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필자는 응골 딸기마을에 이장 일을 한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농촌마을은 주민들의 연령이 높아지는 고령화가 심하다. 누군가 마을일을 맡아서 해야 함에도 일할 젊은 사람이 없다. 당시 필자는 공직에서 정년퇴임했음에도 청년 아닌 청년이었다. 마을에서는 아직 젊은층이요, 또한 공직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이장 추천을 받았고, 응골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겠기에 마을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장을 하기로 하였다.
어느 농촌마을이든 이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면 마을의 각종 대소사나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마을의 봉사자요, 심부름꾼이다. 농촌 마을의 운영조직을 보면 이장은 두 가지 명함을 갖고 있다. 하나는 농민 대부분이 지역농협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기에 농협에서는 응골 영농회장으로 그리고 행정의 보조역할을 하기에 행정에서는 통장님으로 부른다. 농촌마을은 이장과 마을운영위원 2명, 반장 2명, 부녀회장, 노인회장, 청년회장, 작목반장, 제설작업팀장 등 구성원들이 많다. 여러 사람들이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마을을 운영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건설적인 분쟁이나 혹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다소 다툼의 문제가 생길 때도 있다. 이럴 때엔 참으로 난처하고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누구든 선뜻 나서서 화해나 중재하기도 어렵다.
필자는 이장이 된 후 작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많은 궁리 끝에 ‘마을촌장 어른’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했다. 마을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시고, 60년대 새마을운동사업을 할 때 농촌의 지도자 역할을 하시면서 마을주민을 한데 모아 협동과 화합의 장을 만들었고, 속초시 농지개발위원을 지내셨고, 우리 응골 마을의 역사나 잊혀져가는 마을의 문화와 전통을 복원하는 증인이셨고, 마을 구석구석 어떤 부분도 모르는 게 없이 꿰차고 있는 응골마을 토박이 원로어르신이며 속초시 농촌마을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김기영 어르신을 응골 마을 최초 ‘마을 촌장’ 어른으로 추대하였다. 추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지만, 마을의 어떤 분쟁이 발생했을 때 분쟁 당사자들을 촌장님께 아뢰면 엄격하고 무섭게 질타하시지만, 결국은 합리적으로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으시고 양쪽을 화해시키며 중재를 하여 이후에는 서로가 더 생각하고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게끔 이끌어 주셨다. 심지어 그때 마을 부녀회장이였던 촌장님의 며느리가 이장과 분쟁이 있더라도 며느리 편이 아닌 합리적인 판결을 해주시곤 하셨다. 부모 같고 할아버지 같이 인자하신 분이셨다. 어떤 분은 꼬장꼬장 하신분이라고도 하시지만, 그만큼 의욕이 대단하셨던 분이시다.
지금 사회전반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분쟁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이제 나는 나이가 많으니깐, 귀찮으니깐, 혹시나 자식들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욕이나 먹지 않을까 해서 잘못된 부분이 많아도 그냥 못 본 체 하시면 안 되신다는 말씀을 감히 드린다. 원로님들께서 젊은 세대들과 자식들의 일에 무조건 살아오신 세월만 비교해서 매사에 일일이 듣기 싫어하는 지적과 참견만 하시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 촌장어르신의 역할과 같이 분명 어른으로서 그 역할을 해주셨으면 한다. 물론 정서상 위험하고 오히려 어른들께서 젊은 세대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과거 우리 부모님들은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은 농사철에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고 늦잠을 잘라치면 사랑방에 계시는 할아버지께서 헛기침을 두어번 하시면 바로 벌떡 일어나서 논밭에 나가야했고,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긴 장죽담뱃대로 재떨이를 탕! 탕! 치면서 무언의 경고를 보내시면 아무리 화가 났던 부부싸움도 끝내야 했다. 허나 지금은 서로가 참지 못하여 사건사고가 뉴스를 도배하는 세상이 됐다.
필자는 그때 촌장님의 보살핌으로 이장 임기를 큰 과오 없이 무사히 마쳤다. 이럴 때면 지금은 저 멀리 하늘나라에 계시는 촌장님이 그립다. 생전에도 늘~부지런하셨는데 편안히 잘 계신지요? 응골 딸기마을 잘 지켜주십시오 촌장님!
연승원
속초농협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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