ‘갯마당’의 구성원들은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때 비로소 국악을 전업으로 선택했다. 전성호 악장도 마찬가지였다. 당시까지 동아리 성격을 지녔던 ‘갯마당’이 점차 전문 국악인 단체로 발전해 나갔다.
국악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하나의 장단을 함께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즐거움 못지않게 자신의 부족함도 많이 느끼게 됐다. 국악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찾아 나섰고 그 와중에 호남에서 본 중학생들의 공연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저런 음악도 있었구나. 내가 중학생들보다도 못 하는구나.’
어린 학생들이 훨훨 날아다니면서 치고, 돌면서도 치는데 연주마저 훌륭했다. 그 이전까지 강원도에서 가장 잘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그 중학생들의 공연을 보며 자신이 강원도 산골 우물 안 개구리라고 느끼게 됐다. 자신의 국악 인생에 있어 정신이 붕괴된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때서부터 죽어라 연습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바로 뻗어버릴 정도로 장단 하나에도 혼신을 기울였다. 연희단의 구성원 전성호, 주동진, 박치영, 김태희, 김동연 5인은 공부와 강연, 연습과 공연으로 이어지는 삶에 자신들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바쳤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한 스승으로부터 사사할 때의 일이다. 그 스승이 전성호 악장에게 “너는 아직도 ‘덩’을 못 친다”고 말했다. 장구 연주에서 기본이 ‘덩쿵따’인데 여기에서 ‘덩’을 못 친다는 말은 대단히 충격적인 얘기였다. 이것이 국악에 대한 그의 인식이 무너진 두 번째 경험이다. 그는 그날 이후 스승의 소리를 정교하게 분석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는 두드림의 미묘한 차이를 깨닫고자 했다. 찰나의 순간에 만들어지는 소리를 다듬기 위해 집중했다. 아마도 국악을 모르는 이들은 결코 알아채기 힘든 소리를 내기 위해 무던히 연습을 반복했다.
세 번째 충격은 대학원을 다닐 때에 찾아왔다. 그 이전에는 악기만으로 소리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리는 악기를 치는 자신의 몸놀림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기를 친 후 팔과 몸의 동작을 달리 하면 소리는 다른 파장으로 바뀌어 다양하게 울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악기의 연주자이자 동시에 소리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 그는 과거에 스승들이 악기 연주 시에 몸동작을 어떻게 하라고 한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소리에 대한 자신의 사고를 정립했다. “그때 소리의 움직임을 알게 됐지요”라며 전성호 악장은 성취감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전성호
-동우대 사진과 졸업
-용인대 국악과 대학원 석사
-1996.10. 제1회 강원도 문화원
사물놀이경연대회 대상
-1999.11. 제3회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2003.10. 제44회 한국민속예술축제
(도문메나리) 문광부장관상
-2005.5. 제7회 전국농악명인경연
대회 우수상
-2008.6.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음악이수자
-2015.6.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 단오제 무격부 이수자
-현 속초시립풍물단 악장
속초시립풍물단 전성호 악장
사진학도 시절의 밀착 인화 사진.
대학 시절 교수들이 한때 최하점수를 주기도 했지만 그가 졸업한 즈음엔 그의 실력을 인정해서인지 과를 대표하는 학생으로 추천해서 <사진예술>에 그의 사진이 실렸다.(<사진예술> 1993년 1월호에 실린 사진)
속초시립박물관 내에 위치한 속초시립풍물단.
대학 탈춤동아리 시절의 전성호 악장.
‘갯마당’ 초창기 시절 전성호 악장(오른쪽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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