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6일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 씨가 23세의 나이로 부모 곁을 떠나게 된 지 9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유미 씨는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며, 열 아홉의 나이에 일터로 향했다. 그 일터는 사람들도 알아주는 ‘좋은’자리였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가족들은 유미를 대견해했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일이 정말 고되고 힘들었지만 참고 견뎠다. 유미는 효녀이고, 착한 딸이고, 자랑스러운 누나였기 때문이다. 얼마 동안 이 힘든 일들을 견뎌내면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해도 되겠지라는 기대가, 희망이, 소망이 유미를 버티게 만들었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약품이 독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할당량을 맞추려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괜찮다 싶었고 주변에서도 그랬다. 유미는 그렇게 공장에 간 지 2년 만에 병에 걸렸고, 입사한 지 4년이 채 되지 않은 스물 셋의 나이에 울산바위 근처에 흩뿌려졌다.
고 황유미 씨와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공장으로 가서 직업병 피해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노동자는 너무나도 많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황상기 씨의 활동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짐)’에 제보된 수만 헤아리더라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만 무려 221명이나 되며, 그 중 사망자는 76명이나 된다.
딸의 죽음 이후에 끊임없이 쉬지 않고 거대 기업과 싸워 온 황상기 씨의 행보는 잠시 미루어 두고 한 개인이 거대한 ‘자본권력’과 싸워 얻어낸 결과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 싸움을 시작하고 산업재해 판결을 받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산업재해 판결을 받아 냈다. 이는 황유미 씨 죽음의 원인이 삼성전자 측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결과이다. 또한 2015년 7월에는 협상과 관련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도 발표되었다. 그 권고안은 그리 엄청난 것도 아니다. 사과와 보상, 재해예방대책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권고안을 따르지 않고 공허한 사과만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위의 세 가지 권고안 중에서 예방대책에 대해서만큼은 얼마 전 합의가 되었고, 그 사실 자체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그 합의안을 성실히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삼성 측이 보여준 행태가 신뢰할만하다고 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자면, 예방대책에 대한 합의가 있기 전 삼성 측에서는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려 개개인에게 합의 내용에 대해 공개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가며 보상을 강행했었고, 반올림에서 떨어져 나간 가족대책위와 만나 사과를 하며 그 모습을 사진 찍어 위의 세 가지 권고안이 모두 합의된 것처럼 언론에 유포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상황이니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딸의 죽음과 그 죽음을 대하는 삼성이라는 재벌의 행태를 바라보며 분개했을 것은 자명하다. 딸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버리면 또 다른 유미들이 같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걱정되고 화가 나서 그는 거대한 재벌과의 싸움을 시작했고 그것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위의 과정들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황상기 씨가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과’와 그에 걸맞은 ‘보상’ 그리고 잘못의 ‘인정’ 뿐이다. 하지만 이 소망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싸움이 돈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는 사과를,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유미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없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훗날 유미를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허무하기 그지없는 인생사 속에서 삶의 희망이었던 딸을 삼성이라는 재벌의 파렴치함으로 인해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아비는 딸의 죽음이 헛되고 허무하게 끝나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그 날 딸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거리에 서서 그들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박경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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