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도 작가는 라디오 방송극을 주로 집필해온 까닭에 젊은 시절부터 속필 작업을 많이 해왔다. 방송극은 공동 작업이기에 자신이 원고를 못 보내면 다들 대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작업을 끝내야 대본이 제본돼 스텝과 성우들에게 배부될 수 있고 본격적인 제작 과정이 시작된다. 연출자의 조율에 따라 음향 담당자, 음악 담당자가 효과음과 음악을 준비하고 성우들은 연습을 시작한다. 녹음실도 사전에 예약해서 한정된 시간동안만 쓸 수밖에 없어 스텝과 성우들은 작가의 작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
글쓰기를 할 때면 한꺼번에 많은 분량을 쓰기도 하지만 때론 진도가 전혀 안 나갈 때가 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으면 PD의 재촉이 시작된다. PD는 잘 쓴 원고보다 마감시간 엄수를 바라며 작가에게 독촉한다. 독촉은 이내 항의로 바뀌고 이는 작가에겐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얼마나 심적 부담이 심했던지 최재도 작가는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속초에서 작업을 해왔기에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탈고 이후에 원고를 전해 주기 위해 서울까지 직접 갔다. 5공화국 시절에는 방송국 내부에서 검색이 심했는데 바쁠 때엔 이것도 매우 성가신 일이었다. 원고에 박혀 있는 스테이플러 철침 때문에 검색대가 울려 담당 PD를 만나기까지 검문을 세 번씩이나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PD에게 극본을 전해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제작 과정에서 원고를 고쳐야 할 때가 있어서 작가는 제작 현장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원래 방송극은 방송 심의를 거쳐야 하나 바쁘면 제작부터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PD가 자체 심의 후 대본의 수정을 요구했다.
라디오 방송극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에 제작이 쉬울 것이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PD는 작가에게 사소한 것에서도 자세한 사항을 요구할 때가 많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라디오는 오직 효과음으로 상황을 묘사할 수밖에 없어 라디오 방송극은 까다로운 분야이다. 가령, 공간이 큰지 작은지 확실히 해야 한다. 그래야 공간의 규모에 맞는 음향 효과를 줄 수 있다.
작가의 희곡 쓰기
희곡은 대사가 많다는 점에서 소설과 대비된다. 그래서 희곡을 쓰는 작업 방식이 소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감정, 사건, 상황, 인물 묘사 등을 대사로 표현해야 한다. 등장인물에게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대사를 쓸 때 등장인물이 처한 현실을 검토하며 고민할 필요가 있다.
희곡은 대사의 비중이 높기에 최재도 작가는 대사를 직접 해보면서 글을 쓴다. 한 마디의 대사를 쓰기 위해 여러 번 대사를 되뇐다. 그리고 표현을 다르게 바꾸어 대사를 다시 말해본다. 머리로만 생각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극을 시연하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대사가 안 풀리면 위 대사들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다시 작업한다. 위에 있는 대사 하나를 지워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 위의 대사들을 한참 지워 나간다. 한 줄의 대사도 이렇게 정제와 단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
최재도 작가는 글쓰기에 있어 자료 수집과 분석을 중시한다. 자신의 작업에 있어 이 일이 전체 과정의 절반쯤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고증과 검증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최재도 작가는 자료의 수집과 분석 못지않게 현실에 대한 관찰과 해석, 그리고 일반화를 거치는 과정에도 공을 들인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회적 현상을 문학적으로 투영해 인간 세상의 구동원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해왔다. 불합리한 사회현상에 대한 학술적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을 읽으면 사회 현상의 법칙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은 논리적 사유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예술적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작가에게 현실 분석과 예술성의 조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작가의 작품 중에는 우화와 풍자극이 적지 않다. 그리고 상당수 작품의 등장인물이 2, 3명 정도이다. <굽은 화살의 엇갈린 지향>은 지렁이와 물고기가 주인공이다. <녹색인형의 독백>은 수류탄이 사람에게 말을 건다. <꿀벌의 바벨탑, 그 시도에 대한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2명의 대화로 진행된다. <서사지전>은 쥐들에게 인간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백마흔넷째 날의 아침>은 고장 난 시계로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극이다. 이렇듯 작가의 많은 작품이 우화적·풍자적이고 극에는 소수의 화자만 등장한다. 이는 사회 현상의 법칙을 독자들에게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다.
작가가 우화적·풍자적 작품을 많이 쓰는 이유는 또 있다. 작가의 희곡 중에는 불공정한 세상을 비판하는 작품이 많다. 그런데 직접적인 비판은 갈등을 촉발할 수 있기에 우화적·풍자적으로 표현해 왔다. 작가는 이런 방식이 적대적 대립을 극복하고 화합을 통해 세상을 조화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우화와 풍자극으로 인간 사회의 숨겨진 법칙을 탐구해온 최재도 작가.
최재도 작가의 희곡집 <멈춘 곡선의 우아한 고독>.
최재도 작가의 희곡집 <꿀벌의 바벨탑, 그 시도에 대한 고백>.
최재도 작가가 최근 출간한 소설 <저무는 왕국의 별 밝은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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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재도 작가는… 기존 희곡 소설화
첫 작품 ‘저무는 왕국의 별 밝은 언덕’ 출간
최재도 작가는 요즘 들어 자신의 기존 희곡을 소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최근에 출간한 <저무는 왕국의 별 밝은 언덕>이다.
이 작품은 속초에 발령을 받은 한 남성이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에 세 들어 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세를 든 초기에 집주인과 갈등을 벌인다. 그런데 집주인이 자신이 10대 때부터 열렬히 좋아하던 여배우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여배우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한다. 밤에 잠을 자지도 않고 여배우가 사는 아래층에 귀를 기울이고 침실을 몰래 엿보기도 하는 등 요즘 말로 ‘사생팬’ 행동을 한다.
제목의 ‘저무는 왕국’은 인기를 잃은 여배우와 점차 몰락해가는 그의 집안을 뜻한다.
‘별 밝은 언덕’은 왕년의 스타가 살아가는 집이 위치한 곳이다. 그곳에서 왕국의 마지막 왕과 마지막 신하의 아름답고도 비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에는 업보, 인연, 윤회, 전생 등 불교 용어도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극의 초반에는 약간 의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 이르면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요즘 <무한도전 토토가>, <슈가맨>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과거의 스타가 다시 조명되는데 이 작품도 그런 매개가 될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기분 좋은 상상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저무는 왕국의 별 밝은 언덕>의 출간을 기념해 지난 15일 속초고등학교 22회 동창회의 주관으로 북콘서트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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