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에 나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나 들어봤음직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반지를 만들어 오라고 명하였다. “그 반지에는 내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좌절하지 않고 내 자신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다오.” 궁중 세공인은 다윗 왕의 명에 따라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반지에 새겨 넣을 글귀가 떠오르지 않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큰 기쁨 중에도 자신을 절제하게 하며, 절망 중에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할 수 있는 글귀로 솔로몬 왕자가 준 글귀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가슴에 새기는 금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조금 우쭐거리게 되는 상황에서나 또는 지치고 실의에 빠지게 될 때 가슴에 새겨보는 글귀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거리를 지날 때마다 혹은 이런 저런 모임에 나갈 때마다 선량이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입후보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몇몇 입후보자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한다. 세 과시나 선거자금 모금에 효자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자서전 속에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수많은 굴곡과 영욕의 세월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다소의 침소봉대가 있을 지라도 그의 삶의 단편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언젠가 고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기수 동창회장은 역임했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오간 적이 있다. 기수 회장을 뽑는 시기가 되면 동창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많이 줄어들고 또 추천받은 사람들도 일이 바쁘다든가 하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대부분 고사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총동창회장이라는 타이틀은 대표성이나 상징성이라도 있지만 기수 회장은 시간과 금전과 열정을 들여도 누가 크게 알아주지 않고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은 직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창 친구들을 위해 아무런 대가없이 봉사하는 직책을 수행해 본 사람들에게 각종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을 주자는 말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의 고민은 선거에 출마한 각각의 입후보자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입후보자들에게서 받는 명함에는 수많은 직책과 직위들이 적혀있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들의 삶속에서 펼쳐지는 물 부족 사태, 난개발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학연, 지연, 혈연관계에 따른 친소 여부에 따라 혹은 막연하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는 입후보자들에게 투표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름만 그럴싸한 단체에 허울만 좋은 직책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각종 사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었으며 또 어떤 해결책을 모색해 왔는지를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각종 선거 때에도 그 자신의 행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또 한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내건 슬로건은 ‘경제를 살리겠습니다’였다. 사대강, 자원외교, 방산비리 외에도 수많은 비리에 연루되어 있는 그를 보면서 국민들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졌는데 자신과 그 일가족의 경제만 살린 건 아니었는지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그가 살아온 길, 그가 걸어온 길 속에서 많은 부분이 부각되었지만 우리는 애써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그에게 투표한 것은 아닐는지. 그는 지금 마음속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되새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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