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네 번 바뀌고 어느덧 40년, 20대 청년의 활기차고 친근한 웃음은 그대로이지만 그의 얼굴은 어느새 원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김종헌(사진) 전 속초양양교육장이 지난달 말 소야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에서 은퇴했다. 수십 년간 몸 담아온 교육 현장을 떠난 그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새로운 길을 향한 희망과 의지도 엿보였다.
김 전 교육장은 속초고(20회)와 춘천교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78년 정선 사북초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고 장열초등학교, 거성초등학교 교사를 거쳤다. 이후 청대초등학교, 영랑초등학교 교감, 온정초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고 2015년에는 속초양양교육지원청의 첫 공모 교육장에 선임되어 2년간 지역 교육계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와 같이 김 전 교육장은 오래도록 교육자의 길을 걸었지만 한편으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설악문우회 (갈뫼 동인) 회장이며 속초예총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다.
임길택 작가와 만난 후 교육관 바뀌어
그의 교직 생활은 네 개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열정만으로 교사 생활을 하던 5년, 그리고 진정으로 좋은 교사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공부하던 또 다른 5년이 있었다, 이 두 시기는 교육철학을 세우는 시기 10년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이후 20년은 교육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 실험과 모색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10년은 교육 관리자로서의 시기이다.
젊었을 때 김 전 교육장은 열정이 흘러넘쳤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열정만 가득한 때였다. 돌이켜 보면 교사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시기이다. 시험에 중점을 두고 체벌도 하곤 했다. 문제를 많이 풀게 하고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고 임길택 작가와의 교류를 통해 변화를 맞이한다. 임길택 작가는 교사이자 작가로 일찍이 동화작가 이오덕은 그의 작품과 됨됨이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평소에 김 전 교육장을 지켜보던 임 작가는 어느 날 식사를 같이 하던 자리에서 “김 선생, 가르친다는 것이 무얼까”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교육에 대해 함께 치열하게 공부했고 이를 통해 김 전 교육장은 교직에 대한 철학을 세울 수 있었다. 임길택 작가가 김 전 교육장의 멘토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김 전 교육장의 교육관이 바뀌었다.
“그 이전에는 교육이란 공부를 많이 시켜서 성적을 향상시키고 규칙을 잘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교육에 대한 깊은 성찰 이후에는 파격적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교육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을 으뜸으로 여기고자 했다. 그리고 교사로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아이들에게 형이나 삼촌 같은 존재가 되려 했다. 수업 중에도 쉽게 야단치거나 혼내는 자세를 지양했고 진도나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는 수업을 추구했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도 그에겐 중요한 일이었다. 방과 후에는 아이들과 축구도 같이 하고 아이스크림 내기 시합도 했다. 토요일의 수업은 글쓰기와 독서에 중점을 두었고 방과 후에는 아이들과 낚시도 함께했다.
그의 이런 교육 방식이 다른 교사들에게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교육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교사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과의 좋은 관계 형성이 교육의 밑바탕을 이룬다고 생각했기에 의심스런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부모 교육프로그램 운영 공들여
김 전 교육장의 교육 실험은 교직 생활 동안 다양하게 전개됐다. 독서교육, 글쓰기교육, 영어교육,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과 뇌과학에 입각한 학습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교육 열정을 불태웠다. 학부모 연수와 학부모 동아리 지원 등 학부모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운영에도 공을 들였다. ‘어린이 책 읽는 어른 모임’(어책모)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려면 어른들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모여 공부하며 독서와 독서 후 활동의 진흥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공로로 2011년에는 속초시문화상(교육학술 부문)을 받기도 했다. 교육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조직문화 개선에 역점을 두었다. 생산적인 회의 문화를 도입했고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직원들의 의견도 존중하고자 했다. 그리고 학교마다 특색 있는 교육 브랜드를 만들도록 장려한 점도 그가 중점을 두었던 바이다.
“제게는 은퇴 후에도 세 가지 계획이 있습니다.”
김 전 교육장은 은퇴 후에도 현역 못지않게 바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학교가 없는 속초 남부로 중학교의 이전을 추진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지역 교육의 균형 있는 내실화를 도모할 예정이다. 또한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를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교육이 학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기에 학교, 지역사회, 지역기관이 함께하며 학교가 지역의 인재와 인프라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을교육공동체 협동조합’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역 문화예술계 융복합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서도 노력할 생각이다. 이는 속초 문화의 발전을 위해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단체·기관들이 협력하는 구심점을 만들려는 것이다.
김 전 교육장은 은퇴 후 이와 같이 여러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생각이다. 지역문화계 협력의 경우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있다. 김 전 교육장에게 은퇴는 끝맺음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더 크다. 그의 계획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